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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지 마세요, 프랑스의 초상권 문화

'찍히지 않을 권리'와 '찍힌 사진이 배포되지 않을 권리'

일상 속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음식을 먹으러 가서도 여행을 가서도 그 순간의 특별함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한껏 경건히 최대한 아름다운 색감과 앵글로 혼신을 다한 한 장을 건지고 나야 그 순간을 지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블로그와 개인 홈페이지, 다양한 여행 플랫폼을 통해 우리는 사진을 공유하고 평가한다.


이중에서 어떤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기발한 사진들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사회적 밈(meme)을 가진 채 꿈틀거리는 하나의 문화적 유전자로 재생산되기까지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온라인 공간에 이를 공유하며 기록으로 남긴다. 누군가의 기록이 다른 사람에게는 소중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사진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는 오늘, 우리에게 일상 인증샷은 하루를 기록하고자 하는 소망이 담긴 어른들의 그림일기와도 같다. 이렇게 일상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하나의 문화가 된지 오래다.


그러다보니 문제는 사진 속에 타인의 개인정보나 모습이 찍힐 때 나타난다. 인물이 포함된 사진의 초상권은 '찍힐 권리'와 '찍힌 사진이 배포되지 않을 권리'의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우리 부부의 경우 프랑스 결혼식을 준비하고 사진작가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두 가지의 초상권에 대해 인지하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진을 통해 우리는 시간과 순간을 기록한다. (파리 생라자르 역, 2018)


때는 2016년 신랑 신부의 로망인 결혼식 사진을 예쁘게 남기기 위해 여러 곳을 알아보던 중 마침 시간이 맞았던 어느 사진가와 연락을 하게 되었다. 통화를 잘 마친 후 홈페이지에 가서 예약 진행을 하면 예약이 완료되는 방식이었다. 홈페이지에 가서 예약 진행을 하다가 곧 난관에 부딪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진들은 포토그래퍼의 포트폴리오에 쓸 수 있도록 동의한다. 그리고 사진 작가의 온라인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 동의한다’고 쓰여 있었고, 거기에 확인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예약이 되지 않도록 설정된 구조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홈페이지 가입 등 다양한 경우에서 귀찮다는 이유로 약관을 자세히 읽지 않고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만약 의뢰인이 자칫 계약서 부분을 자세히 읽지 않고 ‘확인’을 쭈르륵 누르고 진행할 시에는 자신의 사진이 사진가의 포트폴리오로 공개되어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계약을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인지를 하고 계약을 한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말이다.


작가의 블로그에 들어가보자 이미 다양한 커플들의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사진작가의 포트폴리오에 올라갈 사진 한 장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사진 초상권이 창작자인 사진가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추후에 제어할 수 없는 타인의 온라인 페이지에 사진이 올라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국제 결혼, 프랑스 고성 결혼식, 다양한 볼거리… 우리의 결혼식은 분명히 홍보에 좋은 요소들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우리 부부의 얼굴이 보여지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가족과 하객들의 얼굴까지 온라인 어딘가에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할수없이 조용히 창을 닫았다.


아쉽게도 다른 사진작가 분들은 당시 일정이 맞지 않았다.  우리는 차라리 프랑스 현지인 사진 작가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프랑스인 사진 작가와 연락이 닿았고 우리는 '찍힌 사진이 배포되지 않을 권리'로서의 초상권에 대한 논의를 포함해 계약을 하게 되었다. 남편도 나도 그때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초상권 등이 명시된 계약을 하고 결혼식 사진 업체를 계약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이게 단순히 한국과 프랑스라는 나라의 차이는 아니며 사진작가나 업체마다 다른 개별 원칙에 가까울 것 같기는 하다.


프랑스 결혼식 사진 중에서 (2016)


이때를 계기로 초상권을 일상의 한가지 이슈로 인식하고 지내게 됐다. 그러자 전에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특히 ‘찍히지 않을 권리’인 초상권이 매우 엄격하게 지켜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식적인 자리, 즉 영화 시사회나 방송 자료에 쓰이는 사진이 찍히는 곳에서는 일반인들이 사진에 찍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매우 엄격하게 초상권 사용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살면서 초상권(droit l’image)과 관련하여 짜릿하게 문화충격을 받은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우리 부부는 영화 언더 워터(The Shallows, Instinct De Survie,  2016)의 공식시사회 전 시사회라고 불리는 아방프리미어(avant-premiere)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었다. 시사회는 영화의 주제답게 파리의 아쿠아리움에서 열렸다. 초대받은 인원은 약 100명이 넘어가는 듯 보였다.


담당자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어떤 종이 한 장을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 종이는 우리에게도 돌아왔다. 자세히 보니 초상권 허용 여부 서약을 개개인의 이름으로 서명한 후 문서로 남기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옵션이 주어져도 보통 사람들은 허용함에 체크를 한다. 이렇게 눈에 보이도록 절차적으로 동의를 구하고 촬영을 하는 것과 동의를 구하지 않고 촬영을 하는 것은 천지차이인지라 의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그냥 찍어도 암묵적인 동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처음으로 보았던 이날의 ‘프랑스식 초상권 동의 절차’가 짜릿하게 다가왔다. 평소같으면 지나쳤겠지만 당시 사진작가와의 계약을 통해 초상권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한 후에 있었던 일이라 눈여겨보고 기억하게 된 것이다.


영화 언더워터 시사회 입장을 기다리며 (파리 아쿠아리움, 2016)


또 한번 우리는 파리의 남쪽에 위치한 시네바 고몽(Cinémas Gaumont)에서 열린 미국독립영화 프리댄스(Free Dance)라는 영화의 공식 시사회 전 시사회인 아방프리미어(avant-premiere)에 다녀온 적이 있다. 댄스 스테이지도 배우 사인회도 마련되어 있어 사람은 매우 많았다. 마치 작은 축제와도 같았다.


그런데 이때도 내 눈에 들어온 한 표지판이 있었다. “방문해 주신 여러분께, 방송 촬영이 진행되는 부분이 있으니 찍히기를 원하지 않으시면 담당자에게 의사 표시를 해주십시오.”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었다. 나는 매우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혀 안내문을 ‘인증샷’으로 남겨두었다.


파리에서 간 영화 프리댄스 시사회에 설치된 한 안내문


이뿐만이 아니었다. 파리에서 내가 다닌 학교의 졸업식 때에도 학교에서 찍어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공표되길 원하지 않으면 주최 측에 연락하라는 안내를 별도로 받기도 했다. 무려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을 상대로도 프랑스는 엄격한 초상권 동의 절차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프랑스에는 사진을 찍을 시 개개인에게 꼭 동의 여부를 구하는 ‘초상권 문화’가 있다고 정의내려도 될까. 사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프랑스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파리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과 만들었던 한불학생포럼(FFCE)에 이 절차를 차용하기로 했다. 당시 포럼에 참가했던 학생들에게 ‘초상권 사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옵션을 설문지에 별도로 집어넣었고 우리는 전원이 허용할 시에만 단체사진을 SNS에 올리기로 했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온라인 공간에 사진으로 일상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일상인 요새, 사람들의 얼굴이 들어간 거리의 사진이나 식당 사진 등을 올릴 때는 나부터 조심하게 된다. 요새는 세계 어디의 관광지나 식당에서도 사람이 아예 없는 텅텅 빈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어느 정도 타인의 뒷모습같은 건 찍힌다 하더라도 식별할 수 있는 얼굴이 직접 찍힌 경우는 조심하고 있다. 


프랑스에 거주한 4년 동안 내가 놀랍게 여겼던 문화 중의 하나로 꼽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찍히지 않을 권리'와 '찍힌 사진이 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지켜주는 그들의 철저한 사진 초상권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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