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것

감정 도둑이 되지 않도록

by Su

성장과정에서 옵션으로 얻은 것인지 날 때부터 기질이 그러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예민하다. 그런데 모든 영역에서 민감한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어이없을 만큼 둔하다. 나는 늘 아무거나 잘 먹고 아무데서나 잘 잤다. 딱 한 가지,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타인의 마음이다. 남의 마음이 신경 쓰이는 순간부터 먹기도 힘들고 자기도 힘들었다.

많은 경우에 노력하지 않아도 타인의 마음이 너무 빨리, 크게 느껴졌다. 가끔은 타인의 마음에 눌리기도 했다. 그게 너무 힘들고 신경 쓰여서 어릴 때는 의식적으로 사람에게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이십대 초반에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의도치 않게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지고 말았다. 그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남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아주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비위를 맞추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조종하려는 것임을 스물 하고도 일곱 해를 넘어설 때 깨달았다. 나는 상대의 화를 풀어준 것이 아니라 타인이 화를 낼 권리를 빼앗은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온화하고 은근한 방식의 통제와 조종을 시도한 것이다. 나는 이런 내 상태를 <친절의 가면을 쓴 독재자>라고 스스로 칭한다. 이러한 통제는 자기 비하와 우월감이 동시에 가시화되는 방식이다. 상대방보다 내가 감정적으로 우위에 있기에 맞춰주고 받아준다는 시혜적인 태도가 근본에 깔려 있으나, 동시에 화를 빨리 풀어주기 위해 스스로를 지나치게 낮추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피해자가 되기 위해 상대방을 굉장히 유아적인 가해자로 설정하는 동시에 은근히 상대를 훈육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기도 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가끔은 화를 풀어주기 위해 지나치게 비굴한 자세로, 거의 빌다시피 굴었다. 누군가가 화가 나 있는 상황이 견딜 수 없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 모습을 처음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을 때는 솔직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냥 착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고 싶었다. 그러나 가면을 쓴 채로는 누구와도 진짜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 나는 노력하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이 불안하다고 해서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억지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섣불리 단정 짓거나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오늘 나와 대화하며 표정이 나빴던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뭔가 잘못했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가령 아침에 주차 딱지를 뗀 것에 속이 쓰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배가 아파서일 수도 있다. 낯을 가리거나 원래 표정이 어두운 사람일 수도 있고. 나은 그의 우주를 다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안다는 오만을 버려야 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자기 마음을 다스릴 권리가 있다.

가족이라도, 혹은 연인이라도 타인의 감정을 훔치거나 조종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슬퍼하고 화낼 권리가 있다. 물론 누군가가 스스로를 집어삼킬 만큼 큰 슬픔에 빠져 있다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을 것이고, 지나친 분노가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힌다면 주의를 주거나 대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ㅡ 그런 것이 아니라면 나의 평화를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훔쳐서는 안 된다. 너무 빨리 달래주거나 너무 앞서서 안정시키려 하는 것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필요할 때 충분히 울고 충분히 화내야만 건강한 마음이 돌아올 수 있다. 우리는 타인에게 감정의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 감정은 오롯이 자기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ㅡ 누군가가 토라지거나 화가 났을 때, 내가 큰 잘못을 한 것이 아니라면 잠시 기다리려고 노력한다. 사과가 필요하다면 진심이 담긴 사과를 하고 상대방이 사과를 받아들일 때 까지 기다린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면 부당항 부분에 대해 말하거나 잠시 거리를 두고 기다린다. 불안함이 올라오고 두려워지면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뜨거운 차를 마시며 동영상이라도 하나 보면서 나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충분히 토라지고 화내고 슬퍼하고 마음이 잠잠 해졌을 때 다시 다가오거나 도움을 청하면 그때 대화를 하고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이것은 사실 내 안에 타인과, 그와 맺는 관계에 대한 신뢰를 키우는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화를 내고 다투는 것도 관계의 한 측면이기에
이 정도의 일로 관계는 깨지지 않는다, 라는 것을
나는 내 안에 사는 불안한 아이에게 가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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