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인간관계를 위한 첫걸음, 과제 분리로부터-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개인’이 된다. 개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고자 할 때 직면하는 인간관계의 문제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인생의 과제라고 한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어제도 고민했고, 오늘도 흔들리며,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물론 사람 사이의 문제가 한 가지 이유로 귀결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신경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속내를 알 수 없고 통제도 불가한 타인의 영역을 너무 진지하게 붙들고 있으니 마음에 스스로 만드는 예단과 고통이 떠나질 않는 것이다. 이 피해 갈 수 없는 인생의 과제, 그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개인심리학을 창시한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관계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고 인생의 과제임을 주지하면서 그 해법의 출발점으로 스스로에게 집중할 것을 주문한다. 내가 해야 할 나의 과제에 집중하고 통제 불가한 타인의 영역은 그의 과제로 두라는 것이다. 이것이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제분리‘다
과제분리가 되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보다 내 삶에 집중해서 살아가게 된다. 같은 이유로 내 맘 같지 않은 상대방 행동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과제의 분리가 가능할 때 마음이 가벼워지고 인간관계도 수월해져 비로소 자유로운 인생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어려우니 인간관계가 얽히고설켜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게지.
‘과제분리’는 나에게도 오래 묵은 숙제였다.
2년쯤 전이었나, 나와 타인의 영역을 쿨하게 인정하는 아들 덕분에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9살 꼬마 아들러와의 만남, 그때의 기억을 소환해 본다.
어린이 합창단에서 만나 가깝게 지내는 동갑내기 예나네 모녀와 우리 모자가 나비박물관으로 나들이를 가는 길이었다. 승용차 뒷좌석에서 책 한 권을 가지고 앉은 아들아이와 그림 그리기에 열중인 예나의 대화가 들려온다.
아들: “무슨 그림 그려?”
예나: “넌 몰라도 돼”
아들: “이야~ 신기하다. 우리 반에도 너랑 똑같이 넌 몰라도 돼 그림을 그리는 애가 있던데”
이런 맹꽁이... 엄마 둘의 눈이 마주친다. 이건 따돌림의 징후인데...
내 시선이 닿지 않는 학교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소외를 당하는 건가 싶어 떨리는 마음에 아이에게 물었다.
“친구가 ‘넌 몰라도 돼’ 그러면 속상하지 않아? ”
“게네들이 넌 몰라도 돼 그림을 그리는데 내가 왜 속상해야 돼? 그건 걔네 맘이지”
아이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보던 책 속으로 얼굴을 묻는다.
아이는 친구들의 외면하는 반응에 상처 받거나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냥 관여할 필요 없는 타인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민 없이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아이의 모습에 심리학자 아들러의 모습이 겹쳐졌다. 엄마가 사회생활에 바쁜 사이, 아들은 그렇게 꼬마 아들러가 되어 있었네. ‘아들러의 심리학 책을 독학이라도 한 건가?’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견했다. 그날 밤, 아이를 꼬옥 품에 안으며 물었다.
“엄마가 오늘 아들한테 많이 배웠어. 친구의 섭섭한 말에도 상처 받지 않고 씩씩한 모습에 정말 놀랬거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어엉, 나도 엄마한테 배운 거야”
“나한테 배웠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데 돌이켜 보니 가닿는 지점이 있다. 아이와 밤마다 되풀이하던 선택에 대한 연습의 말들.
"살다 보면 누군가가 내게 기분 나쁜 감정의 쓰레기를 던질 수 있어. 그럴 때 쓰레기를 받아서 안고 있으면 내가 쓰레기통이 되지만, 그걸 저기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면 괜찮은 거야
그 사람이 내게 던지는 것까지는 막지 못해도 받을지 안 받을지는 완전 우리의 선택이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들어하고 과한 에너지를 소모하던 엄마의 시행착오를 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여러 번 되풀이하던 우리 둘만의 주문이었다.
‘쓰레기를 안고 있으면 내가 쓰레기통이 되지만, 던져버리면 괜찮은 거야.’
아이는 연습한 대로 적용하고, 나는 아직껏 실천 못하는 부진아였다. ‘엄마보다 낫네’라는 생각으로 한수 배우며 뿌듯한 안도감이 들었던 밤이다.
물론 아이는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흔들리기도 하고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을 알아가기도 할 것이다.
다만 이 꼬마 아들러가 ‘과제분리’를 잊지 않고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조바심 내기보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자유롭게 세상을 탐색해 나가길 바라며, 다시 한번 꼭 안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