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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텀 조이 Sep 16. 2020

집안일은 ‘돕는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 물수제비 1탄: 2화 인간은 언어로 사유하고 판단한다

내 전 남편은 영국인이었다. 함께 한 1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지금은 친구로 남아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내 인생에서 큰 영감과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만났던) 영국인들은 토론을 참 좋아한다. 그 역시도 그랬는데, 덕분에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핫이슈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보고 내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성평등, 인종 차별과 인권 문제, 과학과 윤리도덕 사이의 정의,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해서는 한참을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고는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영국의 문화는 지금의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좀 더 구체화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나와 남편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 크리스 씨 (가명), 나는 한 번도 독립해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집안일에 서툴 수 있어요. 회사 때문에 매일 저녁을 차리기도 힘들거고…크리스씨가 날 많이 도와줘야 할 거 같아요.
크리스: 아니요? 전 도와주지 않을건데요?
나: (o_o) 네? 안 도와준다고요??
크리스: 네! 집안일은 돕는게 아니에요, 둘이 함께 하는 것이에요. 여자라고 해서 항상 저녁을 차려야 하는 것이 아니에요. 집에 먼저 온 사람이 밥을 하면 되는거에요. 그럼 얻어 먹은 사람이 뒷처리를 하면 되는거고요. 그래서 전 돕지 않을거에요. 우리는 집안일을 같이 할거에요.


나는 머리를 한 방 크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어랏, 분명 나도 집안일은 부부가 공평하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여전히 나는 ‘돕는다’는 표현을 사용했고, 그는 나의 그런 언어를 지적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비슷한 맥락에서 언어도 마찮가지였다. 우리의 사고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형성되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의식적으로 언어 표현을 변화할 때 내 사고의 전환에도 영향을 주고 결국 행동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돕는다’는 말을 생각해봐.
원래 네 일이 아닌 것을
선의로 대신 해준다는 것이지,
그 의무감과 책임감의 소재는 애초에
너에게 있지 않다는 뜻 아니겠니?

얼마전, 결혼을 하면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많이 할거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친구 녀석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얼굴을 찌푸리며 '좋은게 좋은거지 어쨌든 잘 살아보겠다는 나의 각오를 하찮게 치부했다'며 몹시 언짢아 했었다. 근데, 잘 생각해봐봐 칭구야. 내가 단순히 말꼬리를 잡는게 아니란다. 네가 집안일을 ‘도와주면’ 아내는 마치 ‘고마워’ 해야할 것 같지 않니? ‘돕는다’는 말은 집안일에 대한 1차적 책임감과 심리적 부담감에서 오히려 너를 해방시켜주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지 않니?

나중에 설거지를 하며 내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면 이 친구도 점차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겠지!!


"인간이 바라보는 현실 세계는 언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언어로 사유하고, 언어로 판단하고, 언어로 현실을 해석한다. 따라서 어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지각하는 세계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테두리 안에서 규정된다.

사피어-워프 가설 중


출처: KBS 1박 2일

사피어-워프 가설을 놓고 볼 때, KBS 간판 예능이었던 1박 2일에서 복불복 게임 때마다 외쳤던 ‘나만 아니면 돼’는 실로 굉장히 위험한 표현이다. 원칙을 준수하거나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 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저 나만 잘 되면 된다는 무한이기주의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가볍게 머릿속에 심어주었다. ‘나만 아니면 돼’. 일본에 나라를 팔아 넘긴 이완용과 다를 바 무엇인가.


‘내가 하는 말 = 나 자신’ 이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 했다.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고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정확하고 제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추상적이고 흩어져 있던 사고의 조각들이 말로 표현되는 순간 ‘현실’로서 구조화되고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로 대중을 호도하고,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작금의 세상에 언어의 위대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시대의 평범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본질을 꿰뚫어 보고 진실을 언어로써 제대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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