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 천국(feat. 유축 지옥?)
혼자나 다름없는 조리원 생활을 시작했다. 옆방 A씨는 20대 초반의 초산모였고 남편분이 매일매일 면회를 왔다. 반면 30대 중반의 경산모인 나의 남편은 방에 들여보내주고 끝이었다. 원래같으면 이말저말 했을 나지만 조동모임이라는 거,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간단히 인사정도만 하고 지냈다. 게다가 맛없는 밥으로 인해 머릿 속이 복잡해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고 에너지도 없었다. 설상가상 그녀는 밥을 거르기도 하고(아마 남편과 배달음식을 먹는 듯 했다) 먹어도 아주 조금 먹고 금방 들어갔다. 그만큼 먹으면 배 안고프냐고 물을 뻔 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런 걸 안 좋아할 거라 생각하며 겨우 참았다. (옛날 사람인 걸 티내지 않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맛있는 밥과 마사지였는데 마사지는 아직이고 밥이 시원치 않으니 심드렁한 마음으로 다음 날을 맞이했다. 화장실 문턱이 자꾸만 더 높게 느껴지던 차였다.
갑자기 밥이 다시 맛있어졌다?!
조리법도 다양해지고 반찬의 구성도 좀 달라진 것이다. 어라, 어제 뵀던 조리사님이 아니시다. 알고 보니 조리사님이 두 분이신 거였고, 이 분은 보름밥을 해 주시고는 퇴근하셨다가 이틀을 쉬시고 다시 오신 것이다.
밥이 맛있어지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잘 있어봐야겠다 싶었다. 그러니 튀어나온 화장실 기둥 벽이 다른 방에도 있는지 궁금해지고 그 방으로 옮길 수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조리원 원장님께 여쭈니, 방을 다 둘러보고 원하는 방으로 옮기라는 말을 들었다. 신나게 다른 방을 구경했다. 막상 방들을 다 둘러보고 나니 미묘하게 다른 가구 배치, 유축기 모델 등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이틀 머문 것이 전부지만 지금 이 공간이 제일 마음에 든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하면 언제든 방을 바꿔주겠다는 말까지 들으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
게다가 마사지사님께서 사람이 하도 없어 하루 쉬고 나오기로 하셔서 마사지를 못 받고 있었는데 세상에. 지금까지 이런 마사지는 없었다.
마사지 선생님 가라사대, 산모님의 골반이 주저 앉아 내려와 있었다 하니 경혈을 자극하여 다리가 길어졌다 하시더라. 마사지 선생님 가라사대, 산모님의 모유가 등까지 가득 차 빠져나가지 못해 어깨와 등 통증을 유발했다하더라. 이에 선생님께서 괄사로 뚫어주시되 모유량이 늘고 등 통증이 사라졌다 하더라. 마사지 선생님 가라사대, 허리에 협착이 있어 풀었다 하시더니 누워 몸을 뒤집을 때 신경이 눌린 듯 힘을 못주던 다리에 힘이 들어가 산모가 일어나는 기적을 행하셨다 하더라.
마사지를 받고 나니 천국도 이런 천국이 없다. 힘이 안들어가던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저림 증상이 사라져, 처음엔 마사지가 만사해결책이네 하며 코웃음치던 나는 사라지고 그저 그녀를 신봉하며 만나길 고대하는 나만 남아있었다.
이러고 나니 언제 잠을 설쳤냐는 듯 머리만 대만 자기 시작했고, 뭘 어찌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나 하던 나는 사라지고 뜨끈한 방에서 제대로 '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쉬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나와 내 아이, 럭키는 특별대우를 받고 있구나
산모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특별히 소수정예로 받을 수 있었고, 특히 산후요가 수업은 일대일로 받았다. 이런 일은 쉽게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맛있는 반찬도 많이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아이는 어떠한가. 신생아실에 돌봐주시는 분이 최소 3명인데 아기는 딱 둘뿐. 아기보다 선생님이 더 많은 상황. 집중케어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완전 땡큐다.
생각을 달리하니 태도와 표정이 달라졌던걸까. 보시는 분마다 나와 내 아이가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아이가 어쩜 저렇게 똘망똘망한지, 산모님이랑 똑닮았어요..", "산모님, 어쩜 그렇게 밝게 인사하고 예쁘게 말을 하세요? 다들 산모님 예쁘다고 칭찬해요~", "산모님 밥 많이 드세요. 맛있게 잘 먹어서 너무 보기 좋아요." 매일 들으니 더 기분 좋고, 더 '예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첫 째 때는 공공의 수유실이 있어 모여 유축하며 다른 산모들과 친해졌는데 여기는 그런 공간이 없어(있어도 산모가 없어 혼자 유축해야했을 테지만) 새벽이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낮에 기분 좋게 푹 쉬어 컨디션을 만들어 놓으니 새벽에 유축하는 시간은 밀린 드리마와 예능을 정주행하는 시간으로 잘 활용할 수 있기까지했다. 그러니 더이상 새벽 유축이 지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은 화장실의 문턱이 높게 느껴지지 않았다.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없어진지 오래였다. 남은 날이 적게 느껴지고 집에 가는 날이 가까워짐에 따라 묘하게 아쉬울 뿐이었다.
알고보니 2월 중순에는 만실이 예정되어 있었다. 딱 내가 들어올 시점에 사람이 적었던 거고 일주일 정도 특별 대우를 받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한 두명씩 새로운 산모들이 들어오다가 정말 내가 나갈쯔음엔 거의 만실이었다. 와,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럭키가 럭키했다!
다시 없을 조캉스를 찐하게 누리고 집에 온지 어언 한 달(이었는데 발행한 지금은 두 달). 조리사님의 밥과 마사지 선생님의 손길이 그립다. 퇴소하던 날 우리 아기가 너무 예쁜데 나가서 아쉽다며 사랑의 눈길로 봐주시던 그 얼굴이 생생하다.
아, 남편은 농담처럼 셋째낳아 또 가라고 하는데 아마 조캉스는 다신 없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