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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텀 조이 Mar 24. 2022

여자라서 네 연봉은 여기까지

프로젝트 물수제비 1탄: 6화 질풍노도의 시기 곧 마흔 여성들의 수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 주변의 지인들은 여성 근로자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 들어보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몇 년 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갑자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던, 지금은 그 결실을 이루고 또 다른 고민 속에 살고 있는 나의 친구 예슬이(가명)를 불러 근황 토크도 할 겸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우리 모두 서른 중반을 훌쩍 넘어 곧 마흔인 나이임에도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꿈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다며, 씁쓸하게 떡볶이 국물에 오징어 튀김을 찍어 먹었다. ‘100세 시대’에 서른 중반이야 말로 진정한 ‘질풍노도의 시기’라며 우리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백수 생활 5개월째에 접어든 예슬이에게, 백수 선배로서 잘 다니던 왜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는지 먼저 물어보았다. 그리고 돌아온 그의 대답은 내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의 대박 사건이었다.


그녀의 회사는 남성 위주의 회사였다고 한다. 여성은 실력을 인정받거나 연차가 되어도 팀장급 이상 승진을 할 수 없었다. 회사의 몸집이 커지면서 중간관리자 직급이 새롭게 생겨났고, 회사에서는 연차도 찼고 일도 곧 잘 하는 예슬이에게 중간관리자 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연봉협상 자리에서 그녀는 태어나 처음 듣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예슬: 그럼, 중간 관리자로서 제 연봉 인상은 어떻게 되나요?

상사: 예슬씨는 이미 우리 회사가 여직원에게 주는 최고의 연봉을 받고 있어. (생색내며) 하지만 내가 특별히 조금 더 인상시켜줄 수는 있지. 그렇지만 매년 업무 평가 최고등급을 받더라도 그 만큼의 연봉 인상은 불가능할거야. 이미 여직원이 받을 수 있는 맥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1-2% 정도의 인상률 밖에 적용을 해줄 수가 없네

그때 예슬이는 회사 내에 여성과 남성의 연봉 체계가 따로 존재하고 있음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성에게는 없는 연봉상한선이 여성에게만 적용된다는 것도 상사(임금 결정권자)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상사에게 ‘더 큰 책임을 감당하면서 제가 데리고 일할 남자 과장보다 적은 돈을 받느니, 그 부담을 덜고 그냥 편하게 일하고 싶다’며 그 자리에서 중간관리자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러면서, 남녀 연봉 체계가 각각 다르게 존재하고 여성에게 합리적인 이유없이 불리하게 적용된다는 것은 부당한 것 아니냐고 따져물었으니,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그녀를 괘씸하게 생각하는 듯한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원래 그래. 그리고 주로 남자가영업사원이잖아.
남자가 회사를 먹여 살리는데,
남자가 더 받는 게 당연하지. 안 그래?


‘원래 회사가 그렇다’는 답변만 들은 예슬이는 결국 노동위원회에 전화를 걸게 되었다. 전화를 받은 노동위 담당자는 예슬이의 이야기에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것은 엄연히 근로기준법 제6조 (균등한처우)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조항을 위반하였을 때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답답하고 부당함을 공감하면서도 노동위에서 해준 이야기는 예슬이 혼자서 감당해 나가기에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노동의위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1. 사내에 차별적 연봉체계가 취업규칙이나 사규로 문서화 되어있지 않으므로 증명하기 어렵다
2. 여성 직원과 남성 직원이 같은 직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연봉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히려면 그들의 직무가 완전히 똑같다는 것부터 입증해야 하는데 근로자가 밝혀내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3. 노동위에 신고를 하면 근로감독관이 현장에 나가서 직접 감사를 하여 적발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내부고발자가 드러나면 예슬이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
4. 상사와의 대화를 녹음한다 하더라도 녹음 상에 그 사람이 임금 결정권한이 있음이 드러나야 효력이 있다

예슬이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노조도 없는 회사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법도 나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 내가 과연 맞서 싸울 수 있을까. 고민 끝에 평소 친했던 여직원 한 두명에게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해주었고, 그들 또한 큰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 봤자 결국 그들의 종착지는 예슬이의 자리인 셈이었다.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그 직원들은 얼마 안 되어 사표를 던졌고, 예슬이도 어렵고 힘든 싸움을 하다 회사를 짤리느니 그냥 지금 내 발로 걸어 나가는 것을 선택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공무원. 이러한 종류의 부조리함이 가장 적은 사회가 그나마 공무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는 여성들에게 현실적으로 어떤 조언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본인도 다시 이런 일을 겪는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고도 했다. 제도적으로 좀 더 현실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 채 우리의 인터뷰를 마무리하였다.


나는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노동법이 참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1인이다. 그런데 비록 법은 잘 되어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좀 더 쉽게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도록 하는 구제 장치는 많이 미흡한 것은 우리가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근로자를 위한 제도이니 만큼 근로자들이 그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창과 방패를 적시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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