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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들이 받았던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

나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우리 집에서 트리를 꾸며본 적이 있었나 싶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였기도 했겠지만 크리스마스는 부모님이 연말을 맞아 하루 쉬는 휴일에 더 가까웠다. 우리가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신다는 것을 믿을 때까지는 크고 작은 장난감을 선물로 주시곤 했지만 말이다.


성인이 되고 맞은 크리스마스는 주로 집 밖으로 나가 친구들이나 연인과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는 종교를 떠나서 대중들에게 연인의 날, 로맨틱한 날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브에 눈이 오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든가, 크리스마스의 연인이라든가 그렇게 달콤한 말들처럼.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건너와 살면서 크리스마스(noël)시댁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 되었다.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보내는 크리스마스의 모습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갔다. 어느 날인가 한국은 크리스마스가 보통 연인들이 함께 하는 날이라고 설명하자 시아버지는 매우 놀라시며 프랑스에서는 일 년 간 헤어졌던 가족들도 다 모일 정도로 큰 명절 같은 거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마치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온통 귀성길로 붐비는 고속도로를 보기도 하고, 신년까지 껴서 긴 겨울 바캉스를 계획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끼리 준비한 선물을 서로 주고받는다. 이곳에 살면서 내가 시부모님에게 주로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은 초콜릿이나 사탕, 향수, 모자와 목도리 같이 크게 부담 없이 바로 먹거나 쓸 수 있는 잡화였다. 원칙은, 선물을 주고받는 데 서로 간에 큰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렇지만 요즘은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을 노렸다가 일 년 동안 준비하지 못했던 물건을 큰 마음먹고 사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준비한 값진 선물들을 야심차게 주고받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매년 이맘 때쯤 선물 목록을 고르는 데 머리를 쥐어짜게 되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이 선물 문화가 즐겁게 느껴진다.


올해는 파리 근교에 사는 우리 집이 모임의 주최가 되었다. 남편과 함께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먹을 메뉴를 짰다. 동시에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직 백일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는 아기에게도 간단하게 선물을 주고 사진을 찍어줄까 했더니, 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어렸을 적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옛날엔 아이들한테 오렌지를 선물로 주는 전통이 있었대”


“오렌지를?”


프랑스에 대해 아직도 이렇게나 모르는 게 많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더 재미있는 건 뭔 줄 알아? 크리스마스에 오렌지를 주는 풍습이 생기기 훨씬 전인 중세 시대에는 빨간 사과를 주기도 했대.”


여태까지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를 몇 번이나 지나쳐 보냈는데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처음으로 접한 이야기였다. 남편을 잘 꼬시면 대화에서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풀린다. 다른 데서 잘 접하기 힘든 할머니 할아버지 시대의 이야기라든가. 오래전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날 아이들에게 오렌지를 주었던 이유는 뭘까.


가장 이른 시대의 전설로는 4세기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세 딸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성인 니콜라(St.Nicolas)는 그의 집으로 찾아가 빨래 후에 화롯가 옆에 걸려 있던 양말 안에 세 개의 금화를 던져놓고 나왔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곤 하던 오렌지가 바로 이 금화의 상징물이라고 하는 것이 그 기원이다.


18세기~19세기에 오렌지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만 났기에 프랑스에서는 매우 이국적인 과일이었다. 특히 18세기 앙시앙 레짐(구체제인 절대왕정 체제) 하에서 오렌지는 프랑스 북부 지역에 있는 온실(오랑주리)에서 재배되어, 특권층인 귀족만 찾아 먹을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과일이었다. 그러고보니 오늘날 남아있는 베르사유 궁전에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옆 튈르리 공원 안에도 오랑주리가 있었다.


19세기가 되자 스페인에서 행상들이 찾아와 오렌지를 팔기 시작했고 오렌지는 귀족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났다. 이때부터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막 유행이 되었는데 점점 사람들이 오렌지라는 과일을 알게 되니 평범한 가정에서 아이들을 위해 귀한 선물로 오렌지를 마련해서 주기 시작했다. 이때도 오렌지는 매우 귀하고 값비싼 이국적인 과일이었다. 훨씬 오래 전인 중세 시대부터 프랑스인들은 크리스마스에 빵데피스(pain d’épice), 빨간 사과와 같은 상징성이 강하고 귀했던 것들을 선물했는데 이때부터는 오렌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로 넘어와 대공황 시기에는 반대로 돈이 궁했던 사람들이 오렌지를 선물로 주었다. 선물을 살 돈이 없었기에 견과류나 오렌지 같은 것들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대신했던 것이다. 이 풍습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조금씩 사라지다가, 아쉽게도(?) 1960년대를 넘어가면서 거의 사라졌다. 아마 그때부터는 아이들에게 오렌지보다 더 흥미로운 장난감들과 초콜릿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 기차놀이 세트라든가.



“오렌지도 그렇고 빨간 사과도 그렇고... 그 시대에는 신선하고 귀한 과일을 주는 게 큰 의미가 있었겠지. 지금은 한 망에 3유로면 사니까 흔해졌지만.”




현대의 아이들은 어쩌면 이런 오렌지를 받는 전통이 없어져서 잘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대신 게임기, 장난감, 초콜릿 같이 흥미진진한 다른 선물들을 받을 기회가 생겼으니까! 그렇지만 오렌지는 그 시대에서 가장 귀한 것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같은 것 아니었을까.


사실 이 오렌지 풍습은 프랑스에서만 있었던 건 아니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영미권이나 다른 유럽에서도 비슷하게 전해 내려오던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다른 점은 프랑스에서는 다른 나라들처럼 양말에 오렌지나 선물을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트리 아래 자기 신발을 놓아두면 그 신발 위에 선물을 올려놓는 모습이었다는 것. 어릴 적 남편은 선물을 많이 받고 싶은 마음에 신발을 몇 켤레씩 갖다 놓았다고 한다. 산타 할아버지가 신발마다 선물을 올려놓고 가실 거라고 믿으면서. 그가 나에게 나누어 준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추억들에 잠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도 커가면서 기억할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가 3주 앞으로 훌쩍 다가왔다. 오렌지가 꽃피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다보니, 태어나서 첫 노엘을 맞이하는 우리 아기에게 무슨 선물을 주고 싶은지 금새 정할 수 있었다. 그래, 속이 꽉 차게 잘 익은 오렌지 하나. 트리 아래에 아기 신발과 함께 올려놓을 오렌지 하나면 될 것 같다. 혹독한 겨울에도 따뜻함을 간직한 작은 태양, 그 귀함과 따뜻함을 선물하고 싶다.


이런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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