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원래대로 돌아가렴

by 시월

조캉스를 누리고 나서 남편이 출산휴가를 일주일 썼다. 그 후엔 산후도우미님이 오셨고 곧 큰 아이가 입학했다. 학교라니! 매년 치른 입학식이었는데 내 아이의 입학식이라니. 둘째를 맡겨두고 등하교를 시켰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8000보를 넘게 걸었다. 느낌이 이상하여 확인해보니 거의 끝나가던 오로의 양이 도로 많아졌다. 붉고 맑은 피였다. 아이를 낳은 지 딱 한 달인데, 모유수유 중인데.. 벌써 생리를 하나 했다.




누군가 나보고 걱정을 사서 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런가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걱정할만해서 한 거였나 보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생리양이 줄지 않아 동네 여성의원에 갔다. 임신 사실을 확인했던, 아주 친절한 선생님이 계시는 곳이었다. 분만병원은 거리가 있고 대기가 길어 임신 중 배가 뭉치거나 교통사고가 났을 때 우선적으로 달려갔던 곳이었다.


“뭐가 달라졌나 했더니 아기를 낳으셨군요! 축하드려요!“


반가이 맞아주셨던 선생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자궁 내 피고임이 있어요. 양이 상당해요. 지금 출혈량은 괜찮지만 갑자기 쏟아질 수 있어요. 빼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선 그게 어려워요. 분만병원에 가야 해요. 빨리 안 간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둘러 갔으면 해요.“


다행히 다음날 분만병원 예약이 가능하여 예약을 해두고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자궁수축 풀림’


하혈을 하여 병원에 갔더니 자궁수축이 풀렸다는 게 대체의 이야기였고 수액을 맞고 괜찮아졌다는 사람 반 수술을 했다는 사람 반이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처럼 큰 애 등교준비를 도왔다. 아직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고 아무도 입원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병원 가기 전 유축기, 모유패드, 생리대, 세면도구, 휴대폰 충전기 등 입원 짐을 꾸렸다. 수술하려면 금식이 필수이니 밥을 굶었다. 그러는 한편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했다. 수술을 하지 않고 병원을 나선다면 집이 아니라 큰 애의 학교 설명회에 가야 했기에.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니 기우뚱하며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다. 일단 약을 써보자고 질정을 넣어주셨는데 아뿔싸! 일어나려는 순간.. 왈칵왈칵 뜨거운 것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나왔다. 아니 터져 나왔다. 마치 말이 트인 지 얼마 안 되어 자기 마음을 유려하게 표현할 수 없어서 하고픈 말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된 듯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하며 ‘어, 어..’하였다. 놀란 나를 달래주시던 담당 선생님은 자궁수축제를 맞고 가자 하셨다. 복잡한 마음으로 수액을 두 팩 연달아 맞으며 아이 학교와 친정 엄마에게 연락했다. 수축제를 다 맞고 초음파를 다시 봤는데 별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했다. 일단 약을 먹어보자고 하여 입원가방도 학부모 패션도 다 써먹지 못하고 집으로 왔다.


가까이에 그런 사례가 없었다고 겁먹은 나에게 엄마는 엄마도 그랬다고 했다. 근데 괜찮아졌다고. 아이고 엄마에 대해서 정말 몰랐구나. 어린 나이에 나를 낳고 또 내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 날 놓고 퇴원하고 또 엄마는 엄마대로 하혈을 했구나. 진짜 힘들고 무서웠을 텐데 난 정말 몰랐구나 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족 넷이서 봄에 제주도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으려나 생각했다. 철도 없지.


일주일 간 큰 애 등하교도 엄마에게 부탁하고 최대한 쉬었다. 약도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가는 날 아침, 뒷베란다에 까치가 앉았다. 좋은 소식이 있겠구나! 역시 럭키, 엄마 오늘 집에 금방 오겠다 하고 습관처럼 물 한잔과 유산균을 먹었다. 불안감에 미처 풀지 못한 입원짐을 챙기면서도 설마 했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차도가 없고 오히려 피가 늘었다 했다. 소파술을 해야 한다고. 동의서를 작성하고 오늘은 안 되냐 물었다. 습관적으로 먹어버린 물과 유산균이 문제였다. 먹은 지 오래됐어도 시간이 애매해서 당일로는 어렵다고 했다. 이틀 뒤로 수술 날짜를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산후도우미님은 “괜찮대죠?”하고 물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속이 답답하고 우울했다. 별 거 아닌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지만 출산은 단순히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의 문제가 아닌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분만의 고통이 일시불이냐 할부냐가 문제가 아니다. 제왕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기흉 시술 후 아픔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기흉보다 훨씬 절개부위가 클 테니 너무 아플 것 같았다. 흉터나 유착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실은 그게 제일 무서웠다. 그러면 일시불인 자연분만은 수월한가? 아니다. 아이를 낳고 나면 회음부 고통이 있다. 그리고 또 제왕절개와 자연분만 모두 젖이 돌면 느끼는 유방통증이 있다.


여기까진 예측 가능했는데 자궁수축이 풀리다니. 예습이 철저했는지 알았는데 기출변형이다.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결국 수술대에 올랐고 멍한 상태로 남편의 부축을 받아 집에 왔는데 왠지 무섭고 서글펐다.




사실 첫애를 낳았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순산했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건강했고 나도 결국엔 회복되었으니까. 그런데 둘째를 낳고 나니 왜인지 '순산'이라는 말에 화가 나서 글을 썼다. 실은 더 위험한 출산을 겪은 엄마들도 많을 것이다. 친구 A는 급속분만이라고 하여 진통은 짧았으나 진행이 빠른 것 자체가 위험이라고 했고, B는 아직 나올 때가 안 된 아이가 나오는 바람에 무통주사도 못 맞았다고 했다. 조리원에서 만난 엄마 C씨는 양수가 터져 병원에 갔는데 진통을 하다 하다 아기가 위험하다고 하여 결국 제왕절개를 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본 D씨의 경우 자궁수축이 심해서 임신 기간 중 절반 이상을 누워서만 지냈다고 했다. 이러한 분만 사례들만 봐도 어쩌면 나는 순산 중 순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둘째를 낳고 조리원에 들어온 첫날, 회음부 고통을 느끼면서 첫애 때 느꼈던 고통이 떠올랐다. 누가 그랬는가 자연분만은 일시불이고 제왕절개는 할부라고. 자연분만은 회음부의 고통이 있다. 똥꼬로 수박을 낳는 느낌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실제로 머리둘레가 꽤 된다. 열상방지주사를 맞았지만 꿰매놓아 앉지를 못한다. 제왕은 무서워서 못했다. 제왕절개는 수술부위가 아프다는데 거기만 아프진 않을 거다. 어쨌든 체형이 변화되었으니. 그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관절과 근육의 통증.. 또 이번 경우처럼 하혈을 하기도 하니까.





수술을 마치고 또 약을 먹으며, 하루 뒤, 이틀 뒤, 일주일 뒤 세 번의 외래 진료를 봤다. 다행히 수술 경과는 좋다고. 그렇지만 생각했다. 끝이 없다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더니. 근데 이젠 좀 끝났으면 좋겠다. 오는 6월에 다시 병원에 갔을 땐 완전히 깨끗하다고 수축도 잘 됐다고 듣고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