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래 May 11. 2024

찾았다 우리 집

왜 하필 이 골목길이었던 걸까?

 

예약 손님을 기다리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수많은 질문에 답했지만, 우린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어. 왜 하필 이 마을이었던 거야.’



안동시에서 한옥 분포도가 가장 높지만, 인구 평균 연령이 상당히 높은 마을에 카페도 아니고 이상한 ‘공방 같은 게’ 들어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찾아오는 이가 많지는 않았으니 그리 크게 소문이 난 것도 아니다) 일 평균 방문객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더 많이 찾아왔고 어색하고 낯설어서 들어오진 못하고 진입로 화단에서 기웃거리는 어르신들이 더 많았다.     


"우리 왜 여기에 문을 연 거야!"

"그야 중심부는 매물도 없을뿐더러 너무 비쌌으니까."

"그래도 대출을 받아서라도 시내로 나갔어야 할까?"


한 달 내내 안동 전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중개인을 만나 다양한 한옥집을 보러 다녔지만, 우리가 고른 부동산업자들은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센스도 없었다. 도저히 집을 팔아 수수료를 받고 싶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센스가 넘치고 유쾌한 안동 전문가인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안동 전역에 나온 한옥 매물을 훑었다. 매물이 올라오는 대로 전화를 돌려 약속을 잡고 집을 보러 돌아다녔다. 하루에 4채 이상을 훑어보며 가격과 위치를 가늠해 보고 실망하고 후회하는 강행군이 이어지던 어느 날, 마침내 우리와 인연이 될 친절한 중년 여성 중개인을 만났다. 


그녀는 맞은편에 사람이 오면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비켜야 할 정도로 좁은 언덕길을 올라 서까래와 대들보가 아주 멋진 한옥집을 소개해줬다. 서울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계약했을 정도로 멋진 집이었다. 손으로 껴안아도 모자랄 정도로 두껍고 단단한 기둥은 100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만 같았다. 


한 가지 문제라면 아무도 찾아올 수 없을 정도로 시내에서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상권이랄 게 없었다. 그냥 비슷비슷한 한옥 사이에 기둥이 멋진 집 한 채가 비었을 뿐이었다. 철거를 하고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기에 차는커녕 오토바이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골목길 중간에 있었다.     


어떤 집이든 마찬가지였다. 가격이 별로이거나, 집 상태가 엉망이거나, 위치가 마음에 안 들거나. 마음에 들더라도 불법 증축한 부분을 걷어내고, 마당에 있는 창고는 철거하고, 서까래를 복원하고... 해야 할 일이, 그러니까 들어갈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진작 고민했어야 했지만 애써 외면했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돈.     

직접적으로 ‘돈’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직도 어색하다. ‘돈’이라는 단어조차 민망해서 전문가를 섭외하거나 원고 청탁을 받을 때면 ‘얼마나 드립니다.’ 혹은 ‘얼마나 주시나요?’를 자금, 사례비, 원고료, 견적 등의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서 빙빙 돌려 말하곤 하는데 돈 없이 못 살면서 왜 ‘그 단어’를 부끄러워하는지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돈이다. 유동인구 많은 위치, 질 좋은 상품, 훌륭한 인테리어... 골치 아픈 문제들은 대게 돈이 많으면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문제를 마법처럼 해결해 줄 자금이 수중에 없기 때문에 우리 모두 생고생을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다. 우리는 애써 외면했던 가장 큰 걸림돌 앞에 턱 - 발이 걸려 넘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오래된 한옥을 새롭게 인테리어 해서 꼬박꼬박 월세까지 내기에 시작하자마자 파산에 이를지도 몰라.


"우리 이럴 바엔 매매하자."

"뭐?"

"이러나저러나 파산인데 그냥 자가 마련이라 생각하고 아예 사서 작정하고 뜯어고쳐 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EBS 건축 탐구 <집>을 보면서 상상해 본 적 없다면 거짓말이다. 금슬 좋아 보이는 부부 혹은 사이좋은 가족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오래된 구옥이나 폐가를 본인들의 보금자리 재탄생시키는 일은 보기만 해도 시샘이 날 정도로 부러운 과정이었다. 어쩌면 언젠가는 우리도 저렇게 힘을 합쳐 집을 짓고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하고 넘기던 일이 이렇게나 이른 시기에 찾아올 거라곤 예상조차 못했다. 재미 삼아 보던 영상이 내 이야기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 우리도 한 번 해보자.”

2022년 3월, 그렇게 우리의 일생일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먼저 집을 구해야 했다. 막연하게 드문드문 겉핥듯 둘러보던 태도부터 바꿔야 했다.

30도가 치솟는 무더운 여름날, 한옥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동네를 세 번째 돌아보던 날 일전에 스치듯 지나간 한옥집이 그날따라 더 눈에 들어왔다. ‘진입로가 괜찮네’ 


대문이 옆집보다 10m 정도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지만, 진입로를 단독으로 쓸 수 있는 집으로 대문까지 들어가는 길에 온갖 잡초와 개똥으로 덮여 있었다. 빈집이 분명했다. 친절하고 센스 넘치는 부동산 중개인에게 빈집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 물어보니,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 닿았는지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며’ 자신만만하게 집주인을 찾아 나선 중개인한테 정확히 3일 뒤 연락이 왔다.


“집주인 찾았어요!”

"당장 보러 갈게요!"

집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처음부터 시나리오가 정해진 것처럼 우리는 길을 지나치다가 개똥이 지뢰처럼 군데군데 숨어있는 무성한 잡초 너머 사람이 살지 않는 한옥집을 발견했고, 매물로 나와 있지도 않은 집의 주인을 찾아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오늘, 집을 보러 왔다.

개똥을 밟지 않으려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사자상이 달린 초록 대문에 다다랐다. 


‘끼익 -’     

마당 한쪽에 자리 잡은 창고가 시야를 가렸다. 이 지역에서 가장 흔한 ㄱ자 구조로 마당엔 창고 겸 옛날식 화장실이 있었다. 부엌, 큰방 1개, 작은방 1개, 세탁실까지 평수도 충분했고 시내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평지에 있어 위치도 마음에 들었다.


‘창고를 철거하고, 벽을 다 트면...’

EBS 애청자답게 머릿속에 저절로 그림이 그려졌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집주인은 집을 파는 일에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왜 이런 한옥을 사려고 하지?’ 의아한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작년 말까지 세입자가 있었어요. 그전에는 제가 살았고요.”          

아쉽게도 서까래가 모두 막혀있었다.

“서까래가... 다 막으셨나 봐요.”     

중개인이 설명을 이어갔다.

“아, 90년대 트렌드가 서양식으로 다 천장을 막아버리는 거였어요. 아마 저거(천장)만 뜯으면 서까래 그대로 살아있을 거예요.”     

“여기는 화장실이 밖에 있나요?”

“아, 창고 옆에 재래식이 있고, 신식으로 부엌 옆에 새로 만들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이 부분은 불법 건축물이었다.)     


“여기는 세탁실인가요?”

“네 그쪽 문이 밖으로 이어져요.”

(여기도 불법 건축물이었다.)     


생각보다 공간이 넓었고, (불법 건축물인지 몰랐으니) 천장을 철거해서 서까래를 살리고 앞쪽에 통창을 설치하면 층고가 높아지고 개방감도 상당할 것 같았다.      


“네, 잘 봤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해요.”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집을 보고 온 날 저녁, 침대맡에 기대 책을 읽다가 이마를 탁 – 쳤다. 처음 집을 본다는 불안과 설렘으로 꼼꼼하게 구석구석 살피지 못한 것이다. 물은 잘 나오는지, 담장 너머엔 누가 사는지, 하수구는 잘 뚫려 있는지, 세입자 대신 곰팡이가 살고 있진 않은지 봤어야 했다. 다음날 중개인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한 번 더 집을 볼 수 없을지’ 부탁했다. 등기부 등본과 다음 약속일을 정해서 답장을 보내며 중개인은 ‘서류상으로 문제는 없어 보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이틀 후 다시 가본 집은 친근했다. 정말 우리 집이 될 것만 같았다. 물이 나오는지 틀어보고, 벽도 통통 쳐보고, 곰팡이 슨 곳은 없는지 둘러봤다. 문득 오수 처리에 생각이 닿아 뚜껑을 찾아 한참을 헤매다가 잡초 속에서 둥그런 오수처리 뚜껑을 발견한 후에야 집 보기를 마무리했다. 더 망설이다간 누군가 채갈 수 있다는 조바심에 그 자리에서 계약 의사를 내비쳤다.      


“저희 계약할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이 동네에서 이만한 집 찾기 어려워요. 그럼 매매가는 얼마 생각하세요?”     


매물로 나온 집이 아니라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된 것일까?

“저희는 최대 00만 원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 이상은 아닌 것 같아요. 집주인과 이야기해 보고 최대한 맞춰볼게요.”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흐르고 연락은 오지 않았다.

“우리가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뭐, 기다려야지.”

“그래, 전화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혹시 어그러진 건 아니겠지?”

“전화 왔다!!”     

“예, 여기 00 부동산이에요. 집주인이 처음에 XX을 불렀는데 00만 원으로 낮추느라 좀 늦었어요.”

“감사합니다!! 실장님 덕분이에요.”

“일단 계약금을 300 정도만 넣어요. 그래야 나중에 딴 소리 못하니까.”     


처음부터 00만 원이었는지 아니면 능력 좋은 중개인이 협상에 성공한 건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빈집 주인을 찾아주고 우리가 원하는 가격에 매매가를 맞춰준 능력 좋은 사람이었다.


“공동계약 할 거라 장소랑 날짜는 협의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공동계약... 이요?”

“네, 매수 쪽이랑 매도 쪽이랑 일정을 조율해야 해서요.”

“아, 네 그럼 연락 주세요.”     


공동계약? 매도인? 매수인? 

혹시나 홀랑 사기를 당하는 건 아닌지 이번엔 다른 종류의 걱정이 몰려왔다. 도대체 ‘공동계약’이란 게 뭐란 말인가! 더 자세히 물어봤어야 했나? 부동산 용어인가? 왜 다른 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쓰는 거지? 당황스러웠다. 문외한인 분야라 한 번 읽어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동산 관련 글과 문서를 두세 차례 읽어 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중개인이 1명이 아니라 매도인(파는 사람) 쪽 부동산 중개인, 매수인(사는 사람) 쪽 부동산 중개인이 다를 때, 양쪽 부동산 중 한 곳에서 한날한시에 계약을 진행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렇다)     


매일매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계약하는 날을 기다렸다. 여행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단순히 집을 구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돈을 내는 디데이가 오지 않기를.’

 집이 생기는데 왜 가기 싫은 마음이 드는 걸까? 어서 가서 해치우고 싶은 마음 반, 미루고 싶은 마음 반. 부동산 문을 들어서기까지 어찌나 가슴이 콩닥거리던지 순간 부모님을 모시고 왔어야 했나 ‘아차’ 싶었다.      


“저희는 도장이 없는데 사인해도 되나요?”

나보다 네 살 어린 집주인이 내 엄지손가락보다 두꺼운 인감도장을 꺼내자 우리 둘 다 인감은커녕 막도장도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인지했다.


“매수인은 도장 없어도 상관없어요. 다만 나중에 파실 거면 인감도장 있어야 하니, 만들어 놓으세요.”     

어디서 ‘특약조항’의 무서움을 들었기에 꼼꼼하게 토씨 하나 나중에 문제 될 부분이 없는지 읽어보고 시원하게 박카스 한 병을 들이켜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법무사 올 거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아, 소유권이전등기 때문에요.”     

생각보다 집 사는 일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물론 세상엔 나보다 야무지고 똑똑한 청년들이 많기 때문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부가가치세가 붙듯이 집을 매매할 땐 각종 세금과 부가 금액이 들어가며 처리할 서류가 산더미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몰랐다. 중개수수료(이건 당연하고), 등기비용(법무사), 그 밖에 취득세, 인지세 등등 매매가를 제외하고 500만 원의 쌈짓돈이 있어야 수월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추가로 건축 용도를 변경한다면 건축사 도장값까지...      


반드시 법무사를 고용해야 등기이전을 할 수 있는 건지 도무지 의심스러워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부동산과 사바사바를 한 법무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 두 명을 앉혀놓고 몇 십만 원이라도 더 받으려는 건지 그 자리에서 빠르게 평균 금액대를 검색해보기까지 했다. 삶에 풍파가 많았던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의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아직 법적으로 우리 이름은 아니지만, 거래가 완료되었다는 계약서를 들고 부동산 문을 나서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텅 빈 것처럼 허무했다. 

‘이 서류 한 장에 그동안 모아 온 모든 돈이 들어있다니.'


며칠 내내 두근거리던 심장이 둠 둠 둠 평범하게 뛰는 기분이 이상했다. 생소한 기분에 고개를 들어 짝꿍의 얼굴을 보자 안도감이 들었다. 

“우리 집을 산 거야.”

우리의 첫 공동 소유, 생애최초 한옥을 마련했다.          





p.s '돈이 없어서요'라고 이야기하기 민망하기에 왜 이 동네였는지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겠다고 하지만 뚜렷한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 둘이 마련할 수 있는 최대치를 모아 가능한 수준에서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래, 돈이 없어서 이 동네였다. 상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주변 누군가 이 동네에서 가게를 하고 싶다고 찾아온다면 뜯어말릴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롱나무꽃이 피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