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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Jan 22. 2021

먹어도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고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여백 처방전

전염병이 파고들며 오프라인 강좌들이 닫힌 사이, 온라인 강좌들은 속속 개설되었다. 교육을 위해 제주와 서울을 오가던 터라 편리하고 저렴한 온라인 강좌의 재빠른 확장세에 덩달아 신이 났다.


전환의 시기, 새로운 판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부추기며 각종 자기 계발 콘텐츠와 시장 선점 노하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신기한 디지털 활용기술,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을 이용한 돈 되는 SNS 활용법 외에도 시간관리를 위한 바인더 작성법, 강사 양성법, 재테크, 습관개선 솔루션, 심리학 클래스, 책 쓰기 강좌, 독서모임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태그별로, 주제별로, 공통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모인 오픈 채팅방이 넘쳐났고 잠시만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아도 미확인 메시지수가 사상 초유의 숫자를 갱신하며 늘어갔다. 그렇게 나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배움의 연결고리를 따라 정신없이 들고나는 군중의 중심부에 있었다.


신규 유입을 겨냥한 다양한 무료 강좌도 이어졌다. 그동안의 비싼 교통비, 교육비를 생각하니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정신없이 쫓아다녔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고 쑤셔 넣으며 계속 탐닉하는 병증이 깊어져 감을 느끼지 못하고...


물론 그 흐름에서 배우고 얻은 것도 많았다. 유래 없는 재난상황과 빠른 변화, 그 흐름이 무섭게 가속화되는 때, 다양한 기술과 이론들이 끊임없이 도입되고 적용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 현장에서 다양한 이들과 교류하며 격렬한 열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한 것이 크나큰 자극제가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중 가장 큰 수확이라면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오랜  경구를 아찔하게 체감한 것.


새로운 자극에 취해 무진장 내달린 지 두어 달쯤 지나자 경고등이 켜졌다. 심신의 과부하, 일상의 누수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업에 방해를 받으면 가족에게도 쉽게 짜증을 내고 있었고 넘치는 과제를 위해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일과 중엔 이미 녹초가 되어있기 일쑤였다. 일상이 꼬이고 방향도 모른 채 호흡이 가빠왔다.  황금어장이라며 구멍 난 그물을 드리우고 앉아 어느 것 하나 오롯이 내 것으로 취하는 게 없었던 것이다.


결국 선택과 집중을 위한 일상의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지금은 좋아하는 책을 낭독하는 것으로 하루를 열고(뇌력향상에 완전 좋단다...), 두 개의 약정된 과정만 일상의 루틴으로 삼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양한 부딪힘과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업무에도 일상에도 활력이 되는 맞춤형 학습을 찾은 셈이다.


아무리 좋은 배움이어도 숙성의 시간 없이 집어넣기만 하면 독이 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실제 상황에서는

욕심을 제어못해 닥치는대로 쑤셔담고 구토할 지경이 되서야 비로소 멈추게 된 것이다. 아이에게 강요하기 전에 내가 경험한것이 안도라면 안도랄까?


엄마가 새로운 배움에 매몰되어 있던 사이 아이는 방해 없이 자신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나마 다니던 피아노 학원마저 중단된 기간 동안 좋아하는 랩가수 따라 하기와 그리기에 심취했다. 하고픈 것에 대한 집중과 몰입의 성취를 입증하며

일취월장이라 할 만한 실력 향상을 보였다.


이러한 경험이 맞물리며 4학년 아들의 학습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준칙을 세우게 되었다. 스스로 택한 배움을 즐기며 주도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달까. 학원을 순례하고 입시 스케줄을 우선에 둔 맹목적인 교육관을 좇진 않으리라. 깊게 심호흡하고 사유할 수 있는 시공간의 여백 확보를 일순위로 올린다.


부디 아이의 학년이 높아져가도 이 순위표 흔들리지 않아야 할텐데...


문득,오래전 고등학교 친구 모임에서 오간 얘기가 생각난다.


친구의 6학년 아들이 시험에서 다섯 과목 올백점 만점을 받았는데, 아들 반 친구가 시샘하듯 이렇게 말했단다.


‘너는 학원을 안 다녔으니까, 공부할 시간이 많았잖아’


—————-


학원을 다니지 않아야 공부할 시간이 많다는 아이의 푸념에 가슴찔리는 통찰이 있다. 학원을 자녀교육의 안전벨트, 만병통치약처럼 과하게 처방하는 학부모가 많은 요즘, 부모와 자녀 간 동상이몽에 대한 뼈아픈 항변이 아닐까.


뭐든 과하면 부족하니만 못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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