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tiny mini flowers❀ 스물세 번째 이야기

by Autumnlim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한 사람은 아니어도 선함을 선택하는 사람이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선택들을 돌아보았을 때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을지라도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왔다. 나의 일을 사랑하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가끔은 나의 불완전한 자존감이 칼이 되어 타인을 재단할 때가 있다. 때로는 열등감이 칼이 되어 불쑥 튀어나온다. 부끄럽지만 난 그 정도 수준의 사람이다. 진리가 없다 말하는 세상이라, 너도 나도 다 옳으니 '그냥' 인정하라고 그게 '깨어 있는 것'이고 '지혜'라 말하던데 솔직히 나는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지도할 때 규범이 없으면 아이는 더 불안에 휩싸인다. 유한한 존재로서 한계를 인정하고 안전한 선 안에 있을 때 평안한 것이다. 성장하는 것과 유한한 삶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본다. 내가 내게 중요하듯, 너도 너에게 중요하겠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분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게 어렵다. 나도 참으로 유한하고 한계 투성이의 좁디좁은 인생인지라 나를 벗어나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이 속 시끄럽고 진리를 분별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반박 시 님 말이 다 옮음'같은 싸구려 인정이 아닌 진짜 존중하는 것, 내 작은 기준으로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그런 유연하지만 꼿꼿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나의 바람은 감히 내가 품어도 되는 바람인가 싶을 정도로 순결하고 고고해 보인다.


물론 좋은 말만 내게 들리는 것이겠지만, 가끔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타인의 생각을 듣게 되면 놀라울 때가 있다. 단단해 보인다, 대범하고 겁이 없어 보인다, 도전적이다, 소신 있게 살아가는 것 같다, 늘 밝고 에너지가 넘친다 같은... 내가 생각하는 나와 정반대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간혹 들으면, 아니 내가 이미지 메이킹에 소질이 있나? 거짓된 삶을 보이며 살고 있는 건가? 싶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를 증오하기도 한다. 나를 증오하지만 나를 사랑한다. 애증. 이 짜리 몽땅한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깊고 복잡 오묘한 사이다. 선한 삶을 살아가려 발버둥 치지만 내 안에는 그와 충돌하는 모순과 악함이 가득하고 나와 다른 사람이 싫고 내 이익에 예민하며 작은 일에 일희일비한다.


본회퍼의 시를 다시 한번 꺼내 읽어본다. 내가 감히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본래 문학작품은 독자가 본인의 수준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네 번째 연부터는 민망함 없이 공감이 된다.


나는 누구인가?

디트리히 본회퍼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나에게 말한다

내가 나의 감옥 감방에서 나오기를

조용하게, 즐겁게, 확고하게,

그의 시골집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고.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종종 나에게 말한다

나의 간수들에게 내가 늘 말하기를

자유롭게 다정하게 분명하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 같다고.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역시 나에게 말한다

내가 불행한 날들을 참아내기를

한결같이 웃으면서 당당하게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고.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내 스스로 아는 내가 오직 나인가?

새장 안에 있는 새 처럼 불안하고 동경하고 병들고,

손으로 내 목을 누르는 것 같이 숨 쉬려고 헐떡이고,

색깔과 꽃들과 새들의 소리를 그리워하고,

친절한 말과 이웃을 목말라하며,

큰일이 일어나기를 고대하면서 뒤척거리며,

멀리 있는 친구들을 위하여 무기력하게 떨고,

기도와 생각과 창작에도 지치고 허망해지며,

기진하여 모든 것에 이별을 고하려고 하는구나.


나는 누구인가? 이런 사람인가? 저런 사람인가?

오늘은 이런 사람이고 내일은 다른 사람인가?

나는 동시에 두 사람인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위선자,

내 자신 앞에서는 경멸받을 슬픈 약자인가?

혹은 공격당한 군대 같은 그런 사람인가

이미 이룬 승리로부터 무질서하게 도망치는.


나는 누인가? 이 고독한 질문이 나를 조롱하는구나.

내가 누구이든지, 당신은 아십니다, 오 하나님,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한 가지는 깨달아 성장했다는 것이다. 전에는 이런 갈등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왜 나는 이런 갈등을 하는가 하며 내 마음이 고통스럽고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자체가 죄악 같았다. 내가 성숙하지 못하고 부족해서 이런 것들 하나하나에 걸려 넘어지고 아프고 우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나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와우?) 화가 나는 상황에서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럽고 죄가 아니지만 그 화를 어떻게 표현할지 선택하는 것이 그 사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절절매는 그런 지독히 나 다운 모습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일주일 동안 워크샵이 있어서 오후에 나올 틈이 없었다. 워크샵이 끝나자마자 다공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러 갔을 때 우리를 기다렸던 아이들이 또 오라고 했던 것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이곳을 가면 저곳을 못 가고, 좀 더 자주 나오면 될 일인데 고작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것도 왜 이렇게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인도에 아이가 아기를 안고 앉아 있길래 다가갔다. 포일아트를 보여주며 하겠냐고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만난 적 있는 아이였다. 남자아이인 줄 알았는데 여자아이었다. 형제자매가 몇 명이냐고 하니 많~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몇 명인데? 물으니 손을 펼쳐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세기 시작했다. 6명이라고 했다가 자기랑 안고 있는 아기까지 포함하면 8명이라고 했다. 엄마는 근처 어딘가에 있고 아빠는 감옥에 있단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매우 활동적이고 통통 튀는 귀여운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오랜만에 만났다. 아이는 잠이 취해 있었다. 어디가 아픈 건가 싶을 정도로 아이는 몽롱했다. 말도 느리고 어눌하고 뭔갈 물어도 거의 대답하지 않았다. 온몸은 까만 때로 가득하고 자세히 보니 손과 발에는 고름이 때에 엉켜 굳어 있었다. 아이에게 너도 할래? 물었지만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무척 걱정이 되었다.


다른 곳으로 아이들을 찾아 헤매었다. 여기 아이들이 많았는데 요즘 왜 이렇게 찾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레단에서 봤던 아이를 여기서도 보는 걸 보면 순환 근무를 하는 건가 순환 노숙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어렵게 아이 두 명을 찾았다. 아이들은 나무 덤불을 발로 차며 놀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면 다가가서 손을 내밀고 음식이든 돈이든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아이들을 불렀다. 이미 우리를 알고 있었다. 저번에 스티커를 붙여줬었다며 아는 체를 하더니 간식을 달라고 한다. 간식은 없고 놀 거리가 있다며 보여주자 아이들은 급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며 다른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모였다.


다행히 오늘은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서 앉았다. 한 시간 정도 쪼그려 앉아 있으면 무릎이 다 나가버리는 느낌이었는데, 의자에 앉으니 훨씬 수월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몇몇 어른들도 관심을 보였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보고 지나가기도 했다. 좀 커 보이는 아이들도 다가왔다. 십 대쯤 되어 보이는데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다. 역시나 그런 사연이 있는 아이였다. 18살인데 자기 아기란다. 아기가 한 두 명이 아니다. 누구의 아기들인지 이품 저 품에 다 아기들이 안겨 있다.


아기들이 참 예뻤다. 나도 이제 임신을 계획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기들에게 눈이 더 갔다. 콧물과 때로 엉망인 얼굴로 울면 정체불명의 과자를 쥐어주며 입을 막는다. 기침 소리도 예사롭지 않다. 이 아이들이 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12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이곳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도시락을 사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은 당연하게 그것을 받아 들고 아줌마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바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해?"라고 눈치를 주자 그제야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아무렇지 않게, 많이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을 만나러 나오려고 노력하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와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 귀한 존재들을 보면 가슴이 아리고 슬프고 우울하고 절망스럽다. 그럼에도 ^^ 웃음을 장착하고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이들 곁에 머무르려 하는 것은 이들을 위함도 있지만 나를 위함이다. 하늘보다 땅을, 위보다 아래를 향하며 외면보다는 함께하려는 나의 선택이 응집된 순간이랄까. 나는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계속 다짐을 시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이 무뎌짐보단 낫다 여기며.


나는 누구인가? 유한하고 미성숙하지만 그렇기에 성장하고 선을 선택하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 과정과 결과가 어떠할지라도 감사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의 한계를 알기에 속 시끄럽고 고통스러운 것 자체를 그렇지 않아야 한다 억압하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성장의 밑거름으로 쓰고 타인을 존중하는 도구로 활용하며 선한 삶을 향한 에너지로 쓸지 매번 결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노력도 결심도 애씀도 한계가 있음을 안다. 그래서 본회퍼는 이렇게 시를 마무리했나 보다.


내가 누구이든지, 당신은 아십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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