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란 정말 편한 직업이구나.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선생이 되는 것이 좋겠다. 저렇게 매일 빈둥거리며 지내면서도 선생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고양이라고 하지 못하란 법도 없겠다.
고양이는 정말 인간을 하찮게 생각할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길고양이가 많은 동네다. 이 녀석이 어제 우리 차 보넷 위에 올라 있던 그 녀석이 맞나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출퇴근길에 길 한 복판에서 마주쳐도 도도하게 ‘걸어서’ 지나갈 뿐 본인보다 덩치가 몇십 배는 큰 차를 피하자고 경박스럽게 달려간다거나 겅중겅중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밖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서 긴장하며 마당에 나가보면 맞은편 집 지붕을 타고 우리 집 담벼락으로 넘어온 무명의 고양이가 보인다. 담 하나를 나눠서 쓰는 한옥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터라 날쌘 고양이들이 넘어 다니기 딱 좋은 동네다. 특히 우리 한옥으로 들어오는 진입로는 명실상부 동네 고양이 핫플로 대낮은 물론이거니와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고양이들이 신나게 드나든다. 화단에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는다면 간지러운 등을 긁거나 휴식을 취하는 있는 거다. 딱히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하게 드나드는 고양이를 보며 즐거워했다.
"여기 뭐가 있나? 고양이들이 참 좋아하네."
"터가 좋나 봐."
어쩌다가 영역 감지 시스템으로 감시카메라가 울릴 때면 화단에 간지러운 등을 연신 비벼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물론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언제부터라고 콕 집어 이야기할 수 없지만 형언할 수 없는 악취가 풍겨왔고 견디기 힘든 냄새에 처음엔 옆집을 의심했다. 워낙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라 앞, 뒤, 옆으로 담장을 공유하고 창문이 달려 있기 때문에 저녁 시간이 되면 '아, 오늘은 삼겹살을 구워드시네', '오늘은 된장찌개구나'하고 메뉴를 알 수 있을 정도인데 이웃집이 장기 여행을 떠나며 미처 못 치운 음식물이 부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꽤나 합리적이었다. 게다가 옆집에서 며칠째 불빛 한 줄기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일주일, 이주일... 그렇게 한 달째 냄새가 지속되었을 때 우리는 고독사를 떠올렸다. 극단적인 추측이었지만 노인 인구가 많은 동네라 고독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면 메주라도 쑤는 거 아닐까? 집에서 장을 담그시는 거지."
"옆집 문을 두드려볼까?"
그러던 어느 날, 목격하고야 말았다.
평소와 다르게 일찍 출근하던 날이었다. 누군가 우리 집 화단 앞에 작은 음식 그릇을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것도 인간이 먹다 만 배달 음식을 담아서!
"이거 천엽이네."
"천엽? 보고 어떻게 알아?"
"당연히 알지. 누가 저녁에 시켜 먹고 남아서 내다 놨나 봐. 고양이 먹으라고."
무더위에 파리가 꼬였고 고양이의 방문 빈도도 잦아졌다. 그리고 질펀한 고양이 똥이 눈에 띄게 늘면서 고약한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눈을 질끈 감고 근처 고양이 똥에 코를 가까이 가져다 댔고, 확신했다.
"하... 이 냄새였어."
음식 냄새가 웬 말이고 고독사가 웬 말이냐.
고양이들이 한 번 들어가면 소식이 없던 화단을 철저하게 수색했다. 온통 똥이었다. 자잘한 돌이 깔린 화단을 배변 패드로 인식한 모양인지 빈 곳을 찾아 똥을 싸고 돌을 덮어놨다. 그래서 냄새가 진동했던 것이다. 우리 집 화단은 꽃밭이 아니라 똥밭이었다. 인간의 음식을 먹어서 그런 건지 냄새가 유독 독했고 진실을 알게 된 짝꿍은 잔뜩 성이 났다. 천엽 그릇 주인은 (당연히) (고독사를 의심했던) 이웃집이었다.
"길고양이가 불쌍하면 자기 집 앞에 먹이를 두면 되잖아! 왜 우리 집 앞에 두냐고!
게다가, 천엽? 먹다 남은 인간 음식? 차라리 고양이 사료를 주던가! 왜 시켜 먹고 남은 걸!"
다음 날 저녁, 일부러 야심한 시간에 스윽 나가보니 집 앞에 또 다른 그릇이 놓여 있었다. 저녁 9시 무렵, 누가 봐도 배달시키고 먹다 남은 음식이었다.
이곳에 음식을 갖다 놓지 마세요. 여름이라 파리 등 벌레가 꼬이고 악취가 납니다. 부탁드립니다.
A4 용지에 커다란 글씨로 안내문까지 써서 담벼락에 붙여놔야 했다. 이후로 그릇은 사라졌지만, 똥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 동네에 먹이 그릇은 하나가 아니었다!
맞은편 대문에도, 옆집 대문 밑에도 그릇이 있었고 고양이들이 빈번히 드나들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은혜는 못 갚을망정 그 집 대문, 길 앞 그리고 우리 집 앞까지 온통 실례를 범해놓았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호스를 끌어와 화단과 진입로에 갈겨놓은 똥을 치우는 일이 반복되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되었고 짝꿍은 차를 타고 가는 길에도 고양이 똥 냄새가 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댔다.
고양이들이 싫어하는 목초액을 뿌리고, 식초도 뿌리고, 화단에도 빈 공간 없이 큰 돌과 소라로 채워놨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예 출입을 막아야 할 것 같아서 화단 앞에 이동형 나무 울타리를 세워 해지기 전에 일부러 진입로를 막아놨건만 좁은 틈새로 들어온 건지 보란 듯이 실례를 해놨다. 어마어마한 양을 보고서 처음엔 고주망태가 된 술주정꾼이 실례를 범한 건 아닌가 의심을 할 정도였다.
“제 친구가 이 동네 사는데요, 다들 고양이 똥 때문에 고생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못 들어오게 대문 아래 뾰족뾰족한 발판을 두기도 해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정도로 냄새가 나서 전후사정을 설명하면 관광객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주민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양이 욕을 했다.
그러다진짜로 일이 터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금요일 오후였다. 유독 더운 올해 여름,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갇혀 지냈더니 몸 이곳저곳이 쑤시고 두 눈이 침침해진 것 같아 조금이라도 자연 바람을 쐬고 싶어 처마 아래 계단에 걸터앉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할 기획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가슴팍에 아이패드를 끌어안은 여성분이 골목길을 서성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서둘러 나가시길래 길을 잘못 찾아온 건가 싶어 흘끗 시선만 던지고 다시 일에 집중하려는데 두 번, 세 번, 연이어 서성이다가 그 뒤를 이어 누가 봐도 잘못 찾아온 것처럼 보이는 중년의 남성분이 골목길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오셨다.
"안녕하세요."
"아, 네 혹시 여기 주인분이세요?"
"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아니, 냄새 때문에요..."
냄새. 그래, 지금도 이 동네엔 온갖 냄새로 가득하다. 늘 맡던 냄새라 신경 쓰기 귀찮은 나머지 익숙해지려 애써 무시했는데 낯선 이의 입에서 '냄새' 이야기가 나오니 찰나온갖 생각이 스쳤다. '혹시, 우리 집이 냄새의 근원이었던 거야?' '우리 하수도 공사 잘못된 건가?' 공사가 마무리되고 나서 하수구가 막혀 악취가 진동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 나면서 내 얼굴은 당혹감으로 굳어졌다. '설마, 진짜우리 집이었던 거야...?'
2주 전부터 고양이 똥 냄새에 설상가상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상한 냄새까지 섞여 골목길을 잠식했다. 콧속이 시큰거리고 머리가 띵해져서 고양이를 쫓아내려고 누군가 락스를 탄 물을 섞어 길가에 뿌렸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날이 갈수록 냄새는 독해졌고 강한 바람이라도 불면 냄새는 담벼락을 타고 넘어와 우리 집 마당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런데 딱 그 정도였다. 불쾌한 냄새라고만 생각했지 생명에 위협이 되거나 삶에 위험을 불러일으킬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그렇지만 상황이 심각했던 걸까. 그들은 냄새 민원으로 점검 나온 시청 공무원이었다.
"민원이요? 냄새 때문에요?"
"네, 뭐 한두 번이 아니고 엄청 많이 들어왔어요. 뭐 별 것 없을 줄 알았는데 이거 냄새가 심각하네요."
"저희도 골치가 아파요. 근데 고양이 똥 냄새 아닌가요?"
"고양이요?"
"길고양이한테 먹이 주는 분들이 계셔서요. 얘들이 아무 데나 똥을 싸고 다녀요."
"근데 이건 냄새가 너무 심한데요? 잠깐 맡아도 머리가 아프네요.“
그때였다. 소리 없이 접근한 커다란 소방차가 골목길로 진입했고 뒤이어 한 대, 두 대 따라 들어오더니 골목길을 가득 채웠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근처 놀이터 정자에서 쉬고 계시던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들었다. 오늘 저녁 식탁에 올라갈 반찬거리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연이어 경찰차도 들어왔다. 좁은 골목이 순식간에 길거리 축제처럼 복작거렸다. 태화동에 이사 온 이래로 거리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장면을 처음 봤다. 신기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우왕좌왕하는데 방역복을 갖춰 입은 대원들 뒤로 마스크를 끼고 장비를 갖춘 소방 대원들이 안테나가 달린 무전기를 이리저리 들이대며 냄새를 좇았다.
"혹시 모르니 이쪽으로 비켜서세요."
덜컥 겁이 났다. 만약 이게 가스 새는 냄새라면? 어쩐지 요즘 몸이 시름시름 아프다 했어. 기침도 계속 나고.
삐비 - 삐비 -
우리가 너무 안일했다. 이거 고양이 똥 냄새가 아닐 수도 있겠는데?
아직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집집마다자율적으로 LPG 가스 공사를 시작했는데 올봄부터 부쩍 공사 빈도가 높아졌다. 가스 누진일 확률이 있었다.
삐비비비비비비
(!)
우리 집 옆집을 향해 무전기능 위협적인 경고음을 쏟아냈고 덩달아 소방 대원들의 다리가 바빠졌다. 길가에 내다 놓은 화분과 여러 잡동사니 사이사이를 뒤지던 용감한 대원이 빨간 약통 서너 개를 발견했다.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하필 빨간색 통이라니!
빨간 약통에 붙은 라벨을 유심히 보던 소방대원이 입을 열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 대원의 입만 바라봤다.
"병원에서 병실 소독하려고 쓰는 약이에요."
"인체에 해롭진 않습니다."
휴 -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점검 나온 공무원은 집주인 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걸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 아니 고양이가 자꾸 똥을 싸놔서요, 못 오게 약을 뿌린다고 뿌렸는데 안 그래도 냄새 저희도 때문에 미치겠어요. 통이요? 치울게요.
우리 집 앞에 먹이 그릇을 놔뒀던 옆집에서 자꾸 고양이가 찾아와 똥을 싸는 통에 쫓아버리겠다고 지독한 약품을 잔뜩 뿌리고 통을 그 자리에 버려둔 것이다. 썰물 빠져나가듯 소방차와 경찰자가 순식간에 철수했다. 거리는 다시 고요해졌다. 할머니들도 정자로 돌아가고 공무원과 나만 남았다.
"다들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러게요. 그래도 큰일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아니, 고양이가 인간을 하찮게 본다는 말은 취소다. 마음대로 약도 주고 병도 주는 건 인간이다. 고양이들은 얕보이지 않으려고 더 당당하게, 도도하게 걷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씁쓸한 오후였다.
다음 날, 통은 싹 사라지고 앞에 나와있던 화분도 정리되어 있었다. 냄새는 사라졌고그때부터 고양이들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