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른 우리가 동남아 일주를 결심하기까지
“너라면 같이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드니 하버 브리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커다란 나무 아래서 그가 말했다. 우리가 만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머뭇거렸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그와 한국에서 서른을 넘긴 나. 우리는 많은 것이 달랐다. 성장한 환경과 생각하는 방식,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 그리고 취향까지.
“왜?”
하고 되물었다. 여행은 마음 맞는 사람끼리 하는 거라 생각했다. 먹고 싶은 음식이 비슷하고 일어나는 시간, 즐기는 스타일, 곧 생활 습관이 잘 맞고, 아름다운 것을 볼 때 같은 포인트에서 감동받는 것들. 그게 여행의 시너지를 낸다 생각했다. 사랑도 그런 사람과 할 거라 생각했다. 나와 같은 영화를 좋아하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감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는 소울메이트.
“생각해 봐. 같은 것을 좋아하면 결국 하나만 보게 될 거야. 좁아지는 거지. 똑같은 것들에 만족하다 보면 처음엔 좋지만, 언젠간 질릴지도 몰라. 너는 나와 다른 것을 봐. 나는 너와 다른 것을 보지. 심지어 같은 것도 서로 다르게 보잖아.... 그렇게 우린 하나로부터 둘 셋 넷을 알아 갈 거야. 다르다는 건 누구 한 명이 맞춰가야만 하는 게 아니야. 서로의 관점을 즐길 수 있는 축복이지.”
그날도 그랬다. 우린 쨍한 낮에 도착해 잔디에 누워 있다가 바다 너머 지는 해를 보았고, 빌딩들 뒤로 크고 노란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해가 질 때 마지막 순간이 왜 타는 듯 붉게 빛나는지를 설명해 줬고, 밤이 되자 별자리를 찾아 주었다. 나는 이 크고 멋진 나무의 종류가 궁금해 나무 사전을 뒤져 알려 줬고, 내가 좋아하는 풀내음 나는 향수를 소개해 줬다.
서른이 되던 겨울이었다. 전 남자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준비가 안 되었다. 이 나이쯤 되면 그렇듯, 커리어는 안정되어 가고 가정을 꾸릴 남편을 만나고 곧 아이를 낳을, 행복하지만 무난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못해 본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이대로라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스스로 ‘희생’했다 생각할 것만 같았다. 서른 끝무렵 비행기에 올랐다. 워킹홀리데이의 마지노선 나이, 소위 막차를 탔다.
여름이던 시드니는 청량했다. 별다른 계획 없이 돈 벌고, 경험하자 가벼운 기대감이 있었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무릎이 좋지 않아 재활 운동을 다니며 돈을 썼다. 예비 영어 선생님들의 수업 시연을 위한 가짜 학생 역할을 하며 공짜로 수업을 들었다. 조금은 가난했지만, 남들의 기대와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날들이었다. 니콜라스와는 거기서 만났다. 그도 워킹홀리데이를 왔고 일을 구하지 못해 전전하고 있었지만 참 유쾌했다. 우리는 1월 1일 새해 불꽃놀이가 끝나고 첫 데이트를 했다. 작은 항구 둑에 앉아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이야기했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그가 흥미로웠다. 돈 대신 시간이 많았던 우린 종종 만나 해변에서 수영을 하고 공원에서 해를 쬐고 싼 펍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큰 나무 아래 그날, 그는 나와 계속 만나고 싶다고 했다.
자기중심의 완전히 개방된 세계에 살던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라 배워온 나. 아침을 꼭 챙겨 먹는 그와 올빼미처럼 사는 나. 다른 문화와 생활 습관으로 비롯한 오해들이 많았다. 그리고 치명적이게도 우린 취향이 달랐다. 옷 입는 스타일부터 바디 워시 향을 고르는 사소한 감각, 돈 아까워하는 부분.... 생각만 해도 피곤할 일들. 그렇지만 이런 ‘다름’으로 인한 부딪힘이 신기하게도 언제나 대화로 끝이 났다. 독불장군처럼 살던 내겐 평생 있을 수 없었던 일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마지막은 유머로. 나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아, 여행.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여행마저 제한된 시간 안에 치열하게 ‘부숴야’ 하는 한국의 환경이 나와 스타일 잘 맞는 ‘여행 메이트’를 바라게 만든지도 모른다. 여행지까지 가서 더 피곤한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니콜라스를 만나고서 마음을 조금 고쳐 먹었다. 잘 맞지 않아도, 맞춰 가며 또 다른 걸 얻을 수 있으니까. 피곤한 일들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집스런 태도에서 생기는 법이다.
그를 만난 지 6개월이 지났다. 우리는 워킹홀리데이가 뭘까 생각했다. 한국에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오는 사람들은 대개 ‘워킹’을 생각한다. ‘돈’을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만난 대부분의 프랑스 친구들은 ‘워킹’으로 번 돈을 털어 섬으로 사막으로 ‘홀리데이’를 떠났다. ‘경험’을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내 삶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 것.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부딪혀 보는 것. 더 넓은 세계를 보고 경험하는 것. 그럴 때마다 조금씩 더 너그러워질 삶. 우리는 조금 모아둔 돈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우리 방식으로. 여행이란 이름 아래 삶의 의미를 애써 찾으려 하진 않기로 했다. 시드니에서 맥주 한 잔 마실 돈으로 필리핀에선 여섯 잔도 더 마실 수 있으니, 시드니의 셰어 하우스 월세로 인도네시아에선 왕처럼 잘 수 있으니 떠날 이유는 충분했다. 무겁게 끌고 온 이민 가방은 각자 나라로 부쳐 버렸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했다. 7kg 백팩을 하나씩 메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