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해방이었다

미친년처럼 춤을 출 수 있게 되기까지

by 전윤혜

나는 항상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것이 바른 자세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등받이도 없이 바닥에 어떻게 그렇게 앉아 있었는지. 자세가 바르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꼿꼿이 잘 앉는다는 건 몸의 근육이 튼튼하단 뜻이다. 어릴 때부터 스트레칭을 잘했고 달리기도, 피구도, 무거운 것을 드는 것도 곧잘 했다. 그것이 무척 특출나진 않더라도 몸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몸의 움직임에 한끗이 더해져 연속적인 무언가가 될 때 나는 주춤했다. 이상한 선입견이 있었다.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수영이고, 춤이었다.


수영 얘기부터 해 볼까. 이십 대 중반 백수 시절 아침 수영반에 등록했다. 물에 빠지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서였다. 오리발을 척 끼고 쏜살같이 헤엄치는 동네 아줌마들 옆에서 나는 킥판을 들고 발차기를 배웠다. 팔을 뒤로부터 둥글게 들어올려 귀 옆으로 곧게 내려오다가, 익숙해지자 선수처럼 팔을 꺾어 물 속에 꽂아넣게 되었다. 자유형과 평영을 졸업할 무렵 서울에 취업 비슷한 걸 하면서 수영을 그만두었다.


서울에서는 물에 빠질 일이 없었다. 월간지에서의 바쁜 삶은 근처 수영장에 수영을 할 여유조차 앗았다. (마감 즈음만 되면 기자들 사이에서 다음 달에는 YMCA 수영장에 등록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누구도 등록하지 못했다.) 물이라면 일 년에 한 번 있는 여름 휴가가 다였다. 그런데 그 여름 휴가의 수영이란 것이 참 묘했다.


수영을 하기 위해 휴가를 내는 사람이 없듯, 나도 여름 휴가에 해수욕장이나 수영장에 갔기 ‘때문에’ 수영을 했다. 사람들은 해수욕장에서 수영하지 않았다. 아무도 스피도 수영복을 입은 이가 없었으며, 비키니를 입은 이들은 수영을 하지 않았다. 바다에 간 목적이 수영이 아니니까 수영복이나 인구밀도를 따지는 건 말이 안 되는가. 애초에 붐비는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는 목적으로의 수영복을 따졌으므로 시각적 수영복은 중요했다.


묘하게도, 그 시각적 수영복에 갇혀서 그만 수영을 할 수가 없겠더라는 것이다. 친구들과 얕은 물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하려면 비키니에 맞추어 우아하게 헤엄쳐야 할 것만 같았다. 호텔 수영장도 마찬가지였다. 곰곰 생각해 보면 나도 휴가를 가기 위해 수영복을 샀던 거지 내 수영 실력을 보여주려고 수영복을 사지는 않았다. 나는 여름이 되어도 수영을 하지 않았다.


어느 4월이었다. 출판사로 적을 옮긴 나는 끝날 것 같지 않던 장기 프로젝트를 마치고 일주일의 휴가를 얻었다. 앞뒤로 주말을 끼우니 10일이라는 그럴싸한 시간이 생겼다. 마침 친구가 호주 멜버른에 워킹홀리데이를 가 있었고, 나는 그러므로, 아무 생각 없이 멜버른에 가기로 했다. 가는 김에 시드니에 들렀다. 한가을이었다. 바람 부는 본다이 비치(Bondi Beach)에 여장을 풀었다. 서핑 레슨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10시. 호텔 체크 아웃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걱서걱 바쁜 걸음으로 모래사장을 가로질렀다. 하늘이 새파랬다. 이상하게도 수영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걱정이 됐다. 혼자 수영하는 게 이상하진 않을까? 누가 가방을 훔쳐가진 않을까? 비키니가 풀리진 않겠지? 호텔이 체크 아웃 늦었다고 요금을 물면 어떡하지? 걸음을 멈췄다. 에라, 모르겠다. 가방을 내려놓고 쭈삣쭈삣, 바다로 들어갔다.


맨살에 닿는 가을 바다는 차가웠다. 대양의 드센 파도는 나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팔을 들어 자유형을 시작했다. 실은 허우적대는 것에 가까웠다. 몸은 녹슬었고 수영 강사의 가르침은 잊은 지 오래다. 수영장 아줌마들이 있었다면 “아가씨 그렇게 하면 안 돼” 하고 애초에 말렸을 폼이다. 그런데 괜찮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몸의 마디마디가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숨이 찼다. 멈추어 섰다.


하늘엔 하얀 구름이 두어 점 떠 있었고 파도는 여전히 울렁였다. 나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다. 해방. 해방이었다. 정확하게 무엇으로부터 해방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바다에서 처음 하는 수영이었고, 나는 깨달았다. 수영은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운동을 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도 하는 것이란 걸.


몸은 결국 의식에서 멀어질 때 가장 아름답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과, 걱정과, 불안이 없을 때. 내 몸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내보낼 때. 돌이켜보면 어떠한 무의식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막았던 것 같다. 항상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무의식 말이다. 나는 알게 모르게 원칙을 정해놓고 있었다. 원칙이 시간의 연속이 될 때- 즉 수영의 폼이 되거나, 춤의 웨이브가 되거나, 테니스의 유연한 동작이 될 때. 나는 어려웠다. 어쩌면 엄격하게 배웠고 또 오래 쳐온 피아노 탓에 그런 습관이 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동작을 잘 갖춰진 상태에서 정확하고 아름답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원칙에서 벗어나자, 다시 말해 움직임의 효율이 떨어지자, 감정의 효율이 높아졌다.



춤도 그와 같았다. 어디서 힙 바람이 들어선, 클럽에서 봄직한 무심한 듯 살랑살랑한 웨이브가 그리도 시크해 보였다. 춤을 추어야 한다면 걸그룹은 못 되어도 웨이브는 넣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웨이브랍시고 추는 내 춤은 말린 오징어처럼 돌돌 말린 것이었다. 짬이 나면 춤을 배워야겠단 계획은 YMCA 수영장 등록처럼 실현되지 않았다.


친구처럼 나도 퇴사를 하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남미 친구들과 클럽에 갔는데 세상에나 마치 엄마 뱃속에서부터 웨이브를 하면서 태어난 애들처럼 다들 너무 잘 추었다. 몸치인 나는 깔짝깔짝 리듬 타는 척하며 맥주나 마셨다. 스테이지에는 그 친구들과 두 프랑스 친구가 활개를 쳤다. 내가 봤을 때 한 명은 거의 서태지 춤 같은 것을 추며 팔다리를 붕붕 흔들었고 나머지 하나는 못 추는데도 엉덩이를 씰룩이며 엄청 열심히 추는 것이었다.


웃기다고 생각했다. 으, 보는 내가 다 민망하네. 그 후로도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파티 때마다, 클럽에 가도 못 추는 게 아니라 안 추는 거야, 하는 뉘앙스로 쿨한 척을 해댔다. 그런데 어쩌다 엉덩이를 씰룩이던 그 남자와 진지하게 만나게 되었고, 그와 여행을 떠났다.


방콕의 카오산로드에서는 술을 마시다 자연스럽게 춤판이 벌어지곤 했다. 옆의 금발 여자애들은 그 때의 남미 친구들처럼 척하면 웨이브가 튀어나왔다. 서양 아이들은 다리를 유연하게 잘 썼다. 날은 더웠고 땀이 흘렀다. 나도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추는 사람들을 부러워할 뿐 생전 나선 적이 없던 내가, 이번에는 그냥 추고 싶었다. 춤이란 걸. 싸구려 폭탄주의 힘이었을 수도 있고, 나보다 더 못 추는 남자가 옆에 있어서(그 남자는 내가 더 못 춘다고 생각하는 의견 차이가 있다) 그랬을 수도 있다. 춤을 추느라 날밤을 샜다. 습한 방콕의 길거리에서 우리는 땀에 흠뻑 젖었다.


자유. 자유로웠다. 사람들이 왜 춤을 추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말을 유창하게 하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듯, 춤을 세련되게 추지 않아도 내 감정은 표현되는 것이다. 춤에 스타일이 있을 지언정 규칙은 없었다. 나는 거기서도 무심한 듯 시크한 규칙을 혼자 넣으려 했던 거고. 세련되게 추지 못하는, 곧 서투르게 감정을 표현하는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그러면서도 못 추는 사람들에게 애걔, 하던 그 심보는 뭔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자존심(아니 열등감)은 찢어질 듯한 스피커 소리 속에서 깨졌다. 와장창.


다시 YMCA 옆 그 잡지사 시절로 돌아가 볼까. 그 잡지는 공연예술 전문지였고 내가 일하던 때는 안무가 안은미가 한창 '땐스' 시리즈를 올릴 때였다. 할머니랑 같이 춤추는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중학생들이랑 추는 <사심 없는 땐스> 아저씨들이랑 추는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 같은 재미난 시리즈를,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앉아 공연을 분석하고 평했다. 그 때 안은미가 무대로 올라오라고 했으면 나는 올라갔을까? 글을 쓰면서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고 나는 유튜브로 <사심 없는 땐스> 티저를 틀었다. 춤추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어렴풋이 알던 그 자유로운 느낌을 이제 그 사람들의 얼굴에서, 몸짓에서 직접 느끼게 되었다. 해방이구나. 놓아주는 거구나. 알게 되었다. 사심 없이 땐스를 추는 아이들의 표정이 진심으로 행복해서 나오는 것임을. 동네 할머니들의 어깨가 진실로 흥이 나서 들썩이는 것임을.


몸을 쓴다는 건 어쩌면 내 의지대로, 내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스스로의 표출이다.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깨 보니까, 해 보니까 보인다. 아무데서나 수영도 잘하고, 이제는 혼자 미친년처럼 춤도 출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나의 편견과 싸워 해방했다. 어쩌면 그 선입견의 벽이 높았기 때문에 나의 해방이 더욱 통쾌하게 다가왔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