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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Sep 20. 2023

어서 와. 지금부터 넌 육아 독립군이야

feat. 남편표 산후 조리원

호주에는 산후조리 시설이 없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당시 남편 회사는 아이를 낳으면 아빠가 2주 휴가를 쓸 수 있었는데 그 휴가가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좁은 집에 친정 엄마가 왔을 때를 생각하면 불편할 일들이 먼저 떠올랐고, 아무리 다정한 시어머니지만 모유수유 하며 상체를 반쯤 내놓고 다니는 짐승 꼴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 단정한 모습으로 신생아 육아하는 일은 진작에 포기했으니까.


내 마음 편하자고,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남편과 '편하게' 산후조리를 하는 것을 선택했다. 남편에게 주어진 2주의 시간 동안, 우리는 이제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함께 배워야 했다. 무엇보다 남편은 산후조리 해주는 법을 익혀야 했다.



출산 후 아이가 황달기가 있어 병원에 며칠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은 아침마다 미역국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왔다. 평생 미역국이 뭔지 모르고 살다가 나를 만난 후 처음 맛본 음식인 만큼, 첫째를 낳기 전에 어떻게 끓이는지 미리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은 남편 본인이 아주 좋아하는 참기름을 듬뿍 부어 참기름국인지 미역국인지 모르도록 끓여 왔다. 그래 그 맛있는 참기름. 많이 넣으면 더 맛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음식을 한 마음이 고마워 반 그릇 정도는 비웠다. (너무 오일리해서, 다 먹지는 못했다는 게 함정.)


태어나자마자 모자동실을 하는 병원에서, 밤에 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낮동안 병원에 와 있는 남편은 집에 가야 하는 시간까지 아이를 돌보아 주어, 굳이 미드와이프가 모유 줄 시간이라고 깨우러 오기 전까지는 눈을 좀 붙였다.


퇴원 후 집에 와서 2주 동안 내가 한 일은 쉽고도 어려운 아이 젖물리기. 내가 우유나 생산하는 소인가 인간인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이 올 법도 했지만, 2주 내내 나의 세끼 식사와 설거지, 청소, 그리고 수유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에 아이를 돌보아주는 남편을 보며, 이 정도면 뭐, (어차피 모유수유를 길게 할 생각은 아니었으므로) 6개월쯤은 소가 되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식사 준비 되었으니 나오라고 부른다고 방에 들어왔다가 침대에서 잠이 들랑 말랑 하는 나를 보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주던 때. 스르르 잠이 들면서, 내가 짐승마냥 아무 때나 자고 싶을 때, (신생아 키울 때니 '잘 수 있을 때'가 더 맞겠다.), 잘 수 있게 해 주어 고마웠다.


2주 후 남편이 회사에 돌아가고, 그 후부터는 나도 조금씩 움직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메인은 수유하기, 조금 크면서는 분유 주기였다. 낮동안 남편은 종종 문자를 하거나 전화를 하며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고, 퇴근 후 돌아와서는 저녁과 설거지, 그 외 끝도 없이 나오는 집안 일들을 해주었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고 나서는 조금씩 살림도 돌보고,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도 했다. 집 안의 발란스가 맞아가는 시간 동안, 한쪽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후, 앞으로 우리 부부는 이렇게 서로에게 마음을 쓰며 살아야겠구나 싶었다.


아이를 열 달 품고, 고통스러운 분만을 거친 산모도 큰 일을 했지만, 그 때문에 잠시 포기한 [아내]로서의 역할을 남편은 그만의 방식으로 기다리며 채워주었다.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는 류마티스로 아이를 들고 내리기 버거워하며 정신적으로 나약해질 수 있는 [엄마로서의 나]를, 그만의 dedication으로 잡아주었다.



[Dedication]: the willingness to give a lot of time and energy to something because it is important.

[Sacrifice]: the act of giving up something that is valuable to you in order to help someone else.



처음에는 희생(sacrifice)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 단어에는 내게 가치 있는 일을 [포기]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타인을 돕기 위해 내게 중요한 일을 포기한다는 의미보다는, 중요한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자 하는 [의지], dedication이 남편이 해주었던 일을 설명하는데 더 어울리는 듯 하다.


힘든 상황일수록, 서로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며, 우리는 육아 독립군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덕분에 나의 산후조리는, 신생아와 하루종일 함께 있으면서 아이 배 곪지만 않게 하고, 기저귀만 뽀송뽀송하게 갈아주는 일이 전부였던 [행복한 소]였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이의 배냇짓을 보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아이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건 덤이었고 말이다.


그 아기들이 각각 9개월, 8개월 될 때부터 우리는 어린이집을 풀타임으로 보냈다. 신생아 시절이 차라리 편했다 싶을 만큼, 아이가 크고, 나도 복직하고, 둘째도 태어나고 하니 삶이 점점 다이내믹 해진다.


호주에서 아이 둘, 느린 남편과 함께 복닥거리며 일하고 애 키우는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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