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할 뿐 아니라 생각이 많고, 논리구조가 복잡하며, 의미부여를 잘한다. 이런 나의 성격은 일을 할 때는 제법 도움이 된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이 업을 위해 10대 때부터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을 훈련해 왔다. 선생님들은 내게 감성을 극대화시키는 훈련을 다년간 시키셨고, 이 훈련은 나의 기본 성격을 더욱 강화시켰다.
안 그래도 타고난 기질 자체가 여리고 자기 보호 본능이 강한데 의미부여까지 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참 피곤해진다. 누군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숨은 의미를 찾으려 하고, 비언어적 수단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특히 이런 반응은 상대방이 부정적인 감정을 비칠 때 더욱 강해졌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사건 현장에 처음 진입한 감식반 같은 태도로 대화에 임했다. 말속에 담긴 감정의 발자국을 찾고 지문을 검식했다. 이 형사는 몹시 집요했으나 불행하게도 이성적이지는 못했다. 자주 헛다리를 짚었고 확대해석하는 날이 잦았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이 감정의 폭탄이 떨어진 사건 현장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화가 났나? 토라졌나? 내가 싫어졌나?
언제부터지? 내 더러운 성격을 알게 된 날이었을까?
내 냉소적인 마음을 보았나? 내 거짓을 들켰나?
누군가가 내 험담을 했을까? 수많은 질문의 수류탄이 현장에 쏟아졌고 내 마음은 엉망이 되었다. 결국 처음의 사건 현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슬픔에 잠식된 나만 남았다.
이런 삶의 태도가 나를 지치게 만들고 타인과의 관계를 결코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할 무렵, 나는 아주 단순한 친구를 한 명 사귀게 되었다. 그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법이 없었다. 그는 늘 시원시원했고 복잡하지 않았으며 돌려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늘 직구로 승부를 보았고 그의 타율은 높았다.
내가 그를 알아가면서 그에게 없다고 느낀 세 가지가 있었다. 본심, 속뜻, 저의. 이 세 가지가 그에게는 없었다. 처음엔 나와 너무나 다른 그에게 당황했으나 그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그의 삶의 태도가 좋아졌다. 그는 늘 솔직하고 정직했으며 나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그게 전부였다. 그가 좋다고 하면 정말 좋은 것이었고 싫으면 싫다고 정직하나 예의바르게 말했다. 그의 태도는 바람처럼 청량했다. 나는 그와 있을 때면 마음이 편했다. 추리를 위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에 항상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모두가 속뜻을 가지고 있진 않다는 것을, A를 말했으면 A로 끝내도 된다는 것을.
물론 어떤 경우에는 내심 알아줬으면 하고 본심을 숨긴 대화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상대의 비언어적 표현에 예민한 사람은 상대방이 숨긴 감정을 잘 캐치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판에 잘 느껴지지도 않는 걸 찾아내려고 애쓰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마음속 너무 깊은 곳은 손대지 않기로 한 것이다.설령 상담가나 의사라고 해도 상대방이 도움응 청하지 않는 이상 그의 내면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전문가도 그럴진대 하물며 나는 어떠하랴. 우리 모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멋대로 누군가의 속마음을 캐내려고 애써서는 안되며, 그럴 필요도 없다.
누군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건
내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감정을 정직하게 표현하거나 시원하게 거절한 경험이 적었다. 본심은 숨긴 체 상대방이 알아주기만을 바랐다. 무례한 말에 상처 받았던 날, 단호한 말 대신 급한 일이 생겼다며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고 집에 돌아와 밤새 울었다. 좋아도 좋다고 말하지 못해서 발 끝만 쳐다봤다. 그날 우산 속에서 내 마음이 설레었다고, 사실은 전화를 기다렸다고, 그날 밤 심야 버스를 타고 네시간도 더 떨어진 지방 도시로 달려간 것은 네가 입대하기 전에 딱 한 번만 더 보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말하지 못하고 애꿎은 소매만 쥐었더랬다. 그가 내 본심을 알아채 주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면서. 나는 내 본심을 늘 작은 나무박스에 넣어 깊은 바닷속으로 던져 숨겨두곤 했다. 거절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그랬겠지. 그래서 나는 자꾸만 남의 마음에도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왔던 것이다.
나는 이제 A는 A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타고난 성격이 있어서 어렵긴 하지만 최소한 A-1에서는 멈추려 한다. A가 내 안에서 여러번의 의미부여를 거쳐 D로 변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A를 A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싫으면 싫다고 나의 부정적인 마음을 드러내고, 좋으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나의 감정에 정직할 때, 비로소 타인의 말도 투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평생 자라나는 존재이니까, 이 시간도 자라나는 과정일 뿐이다. 이 과정을 천천히 즐겨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