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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인들이 무책임함에 대처하는 법

무책임한 일처리를 겪었을 때의 프렌치 에티켓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에서도 불편한 일에 대처하는 프랑스인들의 방식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일처리가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불완전한 방식으로 일이 처리되는 때가 자주 있다. 자잘한 사무행정 처리를 할 때나 서비스 분야에서 등 담당자의 무책임함과 미숙함을 높은 빈도로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다 보니, 반대급부로 상대의 무책임함에 대처하는 방법도 잘 발달되어 있다.


최근 남편이 취미로 이벤트 응모를 한 것이 당첨이 되었다. 지난주 샹제리제 초입에 위치한 그랑팔레(Grand Palais)에서 열리는 파리 사진 전시회(Paris Photo)의 초대권을 무료로 준다는 것과 함께, 이름이 리스트업되었으니 당일 창구에서 티켓을 받으면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전시회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 전시회를 방문하기로 했다.


토요일부터 내린 비는 일요일에도 더욱 줄기차게 내렸다. 전시회의 마지막 날이기에 비가 온다고 미룰 수도 없었다. 샹제리제 근방은 오전에 있었던 1차 세계대전의 종전 추모식이 끝났음에도 진입이 막혀 있었다.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 역에서 내려 그랑 팔레까지 약 20분 간을 걸어갔다. 그랑 팔레의 왼쪽에 보이던 VIP-GUEST 입구로 들어가 안쪽 창구 직원에게 초대권을 받으러 왔다고 하자 밖으로 나가 그랑 팔레 중간의 메인 출입구로 가서 표를 받으라고 했다. 참고로 그랑 팔레는 한국의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 문화회관 같이 꽤 규모가 큰 건물이라 가로 길이가 길어서, 입구끼리 거리는 꽤 되는 편이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그랑 팔레 중간 출입구로 갔다. 보안관이 티켓이 없으면 못들어간다고 했고, 우리는 들어가야 티켓을 받는 상황이라 근처를 서성이며 보안관 몇 명에게 들여보내 줄 것을 10분 정도 실랑이를 하다가 들어갔다. 비는 왔고 옷의 왼쪽 면은 이미 홀딱 젖은 상태였다. 여차저차 들어갔는데 창구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누군가에게 물어보았고 밖에 위치해 있던 창구를 찾아갔다. 먼저 와서 줄 선 사람들을 상대하던 창구 직원에게 급히 물어보자 자기는 모른다며 여기는 돈내고 보는 사람들만 티켓을 사는 곳이니 우리는 VIP-GUEST 창구 쪽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다시 빗속을 뚫고 10분을 걸어 처음에 갔던 VIP 전용 입구로 들어갔다. 처음 우리를 메인 출입구로 보낸 직원은 없고, 다른 직원이 창구에 있었다. 남편이 해당 직원에게 짧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표는 어디서 받는 것인지 다시 문의 했다. 그 직원은 자기는 모른다며 해당 초대권은 이곳의 소관이 아니니 다시 그랑 팔레 중간 출입구로 가라고 전했다... 그때 직원 뒤를 지나가고 있던 매니저 급으로 보이는 사람이 듣고는 미안하다며 메인 출입구에 위치한 티켓부스의 담당소관이 맞긴 하지만 여기서 초대권을 주라고 직원에게 지시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혼선을 빚은 경우가 '우리가 처음은 아니다’는 말을 하고는 자리를 떴다.


우리와 대화하던 담당 직원은 초대권 2장을 내밀었다. 적어도 오늘 30분 가량 왔다갔다 하며 빚어진 혼선을 마무리 하기 위한 마무리 멘트나 사과없이 우리를 쳐다 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그 직원의 태도와 오늘 겪었던 일이 플래시백 되며 화가 났다. 만약 그 타이밍에 매니저가 지나가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실랑이 하고 있지 않았을까. 여기서 화내 버리면 절대 프랑스의 우아한 마담은 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 나는 무척 화가 난 목소리로 클레임을 했는데 해당 직원은 듣고는 피식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에 이끌려 사진전으로 들어가서도 한참 화를 삭혀야 했다. 신발과 옷은 흙길인 그랑팔레 앞을 여러 차례 걸어다니느라 흙탕물이 튀고 비에 젖어 하루종일 눅눅했다. 우리는 사진전에 급격히 흥미를 잃었고 결국 한번 쓱 둘러보고는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집에 오는 길 나는 한참 곱씹어 생각해 보았다. 매니저가 지나가듯 한 말처럼, 똑같은 혼선을 겪어 문의한 사람이 우리가 처음이 아닌 거였다면, 그게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발견했을 때 바로 해결해 두지 않고 사진전의 마지막 날이 되도록 똑같은 잘못을 반복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창구끼리 어떤 업무를 맡는지 기초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되고 있지 않았고, 시정되고 있지도 않아 보였다. 권한 있는 매니저가 지나가기 전까지 어느 창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상대방의 권한이라며 직원들끼리 서로 서로 토스한 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쯤 나는 누그러져 있었다. 그냥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나 보다 치자고.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 이제는 남편이 갑자기 옆에서 씩씩대기 시작했다. 자기는 이제야 화가 나기 시작한단다. 그는 컴퓨터를 켜더니 어둑어둑해질때까지 한참을 자판을 두드렸다. 알고보니 대화한 내용과 당시 상황을 토대로 상대방의 귀책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여 이메일로 정돈해 발송했던 것이다.


담당자의 무성의함에 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고라도, 프랑스에서는 그 자리에서 마구 화내면 죄송하다는 말을 듣기는커녕 가볍게 무시당하기 일쑤라고 한다. 일단 자리를 피하고 나중에 정식으로 이메일이나 편지를 통해 논리적으로 귀책을 묻는 방식이 좋다. 그래서인지 재밌게도 프랑스에는 항의 서한(lettre de réclamation 혹은 lettre d'accusation)이라는 편지 형식이 존재한다.


혹은 그 자리에서 따지더라도 이성적으로 꼬집어 주어야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그렇지 않으면 면전에서 팔팔 뛰어봤자 귓등으로도 흘려듣지 않는다고. 우리는 무책임하게 일하는 사람이나 그들의 미숙한 일처리에 맞닥뜨릴 때 ‘화’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면 절대로 안된다. 화를 표출하며 말하는 방식은 프랑스 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교양있게 여겨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화도 잘 내야 한다.


이메일을 보낸지 이틀이 지나 파리 사진전을 주최했던 프랑스 일간지 르파리지앵에서 사과의 답장이 왔다. 더불어 우리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기 위해, 오르세 박물관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가이드와 함께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는 티켓 두 장을 제공하겠으며 이메일을 쓴 담당자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어느 곳에 살든 이런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단지 그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예후가 다르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배웠다. 이번 사례로 프랑스 사람들의 일처리 방식이 어떻다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려는 것이 아니지만 프랑스에 살다보면 이외에도 크고 작은 일처리가 무책임하게 처리되는 상황이 꽤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비판적 사고를 좋아하기에 클레임을 거는 행위 자체는 지극히 일반적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통용되는 클레임 에티켓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처음에 내가 프랑스어 불어 자격증 시험인 델프(DELF)를 준비할 당시에도 각종 클레임 상황에 대비한 이메일을 논리적으로 쓰는 법이 쓰기 테마 중의 하나였다. 프랑스에서 살다가 이런 경우에 대비하라는 깊은 뜻이 있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논리로 무장한 말하기와 쓰기 방법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여 수긍하게 만들어야 한다.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접근해 설득시키지 않으면 그 어떤 한사람에게도 내가 주장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살면서 본 프랑스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말을 빨리 그리고 많이 한다.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주장을 담기 위해서일 것이다. 따질 때는 너무 착하게 말해도 안되고 너무 앞서나가며 감정을 표출해도 안된다. 그 적절한 중간점을 찾는 것이 프렌치 스타일이다. 데카르트가 발전시킨 합리주의 이성 철학의 본고장인 프랑스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과연 앞으로 나는 따질 때도 우아한 프랑스의 마담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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