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도 소용없는 일-두 번째인데도 처음 같은 출산
둘째는 날을 정해 낳았다. 두려우면서도 사실 좀 수월하겠지-진통이 짧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기도 오산이었다. 이슬도, 양수도, 진통도 없이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자궁수축을 촉진하려니 진통은 시작되었으나 진행이 되지 않았다. 첫째 때는 모르고 지나갔던 내진의 고통이 생으로 느껴졌다. 낯선 간호사 선생님들의 손이 번갈아가며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를 몇 차례 반복하다 갑자기 울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일부러 양막을 터뜨린 거였다. 처음 마주한 양수는 맑은 물이 아니라 피가 섞인 액체였다. 오전 8시부터 맞기 시작한 촉진제의 단계가 계속 올라갔고 진통은 더 심해졌지만 반복되는 내진에도 자궁문은 겨우 2cm 열렸다고 했다. 아니, 지난주 정기검진 때도 1cm였는데 어떻게 일주일이 지나고 촉진제를 맞았는데도 이럴 수가 있지. 자궁문을 어떻게 여나. 알 길이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산모님, 아프면 말씀하세요."
"네"
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아프다고 하면 또 얼마나 진행됐나 보려고 내진하겠지? 진짜 죽을 것 같을 때까지 아프다고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참았다. 으으 생리통 같네. 다리도 아프네. 허리도 아프네. 좀 지나갔네. 아이고 또 아프네. 가만, 수축 정도가 얼마나 되나? 100이 넘었네. 아픈 것 맞네. 하며 참았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남편은 평소 로맨틱함이 0에 수렴하고 공감능력도 영 시원치가 않아서 '노(no)맨스'라고 불리던 사람인데 옆에서 계속 첫째 때 분만의 순간을 떠올리며 걱정하는 말과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나를 웃겼다. 말도 안 되는 가벼운 이야기들을 하며 보낸 덕에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더 잘 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촉진제를 맞은 지 8시간쯤 된, 오후 네 시경, 한 시간마다 자궁 수축 정도를 체크하며 내진을 하던 간호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또 물어보셨다.
"산모님, 아픈 정도가 어떠세요? 아래가 묵직하고 변이 마려운 듯한 느낌이 드시나요?"
"아프긴 아픈데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이고, 또 내진을 하겠구나 하고 시키는 대로 다리를 벌렸다. 진통주기에 맞춰 또 내진. 몇 번 했다고 처음 내진을 당했을(?) 때보다 만만해지던 차였다. 드디어 4cm가 열렸다며 무통주사를 놔주겠다고 했다. 살았다. 무통주사 맞으면 이제 괜찮을 거다. 살았다. 하던 차, 마취과 선생님께서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라고 한 뒤 등줄기에 커텍터를 꽂는데 너무 아프기도 하고 순간 다리가 저리고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며 무통주사를 맞기 위한 게 너무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진통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무통주사가 내 몸을 지배하고 나서 그 생각은 바로 사라졌다. 수축 수치가 100이 넘어도 별 감각이 없었기에. welcome to 무통천국! 무통을 맞으면 진행이 늦어져서 최소 2시간 최대 8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셨다.
"제가 오늘 5시 이후에는 아기를 받기 힘들 것 같아서 아마 당직선생님께서 잘 받아주실 겁니다."
아아, 첫째 때도 담당 선생님이 아닌 당직의 선생님(이라고 붙이기도 싫다)께서 받아주시고 후처치를 잘못해 주셔서 얼마나 고생하고 무서웠던가. 제발 이번만은 담당 선생님께서 받아주시길 바랐는데. 아침에 설명을 들을 때만 해도 선생님 퇴근 전에 나오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나는 애를 몇을 낳든 담당 선생님께서 받아줄 운명이 아닌가 보다 하고 극단적으로 생각했다.
남편과 아쉬움을 나누며 그래도 괜찮을 거야 위안을 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6시경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배고파서 힘 못줄 것 같은데, 낳고도 시간이 늦어 저녁을 못 먹을 것 같은데 하며 남편에게 걱정을 토로하던 중이었다. 또 간호사 선생님께서 찾아오셨다.
"아프진 않으세요? 특별히 더 뭉치는 것 같은 느낌 없으세요? 한 번 볼게요." 하더니 또 내진. 다행히 느낌은 없었다.
그러더니 하시는 말씀,
"산모님, 힘주기 한번 해볼까요?"
이때다 싶었다. 첫째 때 얼굴과 가슴의 핏줄이 다 터진 기억 때문에 입원하러 가는 차 안에서 유튜브를 통해 임산부 호흡법을 보고 벼락치기를 했더랬다. 벼락치기가 빛을 발할 때였다. 왜냐면, 난 남편말대로 학습능력이 뛰어나서 벼락치기에 능하니까. 게다가 올바른 호흡으로 힘주기를 잘해야 아기에게 산소가 원활하게 가고 분만도 금방 끝낼 수 있다니 여러모로 잘 해내야만 했다. 힘을 주라는 말에 코로 숨을 들이마시며 배를 내밀었다가 그 상태로 헙! 하고 힘을 주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잘했다며 한번 더 해보자고 하셨다. 다시 한번 쓰읍, 헙!
"남편 분 잠시 나가 계세요. 산모님 이제 분만 준비하실 거예요."
드디어, 드디어 분만이구나 싶었다. 힘주기를 계속하면서 아기 머리가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A선생님 전화했어?"
"B선생님 오실 것 같은데?"
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어차피 모르는 누군가가 올 거라고 생각하며 제발 잘 받아주시고 후처치 좀 잘해주라고 빌고 있던 차,
"C선생님 오신다는데?"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분은 내 담당 선생님이셨다. 속으로 너무 기뻐서 둘째 태명이기도 했던 '럭키!'를 외쳤다. 아기를 다 낳고 나면 선생님께 꼭 감사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정신도 맑지.
그렇게 담당 선생님께서 오셨고 힘주기를 몇 번 더 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모두 힘을 잘 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속으로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럭키야 엄마 할 수 있고 너도 잘 나와야 해'하며 되뇌었다.
"잘하셨어요. 산모님, 한 번만 더 해보실게요. 힘! 다시 힘!"
꿀렁거림이 느껴지더니 곧 으엥 으엥 하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왔다.
"남편분 들어오세요."
끅끅거리며 울며 "럭키야 고생했어. 엄마야. 엄마야." 중얼거렸다. 들어온 남편은 시키는 대로 탯줄을 자르고는 노맨스답지 않게 첫째 때도 보이지 않던 눈물을 그렁거리며 고생했다고 손을 잡아주었다. 소리 한 번 안 내고 애를 낳았다며, 얼마나 힘들었냐며, 너무 안쓰럽다며, 그리고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생각했다. '그래, 맞다. 나 대단해. 너무 무서웠는데 아기 더 힘들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어. 나 대단하다.' 곧 남편은 쑥스러웠는지, 태도를 바꾸어 말했다. "이번엔 사진 안 찍었어. 동영상 찍었어. 동영상 촬영했으니 뭐라고 하지 마." 첫째 때 영상 없이 사진만 찍은 남편에게 몇 번이고 잔소리를 했던 차라 알았다고 말하며 울다 웃었다.
다시 남편은 나가고 두려운 후처치 시간을 맞이했다. 다행히 첫째 때만큼 추워 이가 떨리고 다리가 덜덜 거리지 않았다. 그땐 당직의 선생님이 몸 이렇게 떨리면 안 된다며 뭐라고 했더랬다. 누구는 몸을 덜덜 떨고 싶어 떨었나. 아무튼 그땐 여름이었고 이번엔 겨울이었는데 뭔가를 다 덮어놓고 분만이 이뤄져서 그런지 훨씬 덜 추웠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출혈을 잡기 위해 거즈를 넣어주며 계속 설명해 주었다.
"지금 태반은 잘 나왔고요, 출혈이 좀 있어서 거즈를 넣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혈이 계속 조금 있네요."
"제가 첫 째 출산 때 출혈이 잘 안 잡혀서 고생을 좀 했어요."
"그렇군요. 제가 잘 보겠습니다. 피부 안쪽 점막이 얇아서 출혈이 계속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수혈할 정도는 아니라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간호사 선생님, 거즈 뺄 때 신경 써서 봐주세요. 산모님, 제가 잘 꿰매도록 할게요. 몇 땀 더 꿰맬 거예요.... 다 됐고요. 아마 임신 중에도 건강 잘 유지하셨고 지금 아기도 잘 낳으셨으니 회복도 잘 될 겁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선생님, 아기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맞이한 캥거루 캐어의 시간. 눈을 번쩍 뜨고 나온 둘째의 모습은 사랑 그 자체였다. 아기를 안고 생각했다. '출산 과정이 이럴 수도 있구나. 저번에 내가 너무 고생했구나. 정말 무서웠고 또 힘들었는데 이렇게 할 수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다행히 무사히 아기를 낳았으나 한번 더 생각했다. 역시 순산은 없다고. 두 번째여도 첫 번째 출산과 또 다른 형태의 어려움이 있고, 여전히 목숨 걸고 낳는 일이므로. 그리고 출산으로 고통이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경력직이어도 수월하지 않은 것이 출산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