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 SNS 과도기의 시작
브런치를 시작하며 인스타그램을 공개 계정으로 돌렸다. 훗날 나름대로 내 채널이 필요할 거란 생각에. (김칫국)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너도 이제 인플루언서를 시작하는 거냐 했다. 그전까지는 팔로워를 아는 사람만으로 가려 받았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가끔 모르는 사람이 팔로잉하면 들어가 본다. 무얼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진들을 올리는지. 한 달 전쯤 누군가 팔로우하길래 들어가 봤더니, 글쎄 다른 계정의 사진을 캡처해서 자기 것인냥 올린 유령 계정이었다. 영혼없는 저화질 셀카, 뜬금없는 단풍, 음식 사진. 하루만에 올린 게시물들. 고등학교 친구들 모두를 전투적으로 팔로우했더라. 아마 나중에 조건만남 계정으로 쓰겠지. 도용된 사진의 당사자가 안쓰러웠다. 어느 날은 [알바 모집]으로 시작되는 계정이었다. 간단한 데이트 알바로 월 800~1500 고수익 보장해 드립니다. 페이 당일 현금 결제. 차단 신고 놓고 나니 인스타그램에 정이 조금 떨어진다. 페이스북과 같은 수순이구나. 그렇겠지. 페이스북이 낳은 자식인데.
나는 인스타그램을 늦게 시작한 편이다. 한번 시작하면 쉽게 중독되는 내 성격을 알기 때문에 아예 깔지도 않았다. 호주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때 알았다. 연락을 하려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철새처럼 왔다 떠나는 호주의 워홀러들에게 전화번호 교환은 이상한 일이었다. 전화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메신저로 했다.
방치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두고 새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점차 일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호주 생활과 여행 기록장이 되었다. 인스타그램은 소식 접하기 어려운 외국 친구, 못 본지 오래된 한국 친구들의 일상을 보고 가볍게 안부를 묻기에 참 좋았다. 인스타그램 메시지는 왜인지 페이스북 메시지보다 덜 진지해서 부담이 없었다. 스토리를 보고 서로 하트 이모티콘을 보내고 하우아유를 물었다. 언제부턴가 스토리에 지나치게 많은 광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쎄했다. 유튜브가 중간 광고를 넣기 시작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지인 외에 보는 계정은 미드 프렌즈 클립, 모델이나 패션 관련 피드였다. 하루는 김나영 인스타그램을 보고 왔더니 검색창이 온통 ‘김나영 톰브라운 스타일링 화제된 이유’로 도배돼 있었다. 들어가 보니 사진만 붙여 놓고 화제된 이유 하나도 없더만. 한동안 톰브라운 스타일링이 검색창을 장악했다. 같은 콘텐츠로 인터넷 신문사가 우라까이(복붙) 하듯 다들 베꼈다. 사진에 낚시 카피만 넣으면 되니 기사보다 훨씬 쉬울 테고. 물 건너 미국의 프렌즈 계정들도 똑같았다. 사람들이 망치는 콘텐츠 퀄리티는 광고보다 더 쎄했다. 물론 인스타그램에게 광고는 필요하다. 당연히 플랫폼을 이용하는 대가로 광고 몇 개 볼 의사도 있고 아니면 관심 있는 이야기를 보기 위해서 그들의 수익성 PPL을 눈감아 줄 용의도 있다. 그러나 은근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사람은 쉽게 얻을 수록 쉽게 질린다.
우리나라에서 페이스북이 언제 망했나. 광고와 신변잡기용 동영상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사용자 연령대가 올라가며 진지하고 긴 글들이 올라오는 것들도 한몫했다. 네모 사진에 글자수 제한이 있는 심플하고 직관적인 인스타그램 UI는 사람을 끌기에 적당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은 어언 5년을 군림했다. 작년부터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둘 인스타그램을 줄이기 시작했다. 일상 메모장에 광고가 점점 간섭하기 시작하는 걸 못 두고 보는 거다. 최근에 인스타그램을 지운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느꼈다. 누구나 인스타그램을 지루해 하지만 왜 그만두지 못할까? 응. 다음 타자가 없어서.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수순이 자연스레 넘어왔듯 또다른 플랫폼이 나타나길 기다리는데 갈아탈 게 없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모두 실패했고 한국 서비스로선 다음 타자가 없다(한국 감성으로는 조금 어렵다고 본다). 트위터는 불평불만의 장이고 블로그는 검색어 경쟁으로 폐허가 된 지 오래다. 브런치는 SNS라기엔 심오하고 UI가 한없이 불편하다. 틱톡은 너무 빠르다. 인스타그램에서 한 발 더 앞선 정신없는 쇼-오프용이랄까. 글이 없는 커뮤니케이션, 따라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쉽게 흥하지만 그만큼 쉽게 질리게 되어 있다. 의미없이 스크롤하다 예쁘고 웃기면 하트 누르고 넘어갈 거다. 결국 그 많은 영상 홍수 속에서 아무도 네가 누구인지는 기억하지 못해. 심지어 얼굴도 어플이 다 고쳐주는 거니까.
유튜브? 유튜브는 일반인의 영역이 될 수 없다. 평범한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를 올린다지만 그 과정이 평범치 못하다. 영상은 노동과 편집이 필요하다. 그런데 알고리즘에 의해 노출되는 구조는 시간 쏟은 자기 영상이 조회수 100도 못 채우게 만들 확률이 높다. 그러니 다들 하기 싫어도 대문짝만 한, 굵은 테두리를 두른 고딕체로 낚시 카피를 쓰게 되고 자극적인 소재를 찾게 되고. 결국 아무리 브이로그라 이름 붙여도 진짜 삶이 아닌 의도된 영상이 되기 쉽다. 아무리 일상 기록용, 만족용이라 해도, 조회수가 오르거나 구독이 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한 번 맛보면 그걸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결국 나를 봐 주세요! 제발 클릭해 주세요!
유튜브 커버처럼 인스타그램 피드도 고딕체가 점령해 가고 있다. 더 많은 걸 알고 새롭고 재밌는 걸 원하는 것이 사람의 성격인지라 남의 일상만으로는 재미 없다. 관심사 피드도 보다 보면 그게 그거다. SNS 플랫폼에 자꾸 유머, 신기한 재능, 사건 사고 등이 올라오는 이유다. 그러다 SNS는 차차 내 일이 아니라 남 일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며 차다 못해 흘러 넘치는 콘텐츠 때문에 누군가 큐레이팅을 해 줘야만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된다. 페이스북이 인기를 잃은 큰 이유 중 하나다. 내가 상대를 선별해 팔로우할 수는 있지만, 팔로우한 순간부터 그들이 올리는 콘텐츠들을 컨트롤하진 못하니까. 그 중에 광고가 끼든, 가짜 뉴스가 돌든, 진짜 필요한 정보든, 어쨌거나 내 지인의 소식은 그들에 의해 가린다. 말 많은 지인은 살짜기 뮤트해 보지만, 말 많은 광고까지 일일이 뮤트하려니 피곤하다. 분명 내 공간인데, 무엇이 얼마나 퀄리티가 있는지 구별하는 데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 누구를 위해 SNS를 하는지. 무엇 때문에 SNS를 하는지?
친구는 그냥 인스타그램을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시대가 또 간다. 싸이월드에 내 학창시절 짝사랑과 술만 퍼마시던 대학 새내기 시절이 갇혔듯, 페이스북에 대학 졸업반의 패기와 사회 초년생 시절의 자신감이 갇혔듯. 내 인생이 플랫폼 안에 갇힌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좋게 말해 담긴다지만, 쓰지 않으면 꺼내볼 수 없으니 갇힌 게 맞다. 싸이월드 사진첩을 책으로 묶어 내 준다는 서비스를 봤다. 나도 곧 사라지기 전에 해야할 텐데. 머지않은 미래에 페이스북이 또다른 플랫폼을 잡아먹고 우리에게 다듬어진 새 버전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려면 뜨는 플랫폼이 있어야 하는데, 뭐가 있으려나?) 다시 10대 사이에선 페이스북이 유행하고 있다고도 한다. 어찌되었든 인스타그램은 지겹다는 뜻이다. 이 SNS 과도기가 끝나면 우리는 새 플랫폼으로 갈아탈 것이다. 한편으론 SNS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SNS를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아, 그런데 이건 철저히 한국인의 관점이다. 프랑스인들은 아직도 페이스북을 쓴다. 내 나이또래 유럽인들은 은근히 페이스북 아이디만 있는 사람도 꽤 된다. 페이스북이 회상해 주는 무려 7년 전, 10년 전 사진들을 돌려 보면서 추억하는 모습이 꽤 귀엽기는 하다. 한 SNS를 10년을 쓴다는 게 참으로 대단하기도 하고. 네이버 같은 자국 포털이 없으니 페이스북을 커뮤니티의 채널로 쓰기도 한다. 물론 그네들에게도 개인 계정으로 지나간 친구를 찾고 일상을 나누는 황금 안부 시대는 지났지만, 개그 영상과 정치 비판, 각종 생활 정보와 귀여운 동물, 과학 공부가 오가는 그 아수라장 특히 광고 아수라장을 짜증내면서도 쓴다. 촌스러운 왓츠앱 UI에 대해서도 별말 않는다. "메시지만 잘 가면 되지 뭐." 대단한 사람들. 자기가 익숙해진 것들을 바꾸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이다. 우리만큼 빠르지 않은 대신 쉽게 질려하지 않기 때문에. 음, 인스타그램이 쇼오프라 생각하는 그네들이 틱톡은 오죽할까. 쓰다보니 세상은 아직 페이스북 세상이구나. 페이스북으로 시작해 인스타그램과 왓츠앱까지 먹은 거대 회사. 아, 저커버그가 대통령으로 출마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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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13.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