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습관적으로 불행을 꿈꿨다.
그 무렵의 나는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나의 불행을 그렸다.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희망보다는 불행을 꿈꾸는 것이 더 편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희망했다가 실망하는 것이 싫어서 불행을 상상했다. 이것은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으로, 최악의 상황을 미리 그려서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행위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도록 말이다. 무방비 상태로 당하면 너무 아프고 힘드니까, 미리 머릿속으로 수없이 상상하며 상처 받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현실에서 정말로 어떤 불행이 발생하면 나는 혼자 되뇌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알았고 말고! 다 예상했다고.'
그래서 불행을 준비해서 안 속상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준비하건 준비하지 않건 속상한 건 속상한 거였다. 그리고 불행한 상상은 실제로 불행을 불러왔다. 스스로를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으로, 천하의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나는 불행 상상 전문가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희망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희망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습관적 불행 상상은 마치 식후땡 같은 매력이 있었다. 담배 한 까치, 커피 한 잔처럼 사소하지만 끊기 힘든 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작은 희망부터 시작해야 했다. 때로는 시시껄렁한 공상이나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특별하고 탁월하고 행복한 일이 나에게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익숙하고 편안한 생각을 그만두는 용기가 필요했다.
물론 실망스러운 현실 속에서 희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은 분명히 나의 마음의 힘을 길러줄 것이다. 그러니 어려워도 연습해야만 한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 풍진 세상, 나조차도 나의 행복을 빌어주지 않는다면 대관절 누가 나의 행복을 빌어주랴. 나부터 나의 행복을 바라자. 희망을 연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