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lim Aug 12. 2024

이 아이에게는 책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던 것

❀tiny mini flowers❀ 열 번째 이야기

쨍쨍한 요즘이다. 그렇게 하늘 푸른 줄 모르고 주야장천 비가 내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뜨겁고 따가운 햇빛이 쏟아진다. 비가 오면 그래도 더위는 덜했는데 햇빛만 쨍쨍하니 밖에만 나가면 더워서 얼굴이 절로 붉게 달아오른다. 


08.09 금요일


오랜만에 ㄹㄷ으로 향했다. 약 3주 만이었다. 비가 올 까봐 우산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뜨거울까 봐 우산을 들고나갔다. 동남아에서는 양산 겸 우산을 언제나 들고 다녀야 한다. 우산을 살 때 안에 까맣게 UV 코팅이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보통 아이들을 만나던 길에 아무도 없었다. 날이 너무 뜨거워 피해 있는 건지 오늘은 나오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땡볕에 길에 앉아 있는 것보단 낫겠다 싶었다.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 초입부터 돈이 든 롯데리아컵을 들고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부터, 가게 앞을 알짱거리며 손님들에게 구걸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일단 멍하니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스티커를 붙여줄까 물었다. E와 함께 나름 전략을 세운 것이, 처음 만나는 아이들은 스티커를 붙여주며 다가가고, 그다음에 만나게 되면 책을 읽어주고 붙여주는 것이다. 계속 스티커를 먼저 붙여주니 붙여주다 아이들이 가버리곤 해서 우리를 아는 아이들이라면 책을 먼저 읽어주고 그 후에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첫 번째 아이는 의욕이 없어 보였다. 나른한 표정에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여서 아이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얼굴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를 기억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미안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어 정신없이 뭔가를 하고 나면 얼굴을 모두 기억하기가 어렵다. 아무튼 우리에게 아는 척하며 다가오는 아이들과 "나를 기억해? 대단한데!"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나눴다. 


스티커를 붙여 주고 있는데 몰려든 거라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모두 스티커를 먼저 붙여주었다. 그중 처음 ㄹㄷ에 왔을 때 만났던 아이가 있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아이가 책 읽어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오늘도 읽어줄까 물으니 읽어 달란다. 다른 아이들도 호기심에 어린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스티커를 다 붙이고도 자리를 지키고 기다렸다. 

아이들에게 책을 꺼내 보여주며 고르라고 했다. E가 읽어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쳐다봤다. 그러다 한 아저씨가 다가오길래 순간 뭘까 긴장했는데 "아이들에게 이렇게 책 읽어줘서 고마워요." 하며 우리에게 돈을 쥐어줬다. 우리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주라고 하니 아이들에게 나눠가지라며 2000짯을 주었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이런 응원을 받다니 당황스러웠지만 감사했다. 그렇게 다니면서 길거리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만 잔뜩 들으며 움츠려 들고 살짝 경계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우리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도 있음에 위안이 되었다. 


나눠 가지라는 돈을 한 아이가 쥐고 있자 다른 아이들이 불안한지 얼른 내려놓고 나누라고 재촉했다. 박스에 잔돈을 잔뜩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작은 돈으로 바꿔달라고 하며 최대한 잘게 나누어 나눠 가졌다. 한 명당 200짯 정도 가져간 것 같다. 200짯이면 지금 환율로 한화 50원도 안 되는 돈이다. 지금 이 나라 돈은 가치가 폭락하고 있다. 딱 2년 전만 해도 1달러에 2500짯 정도 했는데 지금은 6000짯이다. 두 배가 넘게 올랐으니 현지화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월급이 두 세 배 깎인 셈이 된다. 국가의 정치적 상황으로 물류가 막히고 수입수출이 원활하지 않으니 공산품 가격은 미친 듯이 오르고, 물가도 정말 많이 올랐다. 자국화폐를 믿을 수 없어 부자들은 현금을 부동산이나 다른 재산 형태로 바꾸거나 해외로 돈을 옮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땅값 집값 찻값 금값 등이 또 엄청 오른다. 이제는 생필품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중산층은 줄어들고 빈민층이 두터워지며 그 가난의 깊이가 말도 못 하게 깊어지고 있다.(UNDP 2024.04보고서) 


모여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낯이 익었다. 그중 처음 만났을 때랑 같은 옷을 입은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어른 옷이라 안 그래도 긴 끈이 낡아 늘어져 더 길어진 탓에 젖꼭지가 다 보였다. 그때도 그런 모습이었어서 옷을 뒤로 넘겨주었는데 이번에도 또 그런 모습이라 묶어주려고 보니 이미 묶여 있었다. 얼마나 단단하게 묶어 놓고 묶은지 오래되었는지 풀어지지도 않고 그걸 또 고무줄로 여러 번 묶은 흔적이 있었다. 대체 이 옷을 언제부터 얼마나 입은 건지 가늠도 안 되었다. 정말 옷 한 벌 사주고 싶었데 보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러지 못했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골목길 안쪽으로 더 걸어 들어갔다.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아이를 만났다. 아이에게 어디 가냐고 물으니 엄마에게 간단다. 엄마는 뭘 하고 계셔? 물으니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고 했다. 어차피 가도 같이 쓰레기를 뒤져야 할 것 같아서 스티커 붙여줄게 하고 잡았다. 스티커를 붙여주며 그럼 어디에서 오던 길이냐 물으니 모르는 아저씨가 자꾸 자기에게 장난을 쳐서 도망치던 길이었단다. 구체적인 건 묻지 못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스티커를 붙여 주고 있는데 누군가 우리를 부르며 다가왔다. 우리에게 매일 오라고 했던 아이였다. 이 아이와는 세 번째 만남이다. 우리가 왔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자기도 스티커 붙여주고 책 읽어 달라고 해서 오케이! 스티커를 붙여주고 책을 읽어줬다.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이번에도 살짝 긴장했지만 표정이 매우 인자해 보이고 흐뭇해 보여서 안심하고 계속 읽었다. 아이들이 다른 것도 읽어달라고 해서 이번엔 E가 읽어주었다. 그러다 여자 아이가 살짝 다른 곳을 봤는데 계속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잘 들어! 좋은 내용이야!" 하며 아이를 다시 집중시켰다. 아이가 별말 없이 다시 집중하길래 아는 아주머니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그냥 지나가다가 우리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고 흐뭇하셔서 같이 듣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 두 번이나 우리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조심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무엇이든 조심하는 것이 맞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잠깐이나마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엄마에게 가는 길이라던 아이는 두 권 정도 읽고 엄마에게로 갔다. 남은 두 아이들은 계속해서 읽어달라고 했다. 한 세 권쯤 읽었는데도 계속 읽어달라고 해서 "다음에 만나면 더 읽어줄게. 지금 다 읽으면 다음에 읽었던 거 또 읽어야 하잖아."라고 하니 괜찮단다. 책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또!" "이번엔 이거!" 하며 너무 해맑고 적극적으로 외쳐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네 권을 읽고도 아쉬워하며 마무리했다. 

그중 가장 적극적이었던, 세 번째 만난 아이는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데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내가 함께 읽자고 하니 읽을 줄 모른다고 했다. 학교에 안 다니느냐 물으니 안 다닌단다. 왜 책을 계속 읽어달라고 하냐고 물으니 재미있고,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없단다. 우리가 가끔 와서 읽어주는 것이 이 아이에게는 유일하게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사실 몰랐던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여기 나와 있는 아이들이 어디에서 이런 책을 읽겠는가. 그럼에도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다른 책들도 더 사 오겠다고 했다. 


이제 슬 돌아갈까 하는데 새 모이용 벼를 파는 아주 작은 아이를 만났다. 얼마나 작으냐 하면 아이 얼굴이 안 보이고 광주리만 보였다. 쭈그려 앉아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 아이에게도 스티커를 붙여주며 말을 걸었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6살이란다. 기껏 해봐야 3~4살 정도로 보였는데 6살이라니 놀라웠다. 만 나이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치면 7~8살은 되어야 하는 나이다. 여러 번 물었는데도 6살이라고 답했다. 지나가는 아저씨가 "얘가 2021년 세 살 때부터 여기 나왔어. 그래서 지금 6살이 맞아."라고 말해줬다. 그 아저씨도 여기에서 장사하는 사람인건지 여기 주민인 건지 잘 아는 눈치였다. 

아이는 표정이 없었다. 넋이 나간 초점 없는 눈이었다. 이름이 뭐냐는 물음에 대답을 해줬지만 목소리에 힘이 너무 없어서 잘 들리지 않았다.  


벼 한 묶음에 500짯이라고 해서 두 묶음을 샀다. 그 작은 손으로 두 묶음을 집어 들어 건네는데 가슴이 아프다 못해 아렸다. 옆에서 E는 "대체 부모님은 뭐 하고 있대요?" 하며 열을 냈다. 3살이면 더 작았을 텐데, 이 작은 아이는 머리에 자기 몸통보다 큰 광주리를 이고 돈벌이를 시작해야 했다. 아이가 뒤돌아 가는데 그 작고 고된 뒷모습에 E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둘 다 먹먹하게 가만히 서 있다가 E가 "오늘 하루라도 빨리 퇴근하게 해 줘야겠어요!"라며 달려가 아이를 다시 불러 세웠다. 지금 있는 게 총 몇 묶음이냐고 다 사주겠다고 했다. 아까 우리에게 아이에 대해 이야기해 줬던 아저씨가 옆에서 계속 보고 있었는지 "그거 다 사줘도 집에 못 갈 걸"하며 하하 씁쓸하게 웃었다. 다 팔았다고 하면 벼 묶음을 리필해 주는 건지 부모도 없이 어딘가에서 이용당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아이의 뒷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어떤 술집 같은 식당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가 산 벼 묶음들이다. 새 모이로 처마나 나무 등에 묶어 놓으면 새들이 와서 쪼아 먹는다. 이 것도 윤회와 관련 있는 행위로 여겨진다. 

오늘도 이곳을 떠나는 마음이 가볍지 못하다. E도 계속 마지막에 만난 아이를 이야기하며 가장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우리가 아이를 불쌍히 여기며 벼를 다 사주는 것이 정말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유든 저런 이유든 작은 아이가 불쌍하게 다니는 것이 돈이 되는 일로 여겨진다면 이런 아동 착취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어린애들 불쌍하게 입혀 놓고 보냈더니 잘 팔리더라'가 되어버리면 계속해서 어린아이들은 불쌍한 모습으로 거리에 내보내질 것이다.


자유로운 새를 잡아 가둬두고 덕을 쌓고자 하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자유롭게 해 줬다가 다시 잡아들여 또 판매하는 그런 '덕 쌓기 용 새 장사'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싶다. 갇힌 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 사줬는데 그것이 새 장사 시장을 더 활발하게 하는 것이 된다면 너무나 슬플 것 같다. 그 아이는 우리가 간 후에 쉬었을까 다시 나와 벼를 팔았을까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며칠을 들고만 다니던 우비 하나를 오늘 드디어 선물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