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시절로 돌아가

다시 꿈꾸기

by Moonjours

한창 수능을 준비하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교과서와 문제집을 싸들고 다니던 때.

거기에 새벽기도까지 출근 도장을 찍었던 때였다.

당연히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수 있을 줄 알았고, 친한 친구들은 모두 인서울 했다.

인서울 하기에 간당간당했던 점수는, 수능날 기적을 일으켜주지 않았다.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점수였는데, 하필 수능이 그 해에 쉽게 출제되어서 모두가 한 등급 이상 점수가 올랐다.

나만 빼고.



가고 싶었던 과는 문예창작, 국어국문학과였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냥 작가가 편안하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괜히 멋졌다.

시험 점수는 가고 싶었던 학교 정문도 못 갈 점수였지만 수능 보기 전까지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몇 장 없는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 중 한 장에 친구들 사이에 유난히 '작가스러운' 내가 있다.

고2소풍날이었다.

검정 뿔테를 쓰고, 드라이로 잘 손질한 단발머리 여학생.

회색 니트를 입고, 면바지를 입고 친구에게 작은 가방 하나를 빌려 크로스로 멨다.


두 사내아이를 키우는 지금, 그때의 내가 얼마나 순수하고 예쁘게 기억이 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억 속 나는 참 예쁘다.




재수를 했다.

대학을 갔지만 또 인서울은 하지 못했다. 점수를 맞춰 과를 선택하느라 계획에도 없던 유럽언어문화를 전공했다. 의외로 전공은 즐거웠다. 가보지 않은 세상의 문화와 언어는 새로웠고, 재미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과 조교로 남아 교수님들을 도와 학과 일을 했다.

그리고 약 일 년 후쯤 출판사에 취업을 했다.

길지 않았지만 14개월 정도 편집자로 살면서 많은 이들의 글을 읽고, 번역된 글을 손질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읽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배웠다. 디자인팀과 책의 내지 디자인, 표지디자인, 목차 등의 소소한 부분까지 회의를 거쳤다. 한여름에 인쇄소에 가서 책이 찍어 나오는 과정을 보기도 했다.

모든 과정이 일이었지만, 그때만큼 일이 재미있던 때가 있었나 싶다.


십여 년이 흐른 지금,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워내고 엄마와 아내의 이름으로 살다 문득 누군가가 꿈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부딪혀 글을 써보기로 했다.

마침 또 글 쓰고 읽기 너무 좋은 계절이다.

유난히 더운 여름을 지나니, 차가운 공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