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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만난 플라스틱의 미래

저는 플라스틱이 아니에요  

고래 뱃속에서 플라스틱 컵이 무려 백 개가 쏟아졌다는 뉴스, 거북이 코에 빨대가 꽂혀 죽었다는 뉴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여 한반도 크기의 7배에 이를 정도인 북태평양의 거대 쓰레기 섬에 관한 뉴스. 그간 넘쳐나는 플라스틱 제품들을 쓰면서도 우리가 재활용 배출만 잘하면 알아서 재활용이 될거라 믿었고 그렇게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소비와 배출을 하며 살아왔다. 그랬기에 이런 뉴스를 접했을 때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실로 대단했을 것 같다.


사실 환경 이슈는 그간 일상에서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던 이슈가 아니었기에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발 분야를 전공한 나조차도 그린피스의 바다 환경 정화 프로젝트라든가 여러 환경 단체의 캠페인 활동들이 실제 일상과는 조금은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로 고통받는 자연에 관한 뉴스들이 넘쳐나고 미세플라스틱이 우리 식탁에 올라오고 있는 뉴스가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지금... 이제는 우리가 변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자각한다. 내가 살림을 직접 하면서 가정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이유도 무시할 수는 없다. 여러 이유들로 나는 이전보다 플라스틱 사용과 배출량에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 살때는 배달을 즐겨 시켜 먹었고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플라스틱 배달 용기를 많이 배출했었다. 또 일상 생활용품 구매를 하면 집에 쌓이는 플라스틱 백, 포장지, 컵들 때문에 적어도 3일에 한 번씩은 플라스틱류 배출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어차피 어딘가에서 재활용이 될 테니 배출이나 꼬박꼬박 잘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프랑스에 와서 살면서도 초기에는 내 평소 생활 습관대로 살았더니 플라스틱 배출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따지고 보면 어느 나라든 지금 우리 일상 속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제품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니까 말이다.


어느 날 내 생활 습관을 전반적으로 바꾸게 해 준 계기가 찾아왔다. 프랑스에서 2016년 7월부터 마트 계산대에서 물건을 살 때 플라스틱 백에 물건을 담아주는 것을 금지했을 때부터였다. 그렇다보니 계산대 앞에서 사람들이 미리 준비해온 장바구니에 자기 물건을 담아가는 모습이 일반적이 되었다. 프랑스에 살며 처음 내가 에코백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도, 나의 첫 에코백인 까르푸 마트 에코백을 소장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패션의 일부로서가 아닌 에코백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자 내 생활의 많은 습관이 변하게 되었다. 장을 보러 다닐 때 에코백을 쓰기 시작한 지 약 2년이 되었는데 이후로 가정의 플라스틱 배출량이 현저히 줄게 되었다. 전에는 넘쳐나는 플라스틱 백을 둘둘 말아 부엌의 수납장에 가득히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수납장에 다른 물건을 수납할 수 있을 정도로 플라스틱 백의 가정 보유량이 줄었다.


사실 에코백을 장보러 다니는 용으로 가지고 다니려면 한 개 보다는 여러 개일 때 효율적으로 나누어 담을 수도 있어서 좋다.


우리의 에코백 사랑은, ‘에코백을 챙겨 다니게 되었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장바구니용 에코백을 한 개가 아닌 여러 개를 챙겨 마트에 가는 실천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신선제품, 딱딱한 제품, 부드러운 제품에 따라 다르게 담기에도 좋다. 이는 우리가 예기치 않게 장을 많이 보게 되는 날에도 계산대 앞에서 필요없는 장바구니를 구매하지 않기 위해 들인 습관이다. 나머지 에코백들을 접어서 한 에코백에 넣으면 전체적으로 부담없는 경량의 무게이기에 평소에도 부담없이 여러 개 들고 다닐 수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규제가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의외로 많은 프랑스인들이 당시 플라스틱 백의 계산대 판매를 금지한다는 정부의 규제 발표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었다. 매번 장바구니를 따로 가져가는 것이 귀찮아서이다. 혹은 프랑스에는 종량제 봉투가 따로 없기 때문에 대개 장을 볼 때 담아온 플라스틱 백을 그대로 쓰레기 봉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규제 시행 당시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이제는 일상에서 잘 정착이 되었다. 사람들은 장을 보러 갈 때면 에코백이나 장바구니를 잊지 않고 챙겨간다. 파리 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이 마찬가지이다.


참고로 2017년부터는 계산대 외에서 필요한 경우를 고려해 자연에서 썩을 수 있는 재질의 봉투에 한해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그래서 마트에서 야채, 과일을 담을 때는 갈색의 종이 백이나 자연 환원 재질의 봉투를 이용하고 있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이처럼 규제가 먼저 선행이 되고 그 다음으로 사람들의 실천이나 행동 양식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는 적절한 규제, 대체재 마련, 개인의 노력 이 모든 삼박자가 맞았을 때의 이야기다. 플라스틱 사용을 아예 안할 수는 없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선순환을 통해 플라스틱 배출량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사용되는 자연으로 환원이 가능한 재질의 봉투. 보통 봉투에 자연 환원 가능 재질인지, 환원불가한 일반 플라스틱 백인지 저런 방식으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파리에 살면서 집 근처 유기농 마트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나는 이곳에서 또 플라스틱을 줄이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프랑스의 유기농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볼 수 있는 특유의 디스펜서 시스템이 있다. 건조 음식류, 과자류, 곡물류가 마트의 큰 디스펜서에 넣어져 있는데, 소비자는 종이 백에 필요한 용량만큼 무게를 달아 구매할 수 있다. 이 디스펜서 시스템을 통하면 포장류의 배출을 피할 수 있어서 한결 마음이 편한 도덕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 파리에 사는 다른 지인의 코멘트에 따르면, 파리의 다른 유기농 마트에서는 샴푸, 린스도 용량대로 판매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경우  각자 집에서 쓰던 용기를 가져가 담아오기만 하면 별도로 플라스틱 배출을 따로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프랑스에서는 빵집, 과일 상점, 야채나 식품관 등에서는 주로 갱지 재질의 종이 봉투에 상품을 담아준다. 그렇다보니 반대급부로 종이류 배출은 조금 되는 편이지만, 상대적으로 배출을 줄여야 하는 플라스틱이나 자잘한 비닐류 소비는 줄었다.


파리 한 마트의 디스펜서 시스템. 단순히 곡물류 뿐 아니라 건조 음식이나 베이커리 류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판매되고 있다.
디스펜서에서 담아와 집에 있는 용기에 담아주면 플라스틱류 배출을 별도로 하지 않고 내용물의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프랑스에 살면서 플라스틱의 대체재를 만난 일을 아직도 놀라웠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프랑스 전체로 볼 때 배달은 활성화가 되어 있지 않지만, 파리에서는 우버이츠(Ubereats)나 푸도라(Foodora) 등의 앱을 통한 음식 배달이 활성화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어느 날 집 근처 음식점에서 음식을 배달을 시켰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맛있는 브런치 카페에서의 포장 배달이었다. 막상 음식을 받아보자 도덕적 소비가 가능한 음식을 표방하며 건강한 음식 판매를 모토로 하는 카페에서도 어쩔 수 없이 용기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주는구나 싶어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음식을 먹으며 자세히 보니 ‘나는 플라스틱이 아니에요(I am not plastic)’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게 뭐지 싶어 밑면의 재질을 봤더니 바로 PLA라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친환경 수지 용기였던 것이다. 플라스틱처럼 보이지만 플라스틱이 아니라는 점에 아주 깜짝 놀랐다. 대신 60도 이하의 찬 음식 전용이며 이 용기에 든 음식은 48시간 이내에 섭취되어야 한다는 안내문이 써 있었다. 한국에서는 찬 음식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배달하고 카페에서도 찬 음료도 전부 플라스틱 컵을 사용해서 팔던데 이렇게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정말 놀랐다. 프랑스에서도 경각심을 가지고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플라스틱 사용이 많은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다. 다만 배달용기, 포장용기를 바꾸는 것으로 제로플라스틱 운동(#zeroplastic)을 실천하는 음식점과 카페가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프랑스에서 플라스틱의 대체재를 만났다. 집에서 설거지를 하며 이 용기들을 뜨거운 물에 담아두었는데 매우 작게 수축되었고 흐물해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생분해성 친환경 용기는 자연속에 배출이 될 시 자연스럽게 썩을 수 있다고 한다.


음료와 음식을 담은 용기는 얼핏 플라스틱처럼 보였는데 플라스틱이 아니라 옥수수전분으로 만든 PLA수지였다.


조금 더 알아보니 그동안 내가 몰랐을 뿐이지 한국에서도 이런 PLA수지라는 플라스틱의 대체재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많이 쓰이지 않고 있었다. 아마 가격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고 이 용기를 통해서는 장기 보관이 어렵다는 단점 때문에 보편적으로 플라스틱을 대체해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포장재로서는 습관처럼 써온 플라스틱이 저렴하고 내용물이 잘 변하지 않기에 장기보관이 가능해서 범분야에서 쓰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까지 현재로서 바꿀 수 없다면, 차가운 제품을 테이크아웃 포장하거나 배달할 때는 이런 대체재를 이용해보면 어떨까? 2019년을 맞이하는 현대 소비자는 보다 도덕적이고 지속가능한 소비를 원할 테니 여타 브랜드나 상점들도 그 부분을 전략 포인트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마치 내가 시켜먹었던 파리의 해당 브런치 카페가 친환경 용기로 배달한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편하게 그곳의 단골이 된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제로플라스틱 운동 zero plastic


에코백 여러 개 가지고 다니기, 가정용 브리타 정수기 사용, 친환경 대체재 용기 사용, 용기 가지고 다니며 필요시 쓰기 등...이런 생활 속 실천도 좋다. 이런 실천들은 우리가 생각을 바꾸기 전에 유난으로 보이지만, 생각을 바꾼 사람들에게는 환경을 생각하는 좋은 습관이다. 우리가 조금씩만 바꾸면 그 노력이 모여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역사적으로도 ‘습관에 의한 소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규제와 변화를 통한 선순환을 해왔다. 규제와 의식변화, 대체재 개발의 삼박자가 맞는 선순환이 되어야 한다. 1970년대 산성비 이슈가 불거지자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고, 오존층 파괴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이슈가 불거지자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프레온가스 사용을 금지한 것처럼, 우리는 환경 이슈에 있어서 규제와 변화를 동시에 이끌어내며 성공적인 대처를 다함께 경험한 역사가 있다. 나는 플라스틱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믿는다. 내가 프랑스에서 만난 플라스틱의 미래는 매우 비관적이다. 플라스틱은 앞으로 그 위용을 줄이고 대체재에 의해 점차 사라질 것이다. 앞으로는 자연 친화적인 대체재가 더 많이 개발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모아 개발하면 대체재의 보편화를 막아왔던 단점도 극복될 것이다. 또한 대체재 사용을 보편화시키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사람들 역시 마음놓고 도덕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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