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말,
어깨가 심하게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인대가 찢어지고 염증이 꽉 차서 급하게 주사를 맞고 돌아온 적이 있다. 물론 전초 증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깨가 지릿하게 아프기 시작한 것은 9월 중순부터였다. 처음엔 찌르르하다가, 10월이 되니 들어 올리기가 힘들었고, 11월이 되니 상하 구동 자체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통증에 너무 익숙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참고 참다가, 12월이 되어 찢어진 듯한 낯선 통증이 찾아왔을 때는 도저히 참지를 못하겠어서 병원을 찾아갔다. 한 밤중에 끙끙거리거다가 깨기를 열흘 정도 반복된 후였다. 초음파를 찍어보니 왼 어깨에는 물이 꽉 차 있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것은 왜 왼쪽 어깨냐는 것이었다. 보통 작가는 오른쪽 어깨가 고장 난다. 펜이나 마우스를 잡는 구동 동작이 반복되다 보니 펜을 잡는 쪽 어깨나 손목이 나가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갖고 있기에 고장이 나도 오른쪽이어야 할 텐데, 왜 왼쪽이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내가 왼 어깨를 몹시 혹사시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 오른쪽 팔꿈치는 구동 각도가 110도 정도다. 어릴 때 후유증으로 활막 성장 진행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약으로 틀어막아서 110도까진 펴지고, 일상생활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팔이 쭉 펴지지 않아도 나는 오른 팔로 일도 하고, 세수도 하고, 수능날 마킹도 했다. 그런데 오른팔이 잘 안 펴지는 데다가 이쪽 손으로 그림도 그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힘이 쓰이는 일은 모두 왼 손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림 그리거나 글 쓰는 등 오른 팔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행위가 아니면 항상 왼 팔을 쓰고 있었다. 물건을 들 때, 문을 열 때, 옷을 벗거나 가방을 들 때... 가만 생각해보니 왼 팔을 쓰는 비중이 70% 이상이었다. 이게 무리가 된 것이고, 그 무리가 누적되어 결국 어깨에 염증이 차고 어깨가 찢어진 것이다.
자료로 쓰려고 찍어둔 사진.ㅋㅋㅋㅋ
마음이라고 다르겠는가.
누구나 마음에 잘 펴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누군가는 웃는 게 어색할 것이고, 누군가는 우는 게 어색할 것이다. 남에게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는 게 불편할 수도 있고 혼자 고통을 이겨내는 게 힘들 수도 있다. 이게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펴지지 않는 마음 근육 대신에 다른 마음 근육을 혹사시키기 시작하면 반드시 고장 나는 순간이 온다.
울어야 할 순간에 울지 못하고 웃어버리는 한 친구, A를 만난 적이 있다. A는 습관적으로 웃었다. 얼핏 보면 아주 상냥하고 다정하며 쾌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슬픈 이야기를 할 때였다. 신파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흔한 얘기야, 라며 그는 깔깔 웃었다. 아주 아주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었다. 한참을 웃던 그는 별안간 웃음을 멈추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는 우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 같아. 울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아예 못 우는 사람이 됐어. 우리는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자주 애인이 바뀌는 B를 만난 적이 있다. 짧을 때는 한 달 간격으로 애인이 바뀌었고 그녀는 그것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나도 그런가 보다 했다. 어느 날 밤, 나를 집에 데려다주던 그녀가 자동차의 은은한 진동소리만이 울리던 적막을 깨고 말했다. 애인이 많으면 안 외로울 것 같지? 오히려 더 외로워. 그렇구나. 그럼 잠깐 애인을 만나지 말아 봐. 그건 안돼. 그건 무섭거든. 그게 끝이었다. 그 뒤로 그녀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울어야 할 땐 울어야 하고 떼를 쓸 땐 떼를 써야 한다. 화를 낼 땐 화를 내고 웃길 땐 웃어야 하며 외로울 땐 외로워해야 한다. 써야할 순간에 쓰기 어렵다고 해서 다른 근육으로 마음을 달랜다면 어느 순간 마음에 근육통이 심하게 오는 순간이 온다. 마음이 찢어지고 염증이 가득 차 통증으로 밤에 깨어나게 된다. 알고 있다. 울 때 우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는 것을. 울면 안 되었다는 것을. 웃을 수 없었다는 것을, 외로움을 직시할 수 없었다는 것을.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는 것을 안다. 나 역시도 나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마주하지 못해 고립이라는 방어기제로 도망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도망쳤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내 아팠던 마음을 돌아볼 만큼 성장했고, 단단해졌다.
자연스럽게 어떤 마음의 근육을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한 근육은 너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이 고장 난 듯한 느낌이 들어도 괜찮다. 고장 난 것을 깨달았다면 고치면 되기 때문이다. 깨달은 순간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이제 내 왼쪽 어깨는 잘 올라간다
그리고 오른 팔도 열심히 스트레칭 중이다. 너무 어릴 때 굳어져서 오른팔을 완전히 펴진 못하겠지만 스트레칭을 해서 조금이라도 튼튼하게 만들어보려고 한다. 조금씩 노력한다면 아마 곧 양 쪽 어깨를 좀 더 편안하게 쓸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빨리 오지 않아도 괜찮다. 찬찬히 무리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펴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아주 부드럽게 올라가는 내 어깨를 보고 스스로 기뻐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