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봐

전방주시는 운전자의 필수 덕목이거늘

by 시월

“앞을 봐, 운전 중인데 왜 자꾸 뒤를 봐?”

조수석에서 다리를 꼬아 올리고 앉아 남편이 묻는다.


“앞 보고 있어. 걱정하지 마.”

정말 앞만 본 채 조금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상태로 건조하게 대답하며 가던 길을 마저 달린다. ‘무사고 10년 차거든? 잘만 다니는구만 뭐.’ 감정으로 버무린 읊조림은 속으로 삼킨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그러하듯 24km 거리의 목적지를 찍고 출근하던 중, 백미러를 흘깃 보니 뒤차가 아주 바짝 붙어있다. ‘좀 더 밟아야 하나? 조금 더 가먼 카메라가 나오는데’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조수석은 비어있는데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거울에 비친 눈이 말한다. ‘정말이네, 왜 자꾸 뒤를 보지?’


가만보면, 사는 동안 내내 그래왔던 것 같다.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양옆과 뒤를 봐가며 살았다. 다른 사람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그들의 속도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속도는 어떠한지 위치는 어디쯤인지 끊임없이 비교했다. 일곱 살, 외동인 줄 알고 살다가 갑자기 태어난 동생이 너무 예뻐 무뚝뚝한 자신과 비교가 되어 위협을 느끼면서부터였을까. 열두 살, 아무리 최선을 다해 달려도 꼴찌만 겨우 면하곤 했던 달리기 때문에 늘 칭찬만 해주시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었을까. 열네 살부터 6년간 학교 다니는 동안 내내 상대평가로 등수가 매겨져서였을까. 어디서, 무엇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을까.


확실한 건 이것저것 의식하며 사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는 거다. 그저 경주마처럼 앞만 보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던데, 여기저기 눈을 돌려가며 그 가치를 감상한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잣대를 늘렸을 뿐이었기에 기준만 여러 가지로 늘었을 뿐이었기에. 비교 속에서 스스로를 채근하기 바빴다. 미대입시를 하느라 시간을, 잠을, 그리고 체력을 쪼개가며 부지런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실기시험을 잘 못 봐 떨어졌다는 결과만으로 스스로를 판단했다. 재수 후 일반대 진학 후에는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휴학은커녕, 17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곱 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면서도 초조할 뿐이었다. 졸업 후 고시생 신분이 되자 취업한 친구들 사이에서 어두운 독서실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성실함과 책임감, 노력 같은 것은 그 가치를 잃고 색이 바랬다. 그랬더니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니, 스스로를 가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랬다. 나서서 그렇게 만들었다. 앞을 보고 발을 내딛는 대신 친구들을 보며, 사회에서 정해놓은 틀에 자신을 끼워가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보다 못한 것만을 들춰내며 그것만이 전부인 듯 살았다. 아니라고, 잘 살고 있다고,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누가 얘기해 줘도 들리지 않았다. 부족한 점이 밑도 끝도 없이 종류별로 가득한데 그런 좋은 말은 내 것일 리 없다 생각했으므로. 다그치는 말들로 꽉 차 스며들 공간조차 없었으므로.


마흔을 앞두고 돌아보니, 정말 그런 별 볼 일 없는 모양으로 남아 있는 듯해 서글펐다. 도로에서 내가 달리고 있는 차선으로 끼어드는 차, 뒤를 바짝 쫓으며 빨리 달리라고 상향등을 갈기는 차에 위협을 느껴 잔뜩 쫄았던 것처럼 세상 앞에서 작아져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 주저하는 그런 나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그러라고 했는가? 누가 책임져 주는가?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도 책임져 주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나 또한 이런 걸 원하진 않았다.


뒤에서 똥꼬를 찌르며 속도를 올리라고 부추긴다 해도 결국 액셀을 더 밟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운전자의 몫이다.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넘어올까 말까 간을 보는 차량에게 속도를 줄여 앞자리를 양보할 것인지 말 것인지도 운전자의 몫이다. 내 차를 내가 운전하며 속도를 조절하듯, 그러다 과속을 하거나 사고를 내면 상대 차량 운전자가 아니라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게다가 목적지에만 무사히 도착하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가는 동안 노래도 틀고 라디오도 듣고 풍광 그 자체를 즐기며 가는 것이 운전의 즐거움 중 하나 아니겠는가.


운전이 이러할진데 인생은 더더욱 적절히 조절해 가며, 선택해 가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려면 양옆과 뒤를 보긴 해야겠지만 이제는 정말 남편 말처럼 앞을 제대로 봐야 하지 않을까. 가는 길의 제한 속도가 시속 몇 km인지, 카메라는 있는지 없는지, 혹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 타이밍은 아닌지 전방주시해야 하듯 어떻게 살고 싶은지 되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그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가뜩이나 역할이 많아져 그냥 나 자신으로만 살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아내로, 엄마로, 직장인으로 여러 역할을 해내며 사느라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는 의무에 휘둘려 ‘~답게’에 갇혀 살기 쉽다. 그럴수록 더 정신 바짝 차리고 앞을 봐야 하는 것 아닐까. 결국 어디로 어떻게 갈지는 내 몫이니까.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는 내 몫이니까. 그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감도, 책임도 결국 내 몫이니까. 인생은 종착지가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눈감기 전까지 어떠했나에 대한 평가는 결국 사는 동안 어떠했나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


그러려면 앞을 보고 내달리는 스스로에게 채찍질은 멈추고 그간 타인으로부터 들어도 채워지지 않았던 그 말을 백미러 안의 눈에게 나서서 해줘야 하지 않을까. 살며 만난 수많은 타인에게 건넸듯 이미 태어난 그 순간부터 충분하다고, 무엇이 되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정말 노력하고 있고 잘하고 있고 이것으로 이미 된 거라고, 지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을 하다 보면 그 모든 것이 헛되지 않고 나 자신 그 자체가 되어 다른 무언가를 하게 하는 힘이 되어 줄 거라고. 그러니 다른 많은 잣대와 틀들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앞을 보고 믿고 가도 좋다고, 쫄지 말고 신나게 후회없이 달리라고 말이다.



*사진: AI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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