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주말과 같이 아이들과 함께 장을 보던 중, 아이는 딸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도 딸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딸기 시즌이 아니라 250g 정도 들은 작은 각에 8불이라니 너무 비싸다 싶었다. 내심 고민하다가 아이에게는 나중에 딸기가 나오는 시즌에 많이 사주겠다고 했다. 다른 맛난 제철 과일로 아이의 시선을 돌리면서.
생각해 보면 커피 두 잔 사 먹지 않고 사줄 수 있는 값이었을 텐데, 선뜻 그 작은 딸기팩을 8불이나 주고 산다는 일이 사치 같아 사지 못했다.
지난주 아이 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돌보아주러 오신 시어머니. 어머니는 계신 동안 매일 우리 저녁을 차려 주셨는데, 디저트로 먹자며 딸기를 사 오셨었다.
식후에 아이스크림을 찾는 아이들을 보고 꺼낸 비장의 카드 같은 것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 오물오물 딸기를 너무나 잘 집어먹는다. more. more 앞접시의 딸기가 비워질 때마다 더 달라는 둘째와 앉은자리에서 있는 딸기 없는 딸기 다 먹어치울 기세로 흡입하는 첫째.
그 후로 어머니는 바로 지난주 내가 아이에게 제철이 아니라 (사실은 너무 비싸서) 못 사준다고 했던 딸기를 가시기 전날까지 매일 사 오셔 나의 아이들은 소원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어머니는 오시기 전, 방학을 맞은 첫째에게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리스트를 써두어 보라고 하셨다. 아이는 영화관, 동물원, 아쿠아리움, 피쉬마켓 등 가고 싶은 곳을 쓰며 여기는 할머니와 단 둘이, 여기는 때마침 휴가를 쓴 아빠와 여동생도 함께, 하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방학이 1년에 4번이나 있으니 그때마다 부부가 동시에 휴가를 낼 수가 없어 어쩌다 보니 둘 중 한쪽이 휴가를 내는 방향이 된 상황. 남편의 휴가가 나보다 많이 남아 있어, 마침 어머님이 오실 때 그가 3일 정도 쉬었고, 가족이 함께 어딘가를 여행을 갈 수는 없었지만 집에서 리스트를 써보며 아이가 설레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둘째도 어린이집을 3일 정도 자체 방학하고 할머니와 아빠와 놀러 다녔다. 아이들에게는 놀러 다닌 것이지만 어머니와 남편에게는 조금 고단한 일일 수도 있는데, 이 둘은 한결같이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을 [복]처럼 대했다. 그 [복]을 누리는 기쁨이 감사하다는 듯 퇴근하고 집에 오면 모두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덕분에 내 마음도 평안했다.
육아냐 일이냐 하면 일이 더 쉽다지만, 함께하는 육아의 행복도는 훨씬 더 크다. 회사나 매일 나가는 나도 그들 틈에 끼고 싶은 마음에, 아쿠아리움에서 가까운 회사 근처에 왔을 때는 점심을 모두 함께 하는 [복]을 나도 누렸다.
피곤해진 둘째가 땡깡을 부리며 엄마 무릎에 앉았다가, 아빠 무릎에 앉았다가, 할머니 무릎에 앉았다가 했지만 그것 역시 아이가 2살 반일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혼자였으면 지칠 수 있었겠지만, 함께라 괜찮았다.
이른 항공평을 타고 어머님이 떠나신 날 아침. 일주일의 다정한 시간이 지나고 헛헛한 마음을 뒤로한 채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아이들이 오물오물 잘 먹었던 딸기 한 팩, 그리고 딸기가 속에 들어있는 알알이 큰 초콜릿 한 봉지가 냉장고 선반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다.
본인 가시고서도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하는 어머님의 마음이 느껴져 딸기가 뭐라고. 나는 딸기팩을 꺼내 냉장고 앞에서 한참을 만지작만지작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