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toration Earth
지난주에 컴퓨터를 켜니 경고 메시지가 떴다.
⚠️ S.M.A.R.T 경고 ⚠️ 하드 디스크가 손상되었으니 디스크를 교체해야 한다는 경고다.
하드 디스크를 교체하기 전에 먼저 중요 데이터를 백업하라는 안내 메시지도 같이 떴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했다.
깔려 있는 프로그램들을 다시 깔려면 기본적으로 수십만 원이 다시 드는 그런 업무용 컴퓨터였다.
시스템 이미지 복구를 하기 위해 일단 데이터를 통째로 백업해 두었다.
이제 컴퓨터를 교체할 것이냐 하드만 교체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지구의 시스템도 기본적으로 컴퓨터의 시스템과 개념이 같다.
지구가 아프다고 말하면서 시작한 나의 소설인 <지구 시스템 복원>에서도 복구를 실행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구의 하드 디스크를 폐기하기에 앞서 지구의 중요 데이터를 모두 백업시켜 놔야 한다.
그런데 지구 데이터는 어디에 백업을 해 놔야 할까?
지나간 과거의 일들은 기록으로 남는다. 과거의 기록들은 책으로, 데이터 저장소에, 방송국 자료실에 기록으로 남는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다. 그런데 아무도 보지 않은 뒷골목에서 벌어졌던 어떤 사건은 나의 기억 속에서 지우면 영영 사라져 버릴까?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들은 애당초 없었던 일처럼 잊혀 버릴 수 있을까?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부끄러운 기록들이 떠오르면 '그래 내가 잊어버리면 그만이야. 아무도 그 순간을 중요하게 기억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며 의식적으로 기억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가 잊어버려도 그 기록은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다.
우주 저 멀리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어딘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쓰는 이 소설은 일단 있다고 우기고 그다음에 천천히 찾아보는 게 특징이다.
다행히 현대 물리학에는 우주의 양자 컴퓨터 개념과 지워지지 않는 로그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양자 입자는 모두 짝이 있다.
그 양자 입자가 한 곳에서 진동하면 짝이 되는 입자는 우주 어느 곳에 있어도 똑같이 진동한다.
이를 물리학에서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라고 표현한다.
원자보다 작은 양자의 세계에서는 두 입자가 한 번 상호작용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나의 상태를 두 입자 간에 공유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보고 유령 같은 원격 작용이라며 부정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빛보다 빠른 것은 없어야 하는데, 얽힌 입자끼리는 정보가 즉시 거의 동시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양자 얽힘의 핵심은 정보의 보존이다.
한 입자가 경험한 자극이나 변화는 얽혀 있는 다른 입자에게 고스란히 반영된다.
아무도 보지 않은 뒷골목의 사건이라도, 그 사건에 참여한 입자들과 얽혀 있는 짝이 되는 입자들은 그 사건의 로그(Log)를 우주 저 멀리에서 실시간으로 백업하고 있다는 말이 물리적으로 성립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정보는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복제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록과 로그(Log)는 우주의 양자 컴퓨터에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는다. 거리와 상관없이 지구의 데이터가 동기화되는 우주적 클라우드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우주의 클라우드 시스템이 있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양자 얽힘에 의해 정보가 저장되는 장소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바로 블랙홀이다.
양자역학의 핵심 원칙 중 하나는 정보 보존의 법칙이다. 우주의 어떤 입자가 어떤 상태였는지에 대한 정보는 에너지가 변하더라도 결코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
블랙홀과 정보의 관계는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 중 하나인 블랙홀 정보 역설(Black Hole Information Paradox)과 직결된다.
물리학자들은 블랙홀이 증발하더라도(호킹 복사), 그 정보는 우주 어딘가로 다시 방출되거나 양자적으로 얽힌 상태로 보존된다고 믿는다.
원소는 다 짝이 있고 똑같이 진동한다는 양자 얽힘의 개념은 최근 물리학에서 'ER=EPR' 가설로 발전했는데 두 개의 양자 입자가 얽혀 있는 것(EPR)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 웜홀(ER)로 연결된 것과 같다는 것이 이 이론이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정보는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 양자 역학의 대원칙이다.
만약 블랙홀이 정보를 완전히 지워버린다면 그것은 현대 물리학의 근간이 무너지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현대 물리학은 블랙홀을 우주에서 가장 완벽하고 밀도 높은 정보 저장소라고 보고 있다.
현대 물리학에 따르면 블랙홀은 우주 전체와 양자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정보 네트워크의 허브인 것이다.
이 사실에 경탄하거나 당황하지 마십시오.
우주의 중앙 서버, 즉 기억의 저장소(므네메이온)에 그 존재의 로그가 기록된 모든 이들이, 설계자의 복구 명령(음성)을 듣게 될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생명의 질서에 부합하게 선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생명의 복구(부활) 프로세스로 진입할 것이며, 비뚤어진 욕망과 악한 오류를 반복하며 시스템을 훼손한 사람들은 심판의 복구(영구 삭제) 프로세스로 강제 호출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서 그분은 므네메이온(μνημεῖον), 즉 기억의 저장소를 언급하셨다.
많은 성경에서 단순히 무덤이라고 번역된 이 그리스어 므네메이온(μνημεῖον)의 원래의 의미는 정확하게 기억의 저장소이다.
그리스어 므네메이온은 '기억하다'라는 뜻의 '므나오마이(mnaomai)'에서 유래했다.
이것은 단순히 시신을 매장하는 장소나 구덩이를 뜻하는 일반적인 무덤을 의미하는 '타포스 (taphos)' 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므네메이온의 정확한 번역은 Memory of tomb 기억의 무덤이다.
기억의 무덤은 단순히 시신이 썩는 무덤이 아니라, 육체가 파손되어도 우주의 양자 컴퓨터에 고스란히 백업된 영혼의 로그(Log) 메모리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에 놀라지 말라. 기억의 저장소에 저장된 사람들이 그분의 실행 명령에 따라 복구될 시간이 오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역시 지구의 기록들은 모두 므네메이온에 백업되고 있던 거였어.)
예수님의 말씀은 요한 계시록에서 한번 더 확인할 수 있는데 죽은 사람들의 기록인 두루마리에 대한 언급이 요한 계시록에서도 나온다.
나는 죽었던 사람들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우주의 중앙 서버에 저장된 기록 두루마리들이 열렸습니다.
또한 '생명의 책'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두루마리가 열렸습니다.
죽었던 이들은 그 두루마리에 고스란히 백업되어 있던 자신들의 생애 로그(Log), 즉 각자가 실행했던 모든 행위의 기록에 근거하여 최종적인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하늘에 있는 두루마리의 이름은 바로 생명의 책, Book of life이다.
Book of life에 우리의 모든 인생 기록이 고스란히 백업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곧 업무용 컴퓨터에서 손상된 하드디스크를 제거하고
새로 구입한 SSD 하드 디스크를 이식한 후 백업 이미지를 이용해 컴퓨터 시스템을 복구하려 할 것이다.
지금까지 죽은 자들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백업되어 있다면 그들도 복구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별한 누군가를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아내를...
사랑하는 부모님을...
사랑하는 아이를...
한번 만이라도 만나 보고 싶다.
그들이 영영 잊히지 않고 어딘가에 소중히 기억되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