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콜 대신 받은 전화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짜고짜 기둥이 썩었다는 소리에 세수도 못하고 모자만 눌러쓴 채 현장으로 달려갔다.
여러분도 인테리어 업종과 관련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감시’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의 조언에도 사람이 열정과 자부심으로 하는 일을 굳이 잘하나 못하나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봐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고 기초 설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우리가 저게 잘 되고 있는 건지 잘잘못 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기에 믿고 맡기는 것뿐 (이라고 당시엔 생각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입장이다. 만약 인테리어 공사를 앞두고 있다면 큰 공사든 작은 공사든 무조건 현장에 있어라!)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 온갖 장비와 도구, 인부들까지 와글대는 마당에 공사 먼지를 들이키며 공간을 차지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하루 한두 번 얼굴을 비추고 ‘우리가 이래 봬도 상당히 꼼꼼한 사람들이요’라는 (애송이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매의 눈으로 살펴보다가 시원한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사다 드리고 궁금한 걸 물어보거나 마무리가 덜 된 부분에 추가적인 요구를 하는 일이 최선이었다.
“우리 엄마도 화장실이 오래돼서 새로 공사했는데 완전 별로였어.”
“아니 원래 계약이랑 다르면 다시 요구를 해야지.”
“엄마가 그런 소리 못하니까... 그래서 이모가 그 업자 붙잡고 생난리를 쳤지.”
“그랬더니?”
“싹 다 갈아엎고 새로 해줬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강인한 인상과 높은 목소리로 무장한 논리인가!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어른들 말씀대로 하루종일 옆에 붙어서 일하시는 분들이 괴로워할 정도로 물어보고 조르고 잔소리를 해야 그나마 원하는 것에 가까운 인테리어가 탄생한다.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지만. 자고로 엄마 아빠 말 들어서 나쁠 건 없다.
한옥 인테리어는 일반적인 공사와 달라서 한옥 공사를 여러 차례 진행해 본 업체 혹은 전문 목수를 찾아야 한다. 한옥 스테이, 카페 등 여러 업체와 작업해 봤다는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들어 대구에 있는 인테리어 업체에 견적을 맡겼다.
서까래는 살리고 싶어요
-서까래는 뜯어봐야 압니다. 썩어 있으면 못 쓰죠.
-지붕은 교체 안 하실 거예요? 한옥 스테이 규정대로라면 이 지붕으로는 허가 못 받거든요.
-아, 여기랑 여기, 여기 여기 다 불법이라 철거해야 합니다.
-일단 공사 들어가 봐야 알 것 같아요.
억대 견적이 나온다는 한옥 공사를 본격적으로 들어가니 진심으로 ‘억’ 소리가 나왔다. 공사 첫째 날 창고를 부쉈다. 우리나라에서는 내 창고라도 함부로 부술 수 없다. 시청에 건물 멸실신고를 하고 전후 사진도 확실하게 찍어서 제출해야 한다. 창고가 사라지자 널찍한 마당이 드러났고 이어서 지붕과 기둥 등 뼈대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뜯어냈다. 막혀 있던 천장을 뜯으니 다행히 멀쩡한 서까래가 드러났고 방바닥도 깊이 파고 들어가 최대한 많은 공간을 확보했다. 철거가 온전히 끝났을 때 한옥은 깔끔하게 발라먹은 생선 가시 모양이었다. 도저히 집이라고 볼 수 없는 모양새였으나 나무에 덕지덕지 발라놨던 벽지를 제거하고 서까래까지 노출되니 드디어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어제 오후 이야기다. 멀쩡하게 철거가 진행되고 넓어진 공간에 환호한 지 열두 시간 만에 기둥이 썩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인테리어는 부르는 게 값이라더니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일까? 기둥이 썩었다면 돈이 더 들 텐데 어쩌지? 우린 이미 적금도 다 깼는데. 어쩐지 순조롭게 흘러간다 싶었다.
비몽사몽 간에 기둥이 다 썩었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달려간 현장은 생각 외로 평화로웠다. 어제와 별반 다른 점은 없어 보였다.
“기둥이... 있는데요?”
“아래가 썩었어요.”
대표는 들고 있던 드라이버로 부엌 쪽 전면 기둥 3개를 무자비하게 긁어내기 시작했다. 기둥이 바스라졌다. 이미 썩은 기둥이라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쯤은 진작에 이해했으나 소중한 내 집, 온갖 무게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 아래를 사정없이 긁어대는 대표가 야속했다.
“아마, 바깥에서 습이 들어온 걸 겁니다. 보일러가 터졌을 수도 있고요.”
“집주인이 그 사실을 숨긴 건가요?”
“글쎄요. 집주인도 몰랐을 수도 있고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기둥 교체 해야죠.”
별일 아니라는 듯 저 기둥은 바꿔버리면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표정과 말투에 안심되면서도 또 얼마가 깨질지 현실적인 걱정이 몰려왔다.
“보수 비용이 어느 정도 들까요?”
“견적을 내봐야 알 것 같아요.”
“기둥을 아예 떼어 내는 건가요?”
“썩은 부분을 잘라내고 새로운 걸로 교체하면 됩니다.”
“선생님 수술이 잘 될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큰 수술을 앞두고 담당 의사와 대화하는 기분이 이럴까? 의사가 환자에게 절대 확답을 주지 않듯 인테리어 업자들은 빈말이라도 정확한 금액, 시기, 일정 등 숫자를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기계로 들어 올려서 안전을 확보한 다음에 아래 기둥만 잘라낼 거예요. 가서 견적 내보고 연락드릴게요.”
상황은 심각해졌다.
“하, 대출이라도 받아야 할까?”
“대출을 내줄까? 프리랜서잖아 우리.”
직장이 없는 우리 둘은 대출 따위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금액이 늘어날까?”
“그러게 여기에는 시스템 에어컨은 들어가 있지도 않잖아.”
우리는 이날부터 아침명상을 시작했다.
일부러 핸드폰을 저 멀리 발치에 두고 대신 알람시계를 맞춘다. 일어나서 입을 헹구고 생수를 한 잔 마신 후에 고요한 음악을 재생하고 바닥에 앉아 가볍게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눈을 감고 깊게 우짜이 호흡을 이어간다. 기둥, 일, 아침, 월세 모든 세속적인 고민과 걱정을 잠시 밀어 두고 오로지 감각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온전히 나 자신만 생각할 시간은 지금뿐이다. 1440분 중 딱 10분.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한다.
내 마음엔 늘 바람이 분다. 불안을 친구로 두고 사는 나는 작은 새의 날갯짓에도 좌우로 흔들린다.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이 다리를 걸어올 때 아침 명상은 꽤나 도움이 된다. 짧지만 집중도 높은 명상의 시간을 머리가 기억해 내고 몸에 명령을 내린다.
“크게 심호흡 3번만 하자.”
갑자기 논리 정연해질 순 없지만, 파도처럼 밀려온 감정적인 단어들이 해변가에 부딪혀 쓸려나가듯 잠자코 있던 논리와 이성이 고개를 든다.
“현장에 안 오셔도 돼요. 좀 시끄러울 거라, 기둥 교체 끝나면 연락드릴게요.”
정신적으로 괴로웠던 거에 비해 보수 공사는 하루 만에 마무리되었다. 먼저 부엌 쪽 전면 기둥 3개와 안쪽으로 3개, 총 6개의 기둥 아랫부분을 교체했고 잘려나간 기둥은 나무 모양을 띤 스펀지나 다름없었다. 손가락으로 누르니 ‘주욱’ 들어가는 폼이 그 상태로 건조하면 전날 대표가 송곳으로 찔러서 바스러진 것처럼 산산조각 나는 것이다. 이런 집에서 썩은 기둥 그대로 살았다면 비명횡사하지 않았을까?
“여기에 철판을 덧대서 보강할 거예요. 공사는 잘 마무리된 거고, 이제 본격적으로 기초 설비 진행될 겁니다.”
그래,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어? 오늘 분명히 공사 들어온다고 했는데? 왜 아무도 안 계시지?”
“전화 한번 해봐.”
“아, 오늘 다른 현장 일이 있어 못 들어갔습니다.”
“아, 날이 흐려서 시공이 어려울 것 같아 못 들어갔습니다.”
“다음 주에 전기랑 같이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아 못 들어갔습니다.”
집주인 빼고 단체 카톡방이라도 있는 건지 나 빼고 다 아는 파티라도 간 건지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공사 현장을 배회한 것도 여러 차례이다. 집주인으로서 주기적이고 적극적인 소통을 요구한다면 지나친 참견과 간섭인 걸까? 이런저런 사소한 문제가 쌓여 결국 터졌다. 드디어 마당 미장이 끝났다고 연락을 받은 어느 날이었다.
“미장하고 나니까 왠지 삭막한데?”
“곧 겨울이고, 뭐 사방이 다 뚫려 있으니 그렇지.”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가시고기처럼 뼈대만 남아버린 한옥은 차디찬 늦가을 바람에 덜덜 떨고 있었다. 오래된 벽지를 떼어냈지만, 아직 부분 부분 지저분한 벽지를 반창고처럼 붙이고는 앙상한 팔다리로 힘없이 지붕을 메고 있는 연약한 시지프스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가여운 우리의 한옥집.
“어? 여기 모자이크 타일은?”
그때 알아차렸다. 계단을 덮고 있던 모자이크 타일이 회색 빛깔 미장으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요즘에는 찾아보기도 힘든 자잘한 모자이크 타일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업체 측 대표와 첫 현장 미팅 당시 모자이크 타일은 옛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시공을 진행하는 곳을 찾기 어려울 테니 철거하지 말고 살리자고 했었다. 게다가 예전 아궁이 구멍이었는지 전통 문양처럼 보이는 바람구멍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그때 있던 것들이 이젠 없었다. 당장 전화를 걸었다.
“네, 실장님. 미장된 거 봤어요. 깔끔하게 잘 되어있더라고요. 그런데 모자이크 타일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모자이크 타일이요?”
“사진 보내드릴게요. 저희 첫 미팅 때 봤던 그 타일이 다 덮여 있던데요?”
“대표님이 아래 지지하는 나무가 썩어서 어쩔 수 없이 다 덮었다고 하시네요. 죄송해요,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 건데.”
나는 뭐라고 답했어야 할까? 거짓말하지 말라고, 현장 감독이 사실은 다 까먹고 그냥 덮어버린 거 아니냐고 따졌어야 할까? 엄마 아빠였다면 큰소리를 쳤을까? 다시 살려내라고 했을까? 아니면 새로 모자이크 타일을 시공하라고 했을까?
이미 타일은 시멘트 아래 묻혀버렸다.(RIP) 요구한다고 고분고분 모자이크 타일 시공을 해줄 리도 없겠다 뭐 하러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까.
“그렇군요. 그래도 미리 말씀은 해주셨어야죠. 당황했어요. 다음부턴 꼭 미리 상의해 주세요.”
“죄송해요. 지금은 삭막해 보여도 위에 싹 갈고 나면 테라조처럼 보일 테니 너무 걱정 마셔요.”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짝꿍이 우스갯소리로 ‘글감 많아서 좋겠네’라고 실없는 소리를 할 정도라 원 없이 생애최초 한옥 마련 이야기를 꾸준히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대문 없이 2주를 보낸 적도 있다. 철거 후 쭉 집을 지키던 나무판자가 사라지고 드디어 철문이 들어온다던 ‘소문’을 들었는데 어느 날 나무판자마저 사라져 몰래 다니던 길고양이가 당당하게 출입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하루, 이틀, 주문했다던 철문이 들어오길 기다리다 못해 연락을 했다.
“문이 그냥 뚫려 있는데요?”
“현장 소장님이 너무 바빠서 그냥 오셨나 봐요. 내일 꼭 자물쇠 잠글 수 있게 해 놓으라고 할게요.”
내일은, 그다음 날은, 다음 주 월요일은 꼭... 하던 철문이 드디어 달렸다.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거 대문 생겼네 이제’ 하셨다. ‘그러게요 하하하 드디어 문 잠글 수 있어요.’
문득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에 우린 아직 어리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게 용납되던 어린 시절, 이젠 차라리 엉덩이 한 대 맞고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우리 집을 찾을 순 있는 걸까? 계약을 할 순 있을까? 인테리어는 끝나는 걸까? 돈을 벌 순 있을까? 그럼 다음은 뭘까? 성숙한 자립형 인간이 되는 길은 험난하고 고되다.
p.s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은 마인드 컨트롤뿐이다. 명상은 아주 좋은 시작이다. 만약 당신이 순간적으로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면, 예상치 못한 문제에 맞닥뜨렸다면 일단 아침 명상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