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는 아이를 낳고 나면 바로 아이와 함께 입원병실에 남겨지게 된다. 2박 3일 정도의 입원기간 동안, 아이 기저귀 가는 법, 아기 몸을 담요로 돌돌 싸는 법, 목욕시키는 법 등을 미드와이프에게 배우게 되는데, 배우는 그 잠깐의 시간 말고는 아이와 처음부터 단둘이 함께하는 것이다.
공립병원에서 분만한 나는 다른 산모 한 명과 병실을 같이 썼는데, 자연스레 처음부터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남겨두니 특별한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다.
그냥 하면 되는 건가 보지?
육아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백지에 가까운 개념. 무지가 이렇게 무섭다. 이튿날부터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대체로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분위기라, 아이와 내가 잠이 들어 있을 때도 모유수유 시간이면 칼 같이 와서 깨울 때는,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 입원기간.
첫날밤, 아이도 나오느라 힘들었는지 곤히 잘 자서, 생각보다 괜찮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 날부터 난리가 났다. 젖을 좀 물리고서 잠잠해져 눕히면 얼마 안 있어 깨서 울기를 반복하는데, 몇 번이나 미드와이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버튼을 눌러도 오지 않는 것이다.
옆에 산모에게도 눈치 보이고, 아기는 계속해서 울어대는데, 아이를 내 오른쪽에도 눕혀보고, 왼쪽으로도 눕혀보고, 서서 안아 달래보기도 하고, 앉아 달래보기도 하고, 그저 달래는 데에만 마음이 쏠려 지쳐갈 때 즈음, 드디어 미드와이프 한 분이 오셨다.
왜 이리 늦게 오셨나 하는 원망도 잠시, 그저 도움의 손길을 주러 누가 왔다는 것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특별한 육아 레슨
그날 밤, 어슴푸레했던 병실에서의 특별했던 공기을 잊지 못한다.
일단 오랜 시간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를 달래주셨다. 엄마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아이의 다리를 오므리고, 엄마 품 가까이로 안아주며 살랑살랑 흔들어주니 아이의 울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다 내려놓으니 또 울음이 터지는데, 그러기를 몇 번을 반복. 내 아이가 별난가 싶어 괜히 미드와이프에게도 미안해지려는 차, 그녀는 아이를 안고 시간이 한참 흘러 아이가 깊은 잠에 들 때까지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다른 데에서도 이렇게 해주다가 늦게 오신 거겠구나.
그렇게 서서 아이를 안고 달래면서 아이가 셋이라는 그녀는 이런저런 말들을 해준다. 어쩌면 뻔한 말일 수도 있겠으나, 이제 막 아이를 품에 안고, 딱히 마음의 준비라는 걸 생각해 본 적 없던, 초보 엄마 몇 시간 차였던 내게는 참 특별했던 시간이 되었다는 걸 그녀는 알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왜 우는지 모를 때도 있고, 너무 힘들게 해서 아이가 미운 날도 있어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아이에게 미운 감정이 든다고 절대 나쁜 엄마도 아니고, 결코 엄마의 잘못도 아니거든요. 그저 조금 시간을 갖고 다시 돌아와 충분한 사랑을 주면 되는 거예요.
나의 피곤함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아이를 나 대신 안아 재우면서, 기나긴 밤 잠시라도 내게 그렇게 숨 돌릴 시간을 주던 그녀의 이야기는, 깊어가는 새벽만큼 가슴속 깊이 닿았다.
육아에 옳고 그른 건 없어요. 당신이 이 아이의 엄마이고 그런 당신을 누구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거죠. 엄마가 행복하고 마음이 편한 쪽으로, 그렇게 아이와 함께하면 돼요.
내가 조금씩 더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 아이의 엄마라는 것, 그것이 내게 알지 못할 큰 힘을 주었다.
그냥 하면 되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별 생각이 없던 내게, 훗날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순간마다 떠올릴 수 있는 기둥을 단단하게 심어준미드와이프. 즐겁게, 마음이 건강한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그날 밤의 진심 어린 말들이 새삼 감사할 때가 많았다.
분만 과정에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진통 때문에 사경을 헤매다 목이 마르다는 내게 1.5리터 물통을 주면서 마시라고 줘 이걸 어떻게 마시냐는 말할 힘도 없이 쳐다보는데, 미드와이프 분이 재빨리 빨대를 꽂은 종이컵에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셨고, 갑자기 오한이 오는데 춥다고 말도 잘 못하겠는 나를 찰떡같이 알아보고 따뜻한 담요를 덮어줘 살 것 같았던 기억. 진통시간 내내 끊임없이 옆에서 잘하고 있다고 기운을 북돋아주고,강한 진통을 못 이겨 누운 채로 마신 것들을 힘없이 게워내던 것도 다 닦아주시던 분들.
Midwife/Doctor 에 쓰여 있는 이름 외에도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출산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결코 나 혼자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었고, 출산부터 퇴원까지 아이를 거쳐간 그 무수한 손길과 마음의소중함을 느꼈던 시간.
그 아이가 커서 벌써 3살을 바라보고, 곧 세상에 나올 동생을 기다린다.
한국에서 할 수 있다는 조리원의 호사는 누리지 못했지만, 병원에서 여러 사람과 교감하고, 남편의 산후조리를 받아가며,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부모가 되어가는 연습을 한다.
엄마와 하는 베이킹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 타요 버스와 놀다가도, 레고와 놀다가도, 베이킹을 하자고 하면 모든 걸 제쳐두고 주방으로 달려온다.
보조개가 움푹 움푹 들어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반죽이 구워지는 동안 오븐 앞에 앉아 기다리다가 땡 하는 타이머 소리에 벌떡 일어나 오븐을 빨리 열어보고 싶어 못 견디는 아이의 들뜬 마음이 나는 참 재미있다.
결과물을 보고 뿌듯해하며 얼굴 한가득 머금은 미소를 보면서, 앞으로 더욱 많이 웃을 수 있도록, 너에게 행복한 기억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