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산은 없다(1)

첫 출산의 기억

by 시월

첫째도 이렇다 할 태교를 하지는 않았지만 1월에 임신사실을 알았기에 담임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출산 예정일 한 달 전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혼자 공부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자체가 태교였으리라.


그러나 둘째는 이조차 하지 못했다. 임신 사실을 6월에 알았기에 담임도 피하지 못했고-학급엔 엄청난 아이가 있었고- 출퇴근 거리도 꽤 멀어서 하루에 두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야 했다. 첫째를 챙겨야 했으므로 입덧 중에도 첫째 혼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이라는 생각으로 물놀이를 엄청 무리해서 다녔다. 가을엔 날이 좋고 컨디션이 나아졌다는 핑계로, 막달 즈음엔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나다녔다. 그때마다 뱃속 둘째에겐 "힘들지? 미안해. 그런데 별 수 없어. 잘 붙어있어 줘서 고맙고, 끝까지 잘 붙어있다가 별 탈없이 만나자."라고 가끔 말을 걸 뿐이었다.



순산 기원합니다. 몸조리 잘하세요.


두번째 출산을 앞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해준 말이었다.

순산은 무엇이고 몸조리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둘째는 수월하다고들 하지만 아는 고통이라 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첫째 때 예정일을 3일 앞두고 속옷이 미묘하게 조금씩 젖는 듯하여 몇 시간을 고민하다 진료 마감을 앞둔 저녁시간에 병원을 찾았더랬다. 바로 전날 마지막 검진을 했던 터라 담당 선생님께서는 그 정도면 양수 아닐 것 같지만 한 번 보자셨다. 그러더니 당황한 얼굴로 양수가 맞다며 바로 입원하자고 하셔서 혼자 입원 수속을 마치고 얼떨결에 링거며 태동측정기(?)며 몸에 주렁주렁 달고 누웠다. 마침 그날 당직이 담당선생님이셔서 오늘 밤~새벽 사이에 낳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샌 양수가 무색하게 진통은 오지 않고 여느 날처럼 잠을 잤다.


다음날 새벽 잠결에 무엇인가 나의 항문을 깊숙이 찌르는 느낌이 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고 보니 이미 촉진제를 맞고 있고 그래서 관장을 시작했다고 했다. 설명도 했고 대답도 했다나. 옆에서 지켜본 남편이 설명해 주었는데 잠결에 네, 네 한 건지 당최 기억에 없었지만 이미 당하고 난 뒤였다. 스멀스멀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그 뒤 출산까지의 기억은 울부짖다 무통주사를 맞았던 것, 딱 2시간 괜찮고 그 뒤로는 더 큰 고통이 왔던 것, 그걸 지나 보니 낯선 당직의가 힘주라고 했고 어찌어찌 아이를 낳았던 것으로 뭉뚱그려져 있다.




더욱 선명한 것은 출산 뒤의 기억이다. 너무 추워 이가 딱딱 부딪히고 몸이 덜덜 떨렸다. 계속 춥다는 말을 반복하는 나에게 왜 추운지, 언제까지 추운지 알려주는 사람 없이 의료진은 분주했다. 약간 수술장에 혼자 버려져있고 다른 사람들은 셔터스피드를 늦춰 노출량을 길게 하여 찍은 사진처럼 지나가는 흔적을 남기며 휙휙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만 멈추고 세상은 바쁜 느낌. 그 바쁜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이 나를 휘감았다.


" 저 뭐 잘못된 거죠?"


한참을 기다렸다 묻는 나에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오른손에 또 다른 바늘을 꽂아 새로운 링거줄을 달을 뿐이었다. 두려웠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뭐가 잘못된 지는 모르겠고, 몸은 너무 춥고 목이 너무 마르고, 몸에서는 힘이 빠지니 무서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출혈이 심한 데다 잡히지가 않고 계속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당직의는 밖에서 기다리는 남편이 산모가 왜 이렇게 안 나오냐고 묻자 얼버무리고 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회음부의 고통이 심했고, 출산 일주일 후 병원에 갔을 때 담당선생님께서는 실밥을 뜯어주시며 고생했겠다고 했다. 조금 잘못 꿰매져있었다는 말을 슬쩍 덧붙이며.




남편이 기억하는 그날의 나는 눈알을 포함한 얼굴부터 가슴까지 실핏줄이 다 터지고 퉁퉁 부어 너무 힘들어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왕절개를 하자고 너무 말하고 싶은데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하니 걱정이라고 했다. 또 그럴까 봐서. 내가 또 늦게 나올까 봐서. 혹은 못 나올까 봐서였겠지. 그때를 기억하는 나는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어디 멀리 떠나갈 것처럼 집을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출산 가방만 싸면 되는데 베란다 창고부터 서재, 안방 장롱과 화장대, 부엌살림 등등 계속해서 팔 것은 팔고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 정리했다. 출산을 일주일 앞두고는 한 동안 먹을 국과 반찬을 열 가지 정도 해댔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많이 무서웠던 것 같다. 돌아오지 못할까 봐서.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순산하길 바란다는 말을 해주는지 알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순산이 어딨어, 엄마들 다 목숨 걸고 아기 낳는 거고 아기도 목숨 걸고 나오는 거지. 그치만 그걸 아니까 엄마들이 자꾸 순산 기원한다는 거겠지?


그렇게 두 번째 출산을 맞이했다. 역시는 역시였다. 순산은 없었다.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