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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가정집의 맥시멀리즘

패션은 미니멀하게, 집은 맥시멀하게!  

세계적으로 미니멀리즘이 꾸준히 광풍이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공간에 여백을 남겨두며 그 과정에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내가 기억하는 초반 미니멀리즘 열풍은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자유롭게 살기로 했다>의 책이 일으킨 반향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미니멀리스트들은 자신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필요 이상의 물건을 소유하는 일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계보를 조금 더 올라가면 법정 스님의 <무소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향기가 나는 난초를 열심히 가꾸고 키우는 것 역시 집착이었다는 스님의 잔잔한 말씀도 물질적인 것에 정신을 투영해 집착하는 것 자체를 끊어버리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미니멀리즘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사고체계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쾌적한 환경과 더불어 삶의 행복도 얻는다는 미니멀 라이프의 조류에 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미니멀리즘 열풍 초반기부터 자잘한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나도 미니멀리즘을 조금씩 실천하고 있었다. 오래된 펜, 연필, 형광펜을 모아서 정리하고 오래되어 쓰지 못하는 것들을 쳐내면서 속시원한 후련함을 느끼기도 했다. 미니멀리즘의 이름으로 ‘정리정돈’을 하며 낡고 오래된 것들은 과감하게 쳐냈다.


펜 정리부터 시작해본 정리정돈 혹은 미니멀리즘


그런데 이런 미니멀리즘과, 현실에 대한 나의 괴리감은, 내가 프랑스에 산다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연애 초반, 처음 남편의 집에 초대받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매우 강렬하게 남아있다. 노르망디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곳에 사시는 시부모님의 댁에 가게 되었다. 남편은 집에 도착 전부터 일찌감치 자긴 어릴적부터 집이 마치 박물관처럼 물건이 너무 많은 게 싫었다며 가서 보고 물건이 너무 많아도 놀라지 말라고 내게 미리 언질을 준 상태였다.


그때가 내가 프랑스 가정집의 이국적인 맥시멀리즘 인테리어에 처음으로 노출된 때였다.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벽에 도열된 냄비, 후라이팬, 접시들, 그리고 아주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고가구들까지 마주하니 정신이 없었다. 크기에 맞춰 아예 세트로다가 구비한 장식품이 워낙 많다보니 둘러보며 과연 프랑스의 가정집 인테리어는 이렇구나, 하는 생각에 마치 즐거운 문화 탐방을 하는 기분마저 들었더랬다. 오래된 책들이 빼곡히 꽂힌 서재도 있었다. 책을 하나 꺼내들자 먼지가 후르륵 떨어지며 노랗게 바랜 종이 냄새를 풍겨왔다. 공간의 여백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층마다, 방마다, 사면이 장식품과 가구와 각종 패턴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시부모님의 집과 즐거운 첫만남을 가졌다.


직접 만든 가구들은 집안 대대로, 프랑스 시부모님의 집에서


미니멀리즘 광풍과 더불어 나도 항상 어릴적부터 물건이 많은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제 가정도 독립했으니 우리 집만큼은 심플한 디자인으로 꾸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즐거움으로 느껴졌던 시댁의 물건과 가구들도 어느순간부터는 한번 쫙 정리를 해야 할 대상으로 보이게 되었다. 아무래도 연세가 많으시기도 하고 일손이 부족하여 엄두를 못 내시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정말 오래된 것들은 같이 청소하면서 버리고, 먼지도 털면서 정리를 한번 같이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우리 부부는 시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집에 안계신 날을 잡아 대청소를 하러 갔다. 정리정돈과 청소를 한꺼번에 하려니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정리 후, 서재


내 살림도 아니니 당연히 물건을 함부로 버릴 수는 없다. 어떤 물건이 정리 대상인지는 집을 잘 아는 남편과 하나씩 상의를 하면서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정리하려고 했다. 일단 남편이 어릴적 쓰던 오래된 방에 쌓인 세월의 먼지를 털어냈다. 근 10년 전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엑스레이 사진과 온갖 행정처리 후 쌓인 서류들도 정리할 대상으로 분류했다. 그러다 한쪽 구석에 낡고 변색되어 흰 운동화도 정리할 대상으로 분류해 내다 놓았다. 하루가 꼬박 걸려 청소와 정리를 마친 후 뿌듯함을 느끼며 남편과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저녁에 돌아오신 시부모님이 집이 너무 깨끗해졌다고 고맙다고 전화를 해오셨다. 사실 내가 놀란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다음 번 시댁을 다시 방문했을 때였다. 직접 수거함에 넣었기에 특별히 기억하는 그 흰 운동화 한 켤레가 다시 돌아와 한쪽 구석에 얌전히 앉아있는 것이었다. 의아해 여쭤보니 시아버지는 그 운동화를 안 쓴지 너무 오래되어 쓰진 않으시지만 찾아보고 필요한 사람에게 주면 될 것 같아 다시 주워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우리 부부가 파리 아파트 앞에 큰 폐기물을 내다버리던 때 겪은 일들이 오버랩되었다. 나름 미니멀리즘을 실천한다고 오래된 가구들과 책들을 파리 청소 공공 서비스에 등록하고 물건마다 등록번호를 고이 붙여 길에 내놓았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내다 놓은 후 마트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보니 예정된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우리 집에서 내놓은 낡은 가구와 책들이 사라져 있었다. 이상하게 여겼지만 다음 번에도 마찬가지의 일을 경험했다. 한참 후에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남편이 어느 날인가 밖에서 오래되고 작은 나무 장식장을 주워온 것이다. 파리의 사람들이, 길에 폐기물로 내놓은 가구와 책이나 쓸만한 생활 용품들을 주워가기도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여담이지만 그걸 피하고 싶으면 정시에 배출해야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물건이 새것이든 중고품이든 개의치 않는다. 큰 마음먹고 물건을 내놓았을 때에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길 바라는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자는)’ 정신이 살아 있었다. 남편은 내게 아마 프랑스 전국 가정집이 모두 미니멀리스트가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전국의 쓰레기 배출량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농담을 했다.


파리 마레지구의 한 벼룩시장에서


나는 그간 프랑스에서 방문했던 남편 친척집들과 지인들의 집들을, 부동산 사이트에서 수백 번도 넘게 본 프랑스 가정집들이 해놓고 사는 인테리어 사진들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 사는 동안 프랑스에서 미니멀리스트들을 만나본 기억이 없었다. 나이 지긋하게 든 무슈마담, 중년층 사람들, 시가족과 친척 집 모두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구를 간직하고, 살면서 모은 물건들을 집에 쌓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유독 프랑스 사람들은 집 한 켠을 빈 공간으로 두는 것이 재미없다고 생각하거나 심적인 공허함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가족의 추억이 깃들어 의미있게 간직하는 물건들은 많을수록 좋다


미니멀리즘에서는 과시성으로 물건을 보유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그 소유의 고리를 끊어내야 힐링이 된다는 논리인데 비해 프랑스의 맥시멀리즘에는 과시성이라는 동기가 적은 편이다. 그보다는 가족, 자기 위안, 재미를 중시한다. 프랑스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맥시멀리즘의 동기는 ‘가족’에서 시작한다. 몇 해 전 평생을 사랑으로 함께 살다가 세상을 뜨신 시조부모님의 집을 정리하면서, 시조부모님이 남기신 가구, 주방 도구, 책, 공구들은 대부분 장남이신 시아버지의 집으로 그대로 들어와 이미 있던 시댁의 물건들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그 이면에는 대대로 물려받은 물건들에 담겼던 인생과 추억으로 기억하는 프렌치 가족 문화와 감성도 존재하고 있었다.  


집착을 떼어내는 과정을 겪으면서 힐링이 되고 테라피가 된다면 미니멀리스트가 되겠지만, 그 과정이 아프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그 물건이 떠나간 그 자리에는 깊은 흉이 진다. 버리는 대신 사진으로 보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미니멀리스트가 되겠지만 가끔은 그 물건을 어루만지면서 기억하고 싶은 일도 있을 테니까. 프렌치식 인테리어는 공간을 채우는 오브제의 값어치를 떠나 공간을 ‘맥시멀하게’ 활용하는 방식에 가깝다. 프랑스인들은 오래된 물건들을 모으며 삶을 기억하고 사람을 추억하며, 그렇게 공간에서 위안을 얻는다. 프랑스인들에게 맥시멀리즘은 테라피가 된다.

 

프랑스 맥시멀 인테리어 ©pixabay




이외에도 누가 내게 물어본다면 프랑스식 인테리어란 다양한 소품을 활용한 인테리어라고 답할 것이다. 왕족이 살았던 고성 지대, 베르사유, 파리 근교 퐁텐블루 등 오래된 유적지에 가보면 꼭 방은 천장부터 문고리까지 번쩍거리는 형형색색의 디자인으로 꾸며둔다.


파리 근교, 퐁텐블루에서


프랑스 어디를 돌아봐도 공간은 꽉 차 있다. 프랑스 가정집들도 꼭 벽부터 주방까지 꽉꽉 채우는 인테리어를 한다. 혼자 살아도 집이 심플하면 심심하고 외로워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프랑스에는 마을마다 오래된 고가구나 앤틱한 소품들을 내놓고 파는 벼룩 시장이 열리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본다. 이런 벼룩시장도 알고보면 프랑스인들의 맥시멀리즘의 소산이다.


파리 마레지구의 한 앤틱 시장에서


프랑스식 맥시멀 인테리어를 하려면 우선 최대한 많은 색상을 활용해 조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빈티지, 클래식 등 테마를 정해 테마에 맞는 소품을 적절히 배치한다. 벽에는 최대한 많은 접시, 거울, 액자, 장식품을 달아둔다. 가구의 윗부분에는 다양한 앤틱 소품을 정렬해 심심함을 줄인다. 벽지는 색상 테마를 정해 패턴이 들어간 포인트 벽지를 최대한 활용한다. 콜렉션으로 모으고 있는 것이 있다면 장식장에 당당히 진열한다. 그게 책이든, 엽서든, 특정 동물이나 캐릭터를 활용한 장식품이든 상관없다. 프랑스 시부모님의 경우 당나귀를 키우고 있으셔서 당나귀 장식품을 모으고 계신다. 책이 많은 집에서는 책을 꽂아둔 서재를 콜렉션의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래서 프랑스에서는 소품을 사는 재미도, 소품으로 꾸미는 재미도 있다.


프랑스의 다양한 문고리 장식들, 파리시청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재미있는 조명과 벽면 꽉 찬 흑백사진 인테리어, 파리의 한 카페에서


프랑스는 패션은 투머치를 경계하며 시크하게 꾸미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프랑스인들의 집에는 은밀한 비밀이 있다. 바로, 집은 맥시멀하게 꾸민다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의 DNA에는 집안 대대로 맥시멀리즘의 기운이 흐른다. 그들의 맥시멀리즘은 공간에서 위안을 받는 테라피형 사고체계이며,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고, 물건을 폐기배출하지 않고 오랜기간 점유하며 쓰는 지혜다. 맥시멀리즘에도 좋은 점들이 있다. 프랑스식 맥시멀리즘은 앞으로 몇 년 간 미니멀리즘에 대항하는 또 다른 트렌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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