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게으름으로 받아들이며
프랑스에 다시 건너올 때만 해도 야심찬 꿈이 있었다. 올해는 남프랑스의 예술 장소들을 탐험하며 잡지에 연재 요청을 해 봐야지, 혹시 여행 잡지에서 하게 된다면 카메라 협찬도 요청해볼까? 책을 냈던 출판사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책과 관련된 장소들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출간한 책을 홍보해 보려고 그동안 방치했던 블로그도 정리했다.
짧은 소설도 써볼까 해서 주인공과 얼개 정도를 어렴풋이 머리로 그렸다. 프랑스 생활에는 한국에서 겪을 수 없는 특별한 일들이 많다. 세차게 비가 내리는 밤 내가 탄 기차에 어떤 사람이 자살했던 일, 또 어린 십 대들이 스쿠터를 훔쳐 낄낄거리며 도망치던 일, 새들이 요트 꼭대기에 모여 목이 쉬어라 울던 일, 여기서 겪은 어떤 강렬한 장면들은 벌써 소설 속 이야기가 되어 주인공에게 입혀졌다.
자기 전이면 우주를 좋아하는 니콜라스에게 우주와 행성, 별과 성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럴 때면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신비로와서 저절로 시가 써졌다. 시상은 그때그때 떠올라서 바로바로 메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쓰지 않던 다이어리를 펴 드디어 줄을 긋고 아이디어를 적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니콜라스와 결혼했고 코비드 시대 속 프랑스인과의 결혼 또한 순탄치 않은 것이었어서 그걸 주제로 짧은 모험담 같은 걸 써봐야겠다 마음먹었다. 결혼 후 받은 꽃과 난들을 오래도록 살리고 싶어 헤매다 결국 꽃 가꾸기에 입문하게 되었고 어느새 나는 꽃시장에 가 수국과 허브와 야생화와 장미들을, 하나씩 사들였다. 버려진 팔레트와 톱을 주워 발코니 화단을 만들었고 씨앗을 심고 수정하고 분갈이를 하면서 나의 정원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에 건너오고 몇 달이 지나자 프리랜서로 받던 일들은 점점 줄어나가고 이제는 수입이 끊겨 니콜라스에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삶으로도 니콜라스에 종속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는데 이곳에선 언어가 안 되니 일을 할 수 없었다. 불어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단 이유로 여전히 시작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 때가 오겠거니. 청소나 베이비시터는 또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변명에 변명을 붙였고 하루 종일 꽃이나 돌보며 시간을 보냈다. 봉쇄 중인 프랑스에서 별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가끔씩 바다에 나가 뛰거나 산책하곤 했다.
생활이 단조로워지면서 한동안 약간의 우울감 같은 것이 왔고 갑작스레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늘 밝기만 하던 내게 우울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비단 돈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이 끊긴 게 문제였다. 나는 돈을 생각하며 일한 적이 별로 없다. 그냥 내 분야에서 내 글을 쓰고 흥미 있는 글들을 편집하고 하는 게, 그냥 즐거웠다. 한국에선 회식하고도 또 들어가서 일하고 밤도 새우고 친구들 만나고 나서 또 원고를 쓰고 그랬다. 한국에 있으면 열심히 즐겁게 일할 수 있는데. 일이 그냥 들어올 텐데 ㅡ 프랑스라서 그런 거야. 여기서 일을 하다 보면 점심 먹으면서 한 마디면 될 얘기들이 메일로 몇 번이나 오고 가야 하고, 시차 때문에 항상 결정에 텀이 생기고. 이런 구질구질한 일들은 프리랜서로 치명적이었다. 일이 끊기면 다른 일을 알아보면 되는데 이곳에서의 방식이 구질구질하단 이유로 그만 프리랜서 삶으로서 의욕도 잃어버렸다. 다른 일을 알아보지 않는 나를, 게을러진 나를, 스스로 변명했다.
일이 없으니 글이라도 써야겠다, 하는 마음에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노트에 적었다. 노트는 터져나가고 글은 내일, 또 내일로 미뤄졌다. 서류 작업이 끝나니 결혼을 해야 했고 결혼이 끝나니 비자 준비에 이사를 해야 했고 이사가 끝나니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해야 했고 한동안 못 본 친구들 집에도 가야 했다. 니코의 밥값을 아끼기 위해 아침마다 샌드위치를 쌌고 니코가 이직하고서는 샌드위치도 싸고 와이셔츠도 다렸다. 한동안은 친구를 대접하고 니코를 내조하는 와이프 놀이에 빠졌다. 그 와중에 주위에서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왔고 마음이 힘들어서 또 쉬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고 보니 내 삶은 언제나 변명에 변명이 붙는 식이었다. 괜히 계획만 많이 세워 스트레스만 더 받았다. 이런 내 자신이 지긋지긋했다. 그냥 내가 게으른건데. 하면 되는데 안 하는 거야, 하는 이상한 자존심 같은 것, 세워둔 계획은 많은데 실천을 아직 못했을 뿐이야,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는 거야, 따위의 그런 이상한 마음가짐을 버렸다. 안 하면 안 하는 거지 뭐가 이렇게 스트레스 받고 이유를 찾았나 싶었다. 그냥 나는 평생, 내가 게으르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게으르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야겠다, 써야겠다, 한 것 중에 이룬 건 하나도 없다. 이제 하나씩 써나가야겠다 생각했다. 진짜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 그동안 미뤘던 글 하나를 막 썼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글인데 그냥 썼다.
그동안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못했어 하던 변명들을 돌아본다. 내탓하는 게 천성이고 남탓하는 것도 천성이지만 탓하는 나를 돌아보고 용서하는 것도 내 천성이다.다행이라면 게을렀던 탓에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살을 입히는 방식을 배웠다. 그저 꽃만 쳐다보며 산 줄 알았는데, 씨앗을 심고 기르면서, 죽은 줄만 알았던 호접란이 다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틔우는 것을 보면서,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동안 내가 너무 빠른 시간으로 살아왔구나, 내가 너무 거창한 것들만을 생각했구나.
전혀 시작하지 않은 채로 스트레스만 받던 내 많은 프로젝트들은 오히려 친구들에게 설명해주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말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생각이 정리가 됐다. 혼자 끙끙 붙들고 쓰는 것보다 훨씬 명쾌했다. 얼마 전부터는 불어에 관심도 생겼다. 노래가 더듬더듬 들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친구가 일상 단어를 프린트해서 줬는데 그걸 다 읽을 수 있어서 놀랐다. 친구들 앞에서 큰소리로 읽었다. 에밀 졸라가 쓴 '나는 고발한다'를 100프로 이해하진 못해도 이제 어떤 어감인지 그냥 느낌으로 알게 되었다.
이런 느낌과 경험들, 방황했던 이 시간들이 나의 자양분이 되겠지. 실컷 니콜라스 이야기를 써놓고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의 지독했던 우울감을, 내가 우울이 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처럼, 이렇게 나의 폭은 넓어지겠지...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자위라면 자위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게으름을 포장하는 자위는 하지 않겠다.
나는 게을렀다. 내 인생의 가장 게을렀던 4개월이 지나간다. 이런 나를 이해해주고 기다려준 니코에게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