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데 어떻게 써요
백 년 만에 글을 써본다. 이번엔 지역교육청에서 학부모에게 글쓰기 수업을 해주고 글을 쓰면 책의 한 꼭지를 내어준다 해서 핑계 삼아 또 시작이다. 네 번의 수업을 듣고 나서 에세이를 한 편 써야 된단다. 주제를 주면 좋겠는데 자유란다. 문제다.
아이들은 늘 자유시간을 원한다. 오늘만 놀자고, 자유를 달란다. 돌아보면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자유가 필요했다. 여행도 자유여행으로만 다녔다. 그땐 몰랐다. 자유가 가장 무서운 것일런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꼭 해야 하는 숙제가 없고 끝마쳐야 하는 시험범위가 없다는 것. 그렇다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즐거울 줄 알았다. 마음이 편해서 훌훌 날아가듯 말 그대로 자유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들어보니 제일 무서운 말이다. '자유롭게', '마음대로'
글을 계속 쓰지 못한 것에 수많은 핑계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였다. 퍼스널 브랜딩을 하라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무엇을 잘하는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니 자괴감이 든다. 인생을 헛살았구나. 애들한테는 좋아하는 걸 찾으라고. 좋아하다 보면 잘하게 되고,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파다 보면 뜻하지 않게 좋은 기회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말해왔는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진로교육대학원까지 다니고 있지만 내 진로가 제일 깜깜하다. 어렸을 때는 직업만 정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직업을 가진 지 13년 차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어린 시절 엄마가 나만 보면 징그럽다 했다. 입만 열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그득하다고. 어쩜 마르지도 않고 계속 샘솟냐고, 지겹고 징그럽다 했다. 그 소리가 그립다.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엔 어쩜 그리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았을까.
아니 거꾸로 생각해 보자면, 지금은 왜 그런 것들이 없을까. 하고 싶은 것도 모르겠고 없다 쳐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먹고 싶은 것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왜 없어진 걸까. 뾰족뾰족하게 싫은 것도 참 많았는데, 날카롭던 호불호는 어디로 다 사라진 걸까. 왜 사라진 걸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둥글둥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럴 수도 있지 이해심이 많아지는 거라던데, 이해심이 딱히 모난 나를 둥글게 감싼 것 같지도 않은데 다 어디로 간 걸까. 내 기호는.
직장생활을 하고 엄마가 되고 간장종지만 한 그릇을 가지고 있으면서 냉면사발인 척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괜찮아 괜찮아 되뇌는 게 습관이 되고 나 스스로의 욕망을 거세해 버린 걸까.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욕심내봤자 못하게 될 것 같아 접어버린 걸까. 이건 얼마 저건 얼마, 이걸 하려면 어떤 자격, 저걸 하려면 저런 자격,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게 많아 시작하기엔 너무 쓸 것이 많다 싶어 재고 따지다 주저 않은 걸까. 피드를 스윽 슥 내리며 보이는 화려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저 정도는 돼야 이런 것을 꿈꾸지, 나는 아니지 대보다가 부끄러워 숨어버린 걸까.
잘한다고, 좋아한다고 말하는데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버리고 입을 다물어 버릇했더니, 마침내 정말 없는 무색무취의 인간이 되어버린 걸까. 궁리를 해봐도 도무지 그 이유도, 답도 알기가 어렵다. 모르는데 어떻게 쓰나- 한참을 망설이다 모른다는 말부터 써본다.
글쓰기 강의를 해주시는 작가님의 말씀처럼 쓰다 보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내뱉어본다. 그러면 둥근 생각도 모난 불호도 언젠가는 툭툭 튀어나오겠지. 그러다 언젠가는 침잠해 있던 내 마음도 번쩍 하고 있기는 있다 표시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