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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싫은 파리지엔느
by 파리가 싫은 파리지엔느 Dec 06. 2018

15. 겨울철 프랑스인들의 국민 간식

15-16세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마롱 글라세와 칼리송 덱스


프랑스에 살면서 겨울을 기다리게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겨울에만 주로 보이거나 평소보다 더 다양한 맛으로 팔리는 간식들을 어디서든 보다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몇 주 남긴 지금쯤이면 프랑스 전역의 마트에는 한 코너 전체가 달달한 간식들로 빽빽히 진열되기 시작한다. 때문에 이러한 간식을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은 얼른 겨울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오늘은 연말을 맞아 프랑스인들이 주로 겨울에 즐겨먹는 국민 간식인 마롱 글라세와 칼리송을 소개하려고 한다.



16세기부터 국민간식, 마롱 글라세(marrons glacés)


© Flickr, Kate Hopkins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겨울 간식으로는 ‘설탕에 절인 밤톨’이라는 의미를 가진 마롱 글라세(marrons glacés)가 있다. 여기서 글라세는 슈가 글라스라는 설탕을 가리키는 말인데, 차가운, 언의 뜻도 있어 마치 겨울에 언 밤톨이라고 단어에서 느껴지는 중의적인 어감도 있다. 마롱 글라세는 통밤을 설탕으로 졸이고 슈가 글라스로 하얗게 코팅해서 만든 간식이다. 흡사 밤톨에 눈이 내려 그대로 쌓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트에서 보면 브랜드마다 각기 다른 독특한 레시피를 선보여 어떤 마롱 글라세를 사먹을지 한참 서서 고민하게 된다. 프랑스 코냑이 들어간 마롱 글라세, 커피 맛 마롱 글라세, 아몬드가 묻은 마롱 글라세 등... 다양한 레시피를 내놓은 브랜드가 많이 있다. 하지만 역시나 동그랗고 통통하게 생긴 밤톨을 깨지지 않게 잘 졸이고 정석대로 슈가글라스를 잘 덮어 클래식하게 만든 마롱 글라세를 집어든다.


프랑스 한 마트의 마롱 글라세 코너


프랑스에서 밤은 가을에 수확되고, 겨울에 마롱 글라세로 만들어져 팔린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마롱 글라세는 사실 거의 겨울에만 살 수 있는 간식이라고 보면 된다. 프랑스살이 초반, 겨울이 다 지나고나서 마롱 글라세를 사먹고 싶어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파는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다음 겨울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야만 한 적도 있었다. 제철 음식을 따져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에게 마롱 글라세는 겨울철의 대표적인 국민 간식이다. 마롱 글라세는 프랑스에서 16세기 무렵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역적으로는 밤나무가 많은 리옹(Lyon)에서 만들어 먹던 것에서 출발했다는 설이 있다. 마롱 글라세 한 알을 입 안에 넣으면 밤톨 겉면에 코팅된 슈가 글라스가 유리처럼 조각조각 깨지면서 녹아 입 안 전체를 달콤하게 만들어 준다.


마롱 글라세 (marrons glacés)


밤톨(marrons)은 마롱 글라세 이외에도 겨울 프랑스의 가정집 식탁에서 다양한 요리들에 활용돼 등장하기도 한다. 처음 내가 프랑스의 시부모님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때였다. 집 안 화롯가에 돌돌 돌려 구운 통닭구이와 함께 곁들여 먹었던 것은 무 피클도 소스도 아닌 삶은 통밤톨이었다. 생각보다 텁텁하지 않았고, 통밤과 닭구이의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함께 어우러져 맛이 극대화 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통밤과 닭구이로 메인 음식을 먹고 나서 밤 잼을 넣어 만든 빵이나 장작 케이크를 디저트로 먹는다. 마지막으로 차나 커피를 마시며 한손으로 마롱 글라세를 집어먹는다. 겨울철 쌀쌀한 어느 날, 프랑스의 가정집 식탁 위를 꾸미는 음식들은 이렇게 밤을 활용한 것들이 많다. 한국에서도 겨울이면 길거리에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사먹곤 했는데 프랑스에서도 밤을 먹으니 나는 프랑스에 있으면서도 한국이 꽤나 멀리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시부모님이 밤 잼을 넣어 요리해주신 프랑스 크리스마스 장작 케이크



칼리송(Calissons d’Aix)에 얽힌 웃지 않는 왕비의 전설


프랑스에서 마롱 글라세와 함께 겨울에 많이 팔리는 칼리송(Calissons)이라는 간식거리가 있다. 사실 칼리송은 제철 재료가 들어가는 디저트가 아니라 겨울이 아니라도 어느 때나 사먹을 수 있는 간식이기는 하다. 하지만 주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마롱 글라세와 함께 마트 진열대 한켠을 전부 장식하는 대표적인 겨울 간식 중의 하나로 인식되는 편이다. 칼리송은 아몬드 가루, 메론 절임, 오렌지 향 원액, 아몬드 향 원액 등으로 만든 반죽 위에 계란 흰자와 슈가 글라스로 머랭처럼 만든 크림인 글라스 로얄(glace royale)을 얹은 다음 오븐에 10분 정도 구우면 완성된다. 한입거리의 칼리송을 입안에 넣으면 메론과 오렌지 향, 아몬드 맛이 입안 가득 물씬 풍겨 나온다.


칼리송 덱스 (Calissons d'Aix)


이 칼리송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함께 전해 내려온다. 때는 1454년, 프랑스 앙주(Anjou)의 왕이던 호아 르네(Roy René)는 잔 드 라발(Jeanne de Laval)이라는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웃지 않았다고 한다. 왕의 직속 과자 장인이 이런 여왕을 위해 과자를 만들어 바쳤다. 여왕은 이를 맛보고 마침내 웃음을 되찾았다고 한다. 당시 한 여왕의 측근이 이 과자를 먹은 후 “달콤하다(Ce sont des câlins)”고 말했는데 칼리송이라는 이름은 이 달콤한, 감미로운이라는 칼랑(câlins)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르네 왕이 이탈리아와 교류를 했기에 칼리송이 이탈리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르네 왕이 여전히 왕좌에 있을 당시 프랑스 남부 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지역에서부터 칼리송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이 과자의 정식 이름은 칼리송 덱스(Calissons d'Aix)가 되었다고 한다.


© Flickr, jeanlouis_zimmermann


처음 이 전설을 들었을 때, 나는 프랑스의 그 옛날 국왕 직속 과자 장인이라는 특이한 직업이 있었다는 것에 한 번 놀랐고, 이런 디저트가 15세기부터 만들어진 레시피에 근거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한국으로 치면 마치 오래전부터 조상들의 노하우로 만들어온 곶감이라든지 달달한 약과 같은 역할일까.


겨울을 맞아 과자점에 진열된 다양한 맛의 칼리송들




위에 소개한 마롱 글라세, 칼리송 덱스는 겨울 중 특히 크리스마스 휴일 기간을 타겟으로 선물용이나 소비용으로 팔리는 프랑스의 전통 간식 양대산맥이다. 프랑스의 크리스마스는 마치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같은 가족명절 같은 날이라 이곳저곳에 흩어져 사는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보내는데 프랑스인들은  이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이런 달콤한 전통 간식을 사와 선물로 주기도 하고 나누어 먹기도 한다.


프랑스에 온 첫 해 겨울의 크리스마스에 맛보았던 이 간식들은 그 아이디어와 맛의 조합으로 인해 내게 놀라움을 안겨주었었다. 이는 마치 외국인이 한국에서 가을 햇볕에 고이 말린 곶감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았다고 가정해보았을 때 느낄 만한 센세이션과 비슷한 것이리라. 그리고 이후 마롱 글라세나 칼리송 같은 겨울 간식들은 프랑스에서 내가 매해 겨울을 기다리게 만들어주는 좋은 유인책이 되어주었다. 달달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면 추운 겨울도 이겨낼 수 있는 이치인가 보다. 혹시 누군가 겨울의 프랑스를 여행할 일이 생긴다면 꼭 이 두 가지의 프랑스 전통 간식을 맛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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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작가지망생
틈틈이 16개국을 여행했습니다. 파리에서 국제개발학 전공 후 결혼생활을 하며 눌러살고 있습니다. 거주자의 시선으로 프랑스 클리셰가 아닌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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