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화 : 정들던 회사를 떠나다

인생 제2막, 여긴 일본인가 한국인가? (마지막 화)

by 임유빈

일을 한지 어느덧 2년. 2023년 9월.

곧 있으면 연간 목표에 대한 개인 역량 평가가 이루어질 시즌이었다.

파트장님과 팀장님께서는 각 팀원들에게 이번 년도의 목표 달성에 관한 현재 진척 사항과 퍼센티지에 대한 표를 작성하라고 하셨고, 계산해보니 목표 100% 달성이었기에, 이대로라면 나는 A랭크로 이번 년도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내심 기분은 좋았지만, 그간 고민이 참 많았다.


가장 컸던 문제는 '술'이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


나는 회사 생활 중, 술을 정말 많이 먹었었다.

내가 술을 즐기기 시작했던 것은 대학교 4학년 때였는데, '늦바람이 무섭다.'라는 말이 참 와닿을 정도로 먹기 시작했었다.

술에 취하면 알딸딸해지는 기분을 처음 느꼈었고, 술에 취하면 말이 참 편하게 나와 처음 보던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기에, 회사 내정까지 받았던 당시 4학년 때에는 걱정도 없겠다, 대학교 선배, 동기, 후배들과 새벽 6시까지도 술을 먹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런 버릇 때문이었을까?

이 회사에 들어와서도, 고객사와의 회식, 사내에서의 회식 등등 술자리에는 빠짐 없이 참석했었고,

빠르면 11시~12시 (6시간 정도), 늦으면 새벽 2~3시 (9시간 정도)까지도 술을 마셨었다.

한번의 회식 때에는 인당 각 소주 4병 정도씩 먹었고, 가장 많이 마셨던 주는 주 6일 술을 마셨던 적도 있었다.


새벽 2시에 회식이 끝나면,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와 씻지도 않은 상태로 피곤에 쪄들어 잤고,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대충 씻고 셔틀버스를 타러 갔었다.

아직 술도 덜 깼던 상태였으니, 셔틀버스를 타도 정신이 맨 정신이지는 않았다.

머리가 삥삥 돌 정도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고, 버스 시트 가죽 냄새 때문에 토를 할 것 같은 느낌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렇게 잠이 덜 깬 상태로 회사에 들어가서 사내 식당에서 찐한 매운 조개국과 함께 해장 겸 아침을 먹었지만, 머리는 아팠기에 파트장님과 여러 다른 선배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4층 휴게실에 가서 잠을 청하곤 했다.

정말 술을 많이 먹었던 다음 날은 화장실에서 토하기도 했었기에, 오전 일과는 쉬느라 내팽겨치고 고객사에서 오는 연락만 기억해두었다가 오후부터 일을 시작했던 때도 있었다.


술을 정말 많이 먹던 어느 날이었다.

평택 시내에 위치했던 유명한 닭도리탕 집에서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소주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던 때였다.

닭고기를 씹던 찰나. 갑자기 뭔가 딱딱한 덩어리 하나가 내 혀 쪽으로 빠지는게 아니겠는가?

나는 '설마 아니겠지'하고 뱉어봤는데 이빨이었다. 왼쪽 위 이빨 하나가 빠졌던 것이었다.


다음 날, 파트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연차를 써서 평택 고덕에 위치한 한 치과를 향했다.

치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X-Ray를 찍어보시더니,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얘기하셨다.

"(치아 바로 위쪽을 가리키며) 여기 고름이 이만큼 자리 잡힌거 보이시죠?
이거 염증 때문에 생긴건데, 그 염증이 치아를 녹일 정도의 수준까지 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빨이 부러진건 저 염증 때문이에요. 이 치아는 더 이상 못 쓴다고 보셔야 됩니다."

내가 엑스레이 촬영 사진을 다시 한번 살펴봐도 오른쪽과는 다르게 왼쪽 코부터 치아 바로 윗쪽까지 큰 덩어리가 뭉쳐 있는게 보였다.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이렇게 물어보셨다.

"혹시 술 많이 드세요?"

나는 업무 때문에 술을 많이 먹는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의사 선생님께서는 술을 먹으면 염증 반응이 이렇게 심하게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임플란트가 필요하니, 당분간 술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결국 그 윗쪽 이빨은 현재, 임플란트를 무사히 마친 상태이긴 하다.)


당시 빠졌던 이빨과 즐겨 먹었던 닭볶음탕 (원래 이빨에 씌웠던 은니까지 싹 다 빠져버렸다) (2023년)

호빠에서 일하는 영업직원


결국 나는 술이 몸에 맞지 않았던 체질이었지만,

어떻게든 회사에서 업무의 목표 하나만을 위해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 위해 먹었던 것이었다.

(하긴, 누구던 소주 4병씩 매일 먹는다면 건강 문제는 백퍼 발생하긴 하겠지.)


고객사와 술을 먹다보면 각 소주 3병~4병 쯤 먹을 때 즈음, 가끔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허벅지를 손으로 꼬집으며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내가 그대로 넉다운 되면 고객사에서도 좋지 않게 볼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술을 과하게 먹는 날이 너무 잦아지다보니, 임플란트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간쪽이 아팠기에 병원을 가봤는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간수치가 너무 높아졌다고 술을 더 이상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건강 때문에 한동안은 술을 안먹었다.


내가 술을 끊은지 얼마 안되어, 파트장님께서 나를 불러 회의실로 데리고 가셨고, 말을 시작하셨다.

"유빈아, 너가 술을 안먹으면 내가 너를 고객사에 데리고 갈 수 있겠니? 너가 술을 먹어야 ... (생략)"

나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에, 실망도 그만큼 큰걸까?

그 말을 듣고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난 여기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라는 생각과 '이럴거면 호빠에 있는 호스트랑 도대체 다를게 뭔가'라는 생각.


건강 문제를 다 얘기했음에도 술을 강요하는 것은 선을 넘은 것이 맞다.


고객사와의 회식 당시 (2023년)

정들었던 회사를 떠나다


술이라는 것은 사람들과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였고,

술자리라는 것은 기분을 참 좋게 만들어 서로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었다.

하지만 그 술이라는 것으로 인해 나의 정신은 갈수록 피폐해지기만 했다.


2024년 1월.

나는 파트장님께 사직서를 내밀었고, 얼마 안가 팀장님, 부장님과의 면담까지 마친 후 퇴직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다.


물론 술만이 퇴사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었지만, 여기서 밝힐 수는 없는 개인사이기 때문에 양해 바란다.


사내 회식 당시 (2023년)


회사 퇴사 당일 오후 1시 경, 회사에 처음 왔을 때 뵈었던 인사 담당자님을 다시 뵈어 퇴사 신청서를 작성하였다. 이후의 남은 시간 동안은 그동안 함께 일했던 한국 관계자와 일본 관계자분들, 그리고 중국과 베트남, 대만 지사의 담당자들에게 퇴사 인사를 드렸다.


나와 함께 일했던 고객사의 책임급 엔지니어 분께도 전화로 퇴사한다는 인사를 드렸다.

그분께서는 내가 퇴사하는 것에 대해 정말 아쉬워했다.

"유빈 사원님이 대응도 빠르게 해주시고 보고서도 깔끔하게 정리해서 주셨었는데, 가시면 너무 아쉽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저희도 스무스하게 일을 해왔는데.. 무슨 일 때문에 퇴사하시는거에요."

그러면서 아쉬움의 한숨을 수 차례 내쉬었다.


그동안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 내가 입사 후 이 분을 만났을 때는 하나도 모르는 전문 용어들에 항상 버벅이다보니 나를 답답해 하기 바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대분류와 소분류, 문제 해결방안 플랜A,B 등으로 정렬된 나의 보고서를 보고 고마워 하셨다.

"유빈 사원님. 덕분에 타 연관 부서에서도 문제 원인과 해결 계획에 대해서 어느 정도 납득했고,
상부에 보고도 깔끔하게 완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참 기뻤다. 뭔가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결론적으로는 고객사에서도 내부 상부 보고를 위해서는 우리 쪽 보고서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기에,

우리 쪽에서 답답하게 설명하면, 저 쪽에서도 상부 보고가 어려워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가 이해하기 쉽고 간략하게 설명해야 일처리가 서로 빨라지는 법이었다.


'기술 영업사원'이란 고객사에는 문제 해결사인 '정비사'와 같은 역할임과 동시에,

사내에서는 각 연관 부서를 총 지휘하고, 자료들을 취합하여 정리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이다.

여기서, 고객사에 필요한 기술영업 사원이란, 그들의 요구에 맞게 명확하게 문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만능 정비사이다. 그렇게 함으로 고객사와의 신뢰 관계를 쌓아나가고, 그것이 곧 고객사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당시 작성했던 퇴직 인사 메일 (2024년 1월)


이후, 나는 유니폼과 노트북 등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의 모든 사내 물품을 반납했고,

오후 3시가 되어, 부서의 모든 분들께 한분 한분 인사를 드리고 사무실을 떠났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떠나는 마지막 발걸음에는 나를 항상 도와주시고 챙겨주셨던 내 바로 위 책임님께서 함께 해주셨다.

회사 보안 게이트를 넘어 보안실에 사원증을 반납하고, 책임님께 인사를 드렸다.

"유빈아, 잘 지내고 다음에 또 연락하자."

마치 군대의 전역식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영업 출신이었던 형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었기에, 나는 퇴근 시간까지 근처의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거쳐왔던 사람들과, 회사에서 그동안 지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1시간 반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참 시간도 빨리 가더라.

'소똥 냄새 참 많이 나는 이 평택의 시골 바닥, 내가 여기 다시 올 일이 있을까?'


그렇게 퇴근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고, 그 형과 헤어졌다.


길었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았던 2년 반 동안의 회사 생활.

2024년 1월 12일, 그렇게 나는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날, 회사 주차장 (2023년 겨울)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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