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만날 결심
K를 만난 건 지난여름이 끝날 즈음이었다. 23년 늦봄쯤부터 만나던 Y와 1년 반 만에 복직하고도 만남을 이어갔지만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Y를 만나지 못하게 되고부터, K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폐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년 으레 겪어 온 열감기인가 보다 하고 수액을 맞았지만 열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고, 가슴통증을 동반한 기침이 있어 다니던 이비인후과에 X-ray 검사를 요청했지만 '성인은 그런 거 없어도 된다'며 약만 주었다. 약을 아무리 먹어도 낫질 않아 내과에 갔더니 대번에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인 것 같다고 X-ray, 객담 검사, 채혈 등을 했다. 결국 입원 엔딩. 참나. 그때를 비집고 찾아온 K. 원래 함께 하던 그를 밀어낸 새로운 그.
새로 만난 그는 달콤했다. 힘들 때 따끔하게 충고했던 Y와는 달리, K는 원하는 것만 주었다. 처음엔 Y를 외면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금 Y에게 돌아가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지만 말뿐이었다. 일이 바빠지고, 애들이 아프면서 Y를 만날 시간을 내기 힘들어졌고, 만나지 않다 보니 만나고 싶지 않아 졌다. 약속을 잡아도 핑계 삼아 파투 내길 일삼았으며, 그러다 보니 영 어색해졌다. 함께 하면 몸도 마음도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K에 안주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바야흐로 새해. 새 마음을 먹었다. 주변에 Y와 다시 만날 것을 권하는 사람이 생긴 것도 한몫했다. K는 너무 좋지만 장기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K가 아니라, Y인 것이 너무나도 확실했기에. K와는 헤어지고, Y와 다시 만나보겠노라고 주변에도 공표를 했다. 남편에게도.
아니, 결혼을 했는데 누구랑 만나고 누구랑 헤어지고 또다시 만나고 그걸 남편에게 말하다니, 도대체 뭔 소리인가 싶으려나. Y도 K도 다행히(?) 사람이 아니다. Y는 운동이고, K는 먹는 습관이다. 복직하고 나서도 새벽에 일어나 러닝을 하고 출근을 하곤 했지만 거짓말처럼 복직하고 2주 만에 몸이 아팠다. 주변에선 어린이집을 처음 간 어린이 마냥 깨끗한 환경에 살며 바이러스에 노출될 기회가 없다가 각종 병원균이 득실득실한 곳에 와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약을 먹어도 입원을 했다가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을 해도, 또 약을 먹어도 시름시름시름 계속 아팠다. '그러니 운동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라고 하면 핑계려나. 하지만 진짜였다.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날씨가 너무 좋았고 한 달여만에 다시 달려야겠다 싶었다. 마라톤 대회도 있었기에. 더 이상 쉴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당장 나가 달렸더니 무릎이 아팠다. 무릎이 아픈 건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초반 이후로 1년이 넘도록 없었던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쉬기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먹기까지 해서 살이 좀 오른 상태였기에 다리가 몸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제길. 이렇게 티 내기냐.
결국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가며 개같이 회복!...하여 다시 달렸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대회만 겨우겨우 마친 뒤 다시 주저앉았다. 좋은 날씨가 아까워 다시 나가볼까 하던 차에 이벤트가 계속됐다. 처음엔 첫째가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에 걸렸다. 다행히 약이 들어 통원으로 완치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상을 치르고 장지까지 다녀왔는데 둘째가 이상했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었다. 약을 먹이고 있었으나 약이 잘 들지 않았고, 숨소리가 좋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X-ray 상 폐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입원을 권유받았고 다행히 금방 나아 3일만에 집으로 왔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부터 다시 열이 났다. 처음엔 그럴 수 있다고 하였지만 다음날도 열이 나자 병원에서는 다시 오라고 했고, 약을 바꿔 먹였다. 그래도 열이 떨어지지 않자, 또 피를 뽑고 검사를 한 결과 이번엔 RS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이었다. 또 입원. 이번엔 좀 더 길게, 확실하게 보자 하셔서 6일 정도 입원을 했다. 완치 판정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음날 또 열, 그리고 설사. 이상했다. 항생제 때문인가 싶었지만 너무 상태가 안 좋고 먹성 좋은 아이가 먹지 않으려 했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폐렴은 다 나았다고 했다. 폐렴 때문도 아니고 항생제 때문도 아닌 것 같다고 피검사, 분변 검사를 했다. 병명은 노로바이러스 장염. 둘째를 입원시키고 남편과 바통터치 후 집에 오니 첫째가 토하고 설사를 한다. 같이 입원. 그런데 나도 아프다. 온 가족 노로바이러스 감염. 하. 정신 차려보니 12월이었다.
학교의 12월은 매우 바쁘다. 시험 문제 출제, 시험, 성적 마감, 생기부 작성 및 점검이 줄을 잇는다. 맡은 업무 중 하나도 12월에 하는 것이었기에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리고 우울했다. 쉬다가 일을 하는 것이, 업무가 어렵지 않아도 학생 중에 특별히 이상한 학생이 없어도 생각보다 좀 버거웠다. 대학원을 병행해서 그랬던가. 애가 하나였다 둘이 되어 그랬던가. 나이를 몇 살 더 먹어 그랬던가. 모르겠다. 그 와중에 나도 애들도 아프니 너무 버거웠다. 자꾸자꾸 아프니 집이 지저분해 그런가, 이불을 잘 안 빨아서 그런가, 설거지가 덜 됐나, 해먹인 요리에 문제가 있었나 하나하나 다 내 탓인 것 같아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계속 먹었다. 간식을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빵이고 초콜릿이고 먹다 보니 먹게 됐고 안 먹으니 허전해서 또 먹었다.
바쁜 일을 좀 쳐내고 업무만,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만 남아있던 연말, 큰 애가 또 아팠다. 이번엔 독감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팠다. 정말 이렇게 아플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정신을 차리니 새해였다. 정말 정말 정말 우울했다. 뭐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한 해가 다 간 느낌이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연말에 작심삼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새해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브런치 글쓰기 모임('얘들아 1기')의 윤미작가님의 출간 소식을 듣고 운동을 다시 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보건소 바로 앞에 산지 5년 만에 처음으로 인바디를 재고, 태어나 처음으로 식사 기록 어플을 이용하며 3일째 새벽 공복 유산소를 했다. 뭔가 잘 사지 않는 사람이지만 폼롤러도 좀 제대로 된 걸로 사고 운동 전후로 근육을 풀어주라는 당부를 잊지 않고 실행 중이다. 비록 3일 째지만.
날이 더워지고 옷이 얇아지면 사람들은 다이어트할 결심을 한다. 긴 옷 또는 겉옷으로 몸을 가릴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추운 겨울 한복판에서 결심한다. 긴 옷과 겉옷이 있지만 조금 더 건강하기 위해. 조금 더 덜 우울하기 위해. 불어버린 내 몸과, 지금의 체중과, 무엇보다 무력함에서 비롯된 먹는 습관과 헤어질 결심을. 그리고 다시 운동할 결심을 한다. 일주일 동안 공백이었던 글쓰기처럼 또 작심삼일이 될지라도. 다시 이렇게 쓰듯이 다시 결심하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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