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이룬 뿌리와 현재의 잎들
두 달 간의 이동통제가 해제되던 날 니콜라스가 꽃화분을 사들고 왔다. 히비스커스였다. 나무만큼 크진 않지만 그렇다고 작은 화분도 아닌 애매한, 무릎 높이까지 올라오는 꽃나무. 사 올 거면 꽃으로 사 오지... 나무를 딱히 키워본 적이 없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어쩌겠어. 바람과 볕이 잘 드는 발코니에 두고 이틀에 한 번씩 물을 줬다. 꼬박꼬박 물도 잘 챙기고 해도 잘 쬐어줬다 생각했는데, 몇 주 뒤 하나둘 노란 잎이 나기 시작했다. 남프랑스의 태양이 뜨거워서일까?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기고 물을 더 자주 주었다. 노란 잎은 점점 늘어만 갔다. 몇 개 떼 낼까 싶다가 그냥 두었다. 저들도 생명인데. 힘이 다하면 알아서 떨어지겠지.
한 달 뒤 니콜라스 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 병든 꽃도 살려낸다는 할머니의 발코니는 싱그러웠다. 내가 선물한 8유로짜리 조그만 장미 나무도 추운 겨울 잘 버티고 주홍빛 꽃망울을 맺었다. 맞은편에 빨간 히비스커스가 보였다. 할머니의 히비스커스 나무는 허리춤까지 컸고 녹색 잎은 반들반들 윤기가 났다. 나는 할머니에게 노랗게 변한 내 히비스커스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나무가 바뀐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다며, 노란 잎은 다 떼내고 초록 잎만 남겨야 한다고 했다. 다 떼어내기 마음 아프다고 했더니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잎까지 노랗게 되어버릴 거라며, 어차피 떼어낸 자리에 다시 새 잎이 날 거니 걱정 말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노란 꽃나무를 바라보는데 문득 프랑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지 않은 나무. 이파리가 많아 풍성해 보이지만 실은 노란 잎, 반쯤 노란 잎, 초록 잎이 제 살려고 뒤엉킨 나무. 새로운 환경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도 그 스트레스를 그대로 지고 가는 나무. 초록 이파리들이 끌고 가느라 점점 지쳐가는 나무.
화분이 작아서 그런 거라면 분갈이를 해야 하고, 영양이 부족하면 좋은 흙과 거름을 주어 뿌리부터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나라의 그릇과 흙(시스템)을 바꾸기에 뿌리가 지나치게 오랫동안 들러붙어 떼어낼 수가 없는 나무. 어디서부터 손대어야 할지 모르는 나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복 받아서 복잡한 나라
프랑스는 정말 축복받은 나라다. 사는 동안 ‘복 받은 나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좋은 목의 표본. 남한의 5배 넓은 땅덩이에 대서양과 지중해를 가졌고 거대한 알프스와 피레네가 장관이다. 산들은 곧 길고 긴 강의 모태가 되어 센과 루아르, 론, 숀, 갸론, 800km 1000km 되는 강을 만들었고 옆으로 숲과 비옥한 평원이 펼쳐진다. 그 땅에 밀을 가꾸고 소를 키워 식량 자급률이 300%가 넘는다. 독일과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모두 가까워 교류가 쉽다. 다른 나라와 가까운 도시는 옆 나라와 삶을 공유하며 자연스레 중심지 역할을 했다. 프랑스가 가진 복을 말하자면 밤을 새운다.
그런데 이 축복이 복잡함, 곧 지금의 노란 나무를 만들었다. 저마다 다른 기후와 땅에서 난 음식은 까다로운 입맛과 문화, 생활 습관을 야기했다. 알프스 집과 피레네의 집, 지중해에 붙은 집, 대서양에 면한 집의 재료가 다르고 꾸미는 방식이 다르고 그런 곳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산다. 하긴, 사람이 난 곳을 닮아가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난 곳도 물론이요, 그 뿌리부터 복잡하다.
이미 조상부터 섞인 민족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친구들에게 “너희는 어떤 민족이냐”라고 물으면 “골 족”이라 답한다. “그럼 프랑크 족은?” 되물으면 “그것도 맞아.” “많은 부분이 라틴 족에서 왔다고 들었어.” “그것도 맞아.” 어휴, 복잡해. 라틴 족이 주를 이루는 이탈리아, 게르만 족인 독일, 켈트 족과 앵글로색슨 족의 영국처럼 그래도 아직까지 자신의 민족을 꼽을 수 있고 그 외형적 색깔을 가진 옆 나라들에 비해, 프랑스는 골 족을 조상이라 하기엔 로마 시대 대거 이주한 프랑크족들이 더 넓게 자리 잡았고,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 족과 브르타뉴의 앵글로 색슨 족, 옆 나라에서 들어온 수많은 주변 민족들의 역사가 얽혀 있다. 태생이 그렇다.
당신은 어떻게 350종 이상의 치즈를 만들어 내는 나라를 다스리려 하오?
-샤를 드골
안 그래도 복잡한 뿌리는 근현대를 지나며 급격하게 얽힌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알제리 전쟁을 사죄하는 뜻에서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였고, 이는 아랍계 북아프리카인들이 프랑스에 정착하는 계기가 된다. 제국주의 식민지의 후유증으로 베트남인과 아프리카인들이 이민을 왔다. 망명에도 후했다. 1980년대 말 포르투갈이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하면서 포르투갈 노동자들이 들어왔다. 2000년대 유럽연합에서 동유럽을 받아들이고 국경 검문을 폐지하자 폴란드와 알바니아 등 동유럽 노동자들은 마치 20년 전의 포르투갈인들이 그랬듯 밀려왔다. 대가족 체제를 유지하는 집시들은 캠핑카를 끌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곳까지 흘러왔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북아프리카-아라비아인들과 아프리카인들은 좋은 복지 제도를 등에 업고 쉽게 정착했다. 이민자들은 이슬람교를 비롯한 이질적인 생활 습관으로 정착한 도시마다 그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프랑스 전통과 단절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대 프랑스를 차지하는 커다란 일부다.
할머니뻘 되는 이민 세대까지는 민족의 개념이 있었지만, 자녀 세대가 프랑스인과 섞이고 손자 세대쯤 되는 지금 이곳에선 이제 민족의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다. 예를 들어 친구의 아빠는 포르투갈 출신, 엄마는 폴란드 출신 프랑스인이고 딸은 섬나라 카포 베르데 출신 남자와 결혼했다. 이처럼 얼마나 많은 조합이 가능할까. 얼마나 다른 가정 문화와 가치관이 존재할까. 둘의 아들딸은 프랑스인일 뿐이다.
이 사람들이 복잡한 근원(뿌리)적인 원인을 일단 세 가지로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날씨와 환경, 저 멀리는 민족, 눈앞으로는 새로 유입된 이민자까지. 각자(집단)의 개성이 강할수록 활기찬 삶의 풍경들이 만들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국가로 엮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구성원이 심플해도 풀기 어려운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이토록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프랑스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간단했다. 뜯어고칠 수 없으니 그냥 둔다. 시도하다 속 시끄러워 체념해 버렸다. 부르주아가 일어날 시대의 나폴레옹 법전, 2차 세계대전 뒤 전례 없는 부와 영광을 누리며 만든 헌법, 1968년 혁명 뒤의 이상적인 노사 관계와 연금법...
변화하는 도덕률에 법을 적응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가 개입하는 것보다 법을 사문화한 상태로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 2003년 성평등장관의 '여성 바지 착용 금지법을 폐지하지 않는 이유'
지금의 프랑스인은 그때의 프랑스인이 아니고, 사는 모습도 전혀 달라졌지만 백 년 이백 년 전의 근간을 그대로 움켜쥐고 있다. 남의 나라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온다. 나라의 정체성을 논할 세대는 다 늙어버렸고, 시대는 개인주의 중의 극개인주의로 치닫고 있다. 하나를 바꾸려면 다른 하나가 들고일어나고, 다른 하나를 바꾸려면 건너 하나가 들고일어난다. 눈앞의 불의는 또 못 참는데 불의에 대한 정의도 가지각색이다. 그렇게 나라는 6,000만 개의 길로 흩어지고 있다.
결국, 프랑스 ‘인’의 개념이 있을 뿐 프랑스 ‘민족’의 개념은 없는 이들의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단일 민족으로 살아온 우리의 관점으로 절대 해석할 수 없다. 100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현대국가’의 기준에 맞춰 법과 나라의 기반을 세운 우리나라는 프랑스의 오래되고 산발적이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눈에 불편하고 바보 같아 보이는 일들도 어쨌거나 이유는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왜’가 궁금했다. 밤까지 발코니에서 파티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왜? 대부분이 무교인 사람들을 보며 왜? 험한 산골짜기에도 여지없이 들어선 마을을 보며 왜? 신생아부터 아기방에 분리해서 재우는 엄마들을 보며 왜? 코로나를 독감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보며 왜?
단순한 비교와 지적은 쉽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남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이 그들의 현재를 만들었나, 원인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나라에서 그들처럼 생각하며 살아보아야 알 수 있다. 그래야만 더 좋은 길을 알려주고 설득할 수 있다. 나 또한 살다 보니 그들의 입장에 수긍되기도 했다. 뿌리 깊은 곳까지 '나'와 '나의 자유'라는 것이 들어선 이들의 방식은 그 대척점의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삶을 살았던 한국 사람에게 신선한 관점을 주었다.
하고 싶은데 참아서 병나는 것보다
해서 뒤탈이 없는 게 낫다
아마 이것이 인종의 도가니 속 그들이 살아남는 방식일 것이다. 나는 프랑스와 관련된 공부를 한 것도, 인류학이나 민족학, 문화를 공부한 것도 아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물었다. 학생과 직장인인 또래 친구들에게 묻고 니콜라스 할머니와 엄마에게 묻고, 친구의 부모님에게 묻고 내게 한국어를 배우는 친구에게도 묻고, 아르바이트로 청소하러 간 집의 집주인에게도 물었다. 프랑스에 지내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물었다.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을 같이 보려 노력했다.
물으면서 살다 보니 구구절절한 이론이나 설명 없이도 이 나라가 어떤 나란지 알게 되었다. 화도 내 보고 푹 빠져도 보고. 여러 대답과 경험이 쌓이니 깨달음이 왔다. 꽃나무를 보다가 프랑스란 나라를 이해하게 되는 식이었다. 이런 깨달음이 모여 나는 이제 프랑스를 조금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꽃나무의 노란 잎들을 떼어 냈다. 이왕 시작한 거 반쯤 누런 잎들도 다 떼 버렸다. 쉽게 떼어지는 잎도 있지만 나무에 찰싹 붙어 힘을 주어야만 떨어지는 녀석들이 많았다. 마음이 안 좋았다. 나무의 팔다리를 억지로 자르는 느낌이랄까. 꽃나무가 금세 듬성듬성 볼품 없어졌다. 그렇지만 싱싱했다. 잘 자라길 바라야지.
뿌리가 복잡해 뿌리를 쳐내지도, 흙도 화분도 바꾸지 못하는 프랑스. 그럼 시든 잎을 쳐내야 하는데, 내 마음이 안 좋았던 것처럼, 잎을 못 쳐내는 프랑스. 뿌리가 과거라면 잎은 현재다. 세상의 권리가 너무 많고 각자의 권리를 지키느라 바람 잘 날이 없다. 실업자와 노인과 여자와 이민자와 동물과 환경과 옆 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해 꾸역꾸역 초록잎이 양분을 나눠준다. 내가 노래질 때면 누군가 양분을 줄 테니까. 일자리를 잃으면 월급 80퍼센트에 준하는 실업급여가 나오고 은퇴하면 평생을 편안히 살 수 있도록 연금이 책정된 이 나라. 아픈 사람들이 병원비 한 푼 안 내고도 수술받을 수 있는 환상적인 나라.
그러나 현실에서는 - 프랑스인으로 정체성과 애국심이 있던 시절의 복지 정책들이 만든 '이상'과 정체성이 없는 것이 정체성이 되어 버린 '현실'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아, 이상하게도 그 사이에 묘한 매력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삐그덕대는 이 나무, 잘 자랄 수 있을까? 이 노란 나무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 여성 바지 착용 금지법은 2010년에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