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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Sep 07. 2022

창문, 자유, 참사랑

영화 [내 사랑]

2016년 영화 [내 사랑]

(한국에서는 2017년에 개봉했다)

주인공의 이름인 「Maudie」가 원제목이다.


영화의 이름을 바꾼 사람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사랑이 있다 여겼나 보다.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직후에는 바뀐 제목이 다소 억지스럽다 생각했다. 사랑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했고, 영화에서 그려지는 그들만의 사랑이 너무 영화스러운 설정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사랑보다는 이 영화를 통해 나는 나의 삶을 어떤 방법으로 그릴 수 있을까. 내가 바라보고 있는 창문 밖의 풍경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오랜만에 만난 담백한 영화를 오래 곱씹어보니 여러 생각이 더 들었다. 그 생각들을 정리해보기 위해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고.

(*스포주의)



1.

창문


사람은 단지 객관적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구성하는지 그 주관적인 느낌과 상황 등을 보다 가치 있게 기억한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받았다.'는 객관적 사실보다 그 '누구'가 나에게 얼마큼 소중한 사람인지 그 분위기와 상황이 어떠했는지, '무엇'에 담긴 의미는 어떠한지 등이 더 오래 기억할 만한 구실을 주지 않는가.


이런 맥락에서 나의 인생은 내가 경험한 객관적 실체보다는 내가 받아들이고 재구성한 한 폭의 그림의 연장이라 여긴다.


영화에서 모드는 창작의 원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신은 창을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창 안에 자신의 모든 인생이 담겨있으며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자신은 자신이 본 풍경들을 기억하고 재구성하여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라고. 그래서 자신의 그림은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처음 모드와 에버렛이 만난 날, 에버렛은 모드를 쫓아낼 때 창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한다. 그 창문은 에버렛이 세상을 대하는 거칠고 부정적인 시각을 대변하듯 지저분하고 불투명했다.

모드가 에버렛의 물건을 만질 때에도 에버렛은 창문을 통해 모드의 모습을 보았고, 자신의 물건을 뒤적였다는 이유치고는 과한 역정을 내며 모드를 쫓아냈다. 이 지저분하고 거친 창문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 있다. 뉴욕에서 온 여자가 그녀의 그림을 알아 봐준 날 모드는 창문에 꽃을 그린다. 그리고 그녀는 그 창을 통해 에버렛의 모습을 보며 그린다. 모드의 삶과 그녀를 보던 에버렛의 감정과 태도도 그 창의 변화와 비슷한 흐름으로 차츰 바뀌어간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창을 가지고 그 너머 세상을 그리며 살아간다. 나의 창은 어떠한가. 그 창 밖 세상을 어떻게, 무엇으로 그리고 있는가.




2.

자유


모드는 탈출했다.

관절의 장애가 있어 '자기 앞가림도 못한다'라고 여겨지던 모드. 숙모의 집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금되어있었지만 몰래 집을 빠져나와 클럽에 가곤 하는 대담함이 그녀에겐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취직했다'며 망설임 없이 집을 박차고 나온다. 혹여나 좌절되었을 때 돌아갈 구멍은 조금도 남겨두지 않은 채 모드는 달려 나왔다.


모드는 사회적 시선과 그녀의 육체적인 한계로 인해 주어진 선택지에서 선택하지 않았다. 자유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내게 주어진 선택지 외의 항목'을 선택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들 중에서 하지 않을 자유.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모드는 영화 속 누구보다 진정 자유로운 사람인 것이다. 주어진 인생의 선택지에 없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그녀에겐 있었다.


그렇게 모드는 자신이 선택한 자유로 떠났다. 하지만 그 '자유'는 통상 생각하는 낭만적인 '자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개보다도 못한 노예 취급을 당하고 자신의 개인 침대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을 직면한다. 그래도 모드는 돌아가지 않았다. (물론 갈등이 있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상황에서 주어진 선택지에서 또 다른 항목을 만들었고, 이를 선택하며 자신이 통제 가능한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끝을 향해 갈수록 모드는 (영화를 본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영역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모드는 진정한 자유를 취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지혜로운 여자였다.


덧.

(그녀의 아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만나러 갔던 것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여겨진다. 타인의 판단으로 타인의 손에 의해 '죽었던' 그녀의 아기가 사실은 살아있었고 이제 그 아기를 그녀의 '선택'으로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계속해서 자신의 죽은 아기에 대해 이야기하던 모드가 그 이후로는 아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비로소 그녀는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가 선택함으로써 인생의 큰 아픔(또는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아닐까.)




3.

참사랑


이 영화 속의 사랑을 공감하기 위해서 나는 사랑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사랑의 정의는 누구도 쉽게 내릴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접한 것들 중 가장 공감하고 잘 정의 내렸다 여기는 것을 인용하여 생각해보았다.)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스캇 펙 박사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했다.


보통 사랑은 감정으로 여겨진다. 통제할 수 없는, 본능에서 나오는 감정. 특히나 요즘 사랑하는 사람 또는 감정에 대해 묘사하는 글이나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감정과 육체적인 반응에 집중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러한 두근거림, 성적 욕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도 사랑의 일부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의 통로이자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하라’하고 명한다. 감정은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내라. 슬퍼라.’ 한다고 화나고 슬퍼지는 게 아니지만 사랑은 감정 이상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의지 또한 포함된다.


처음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 시작할 때 나와 타인(사랑의 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그 과정에서 내가 확장되는 느낌을 경험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으로 모든 것들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허물어진듯한 경계는 언젠간 다시 실제함이 느껴지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서로의 다름과 낯섦을 새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분리에 대한 불안함으로 상대에게 끊임없이 사랑의 증거를 요구할 것이며 실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헤어짐과 더 깊은 단계의 사랑으로의 갈림길이 나뉜다.


더 깊은 단계의 사랑으로의 길을 선택했다면, 이제 '의지'가 발동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먼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못하는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

내가 통제 가능한 영역은 내가 '의지'로 나의 경계를 허물며 확장해야 하는 영역이다. 이 과정은 모험이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기존의 틀을 깨며 모험을 강행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모험 없이 깊이와 발전은 없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은 '은혜'의 영역이다. 받아야 마땅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기쁨이 가득한 영역. 통제 밖의 영역을 무리하게 통제하며 얻어내려는 시도는 감사와 기쁨을 앗아가고 결국 관계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면, 모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지혜롭게 넓혀나갔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사랑'은 대우받고 불타오르는 로맨틱한 사랑이 아닌, 의지를 다해 모험하는 모드의 에버렛을 향한 참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자신을 확장시켜나감으로써 결국 절대 통제 밖의 에버렛을 완전하게 품었다.


「내 사랑」 이 영화는 지금 내가, 그리고 우리 시대가 지향해야 하는 참사랑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해주는(정확히 말하면 대우해주는) 타인을 찾기보다 타인(꼭 연인이 아니더라도)을 사랑하기 위해 나 자신을 허물어 확장하는 모험을 강행하겠노라 다짐해본다.



지금까지 영화 「내 사랑」을 통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었다.

오랜만에 담백한 영화를 보아서 기분이 좋다.

곱씹을수록 맛과 향이 나는 그런 영화.


세상의 모든 모드에게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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