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프레스 역사는 18C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1년 오하이오 주에서 의기투합한 챈들러 씨와 프라이스 씨는 아름다운 작품을 구상했는데 오로지 기계 자체의 압력만으로 전기 공급 없이도 형압을 찍고 색을 입히는 인쇄 기계를 탄생시켰다.
‘... 굳이?’
맞는 말이다. 전기만 있으면 기계가 알아서 인쇄해 주고 대량으로 찍어내는 시대에 굳이 (제일 가벼운 모델이) 100kg에 육박하는무거운 고철 덩어리로 일일이 찍어내는 방식이라니...
“진짜 멋있잖아. 완전 아날로그야!”
우린 레터프레스에 푹 빠져버렸고 무슨 수를 써서도아날로그 프레스식으로 제품을 찍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랐다.
레터프레스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지한 계기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였다. 인스타그램은 풍부한 (때론 허접한) 레퍼런스이자 강력한 적극성을 부여하는 동료나 다름없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인스타그램 위로 손가락을 굴리고 있는데 한 영상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영상 속 외국인 여성은 커다란 물레바퀴를 돌리며 일정한 리듬으로 종이를 한 장 한 장 찍어내고 있었다.
“도대체 저게 뭐지?”
버전도 여러 가지였다. 중세시대 마차 바퀴 같은 물레가 달린 세탁기만 한 크기의 버전이 있는 반면에 기다린 레버가 달려 책상에 올릴 수 있는 크기의 버전도 있었다. 레터프레스란다.
“레터프레스래.”
그날로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레터프레스 관련 게시글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정보를 얻었다. 레터프레스는19C의 주요 인쇄 기계로 시초는 미국이며 독일제, 영국제 등 초기 모델을 모방한 다양한 브랜드가 존재했고 그중 제일은 (역시) 미제였다. 디지털 시대에서 수동식 아날로그 기계의 사장은 순리나 다름없기에 대표적인 아날로그 인쇄기 레터프레스도 더 이상 생산되지도 유통되지도 않았다. 빛나던 챈들러 앤 프라이스 사의 몰락이 찾아왔고 현존하는 레터프레스는 전부 19C~20C에 제작된 고물밖에 남지 않았으며 여전히 아날로그를 원하는 사람들은 녹슬거나 작동하지 않는 옛 제품을 수리하고 부품을 교체하고 복원하여 중고로 사고팔았다.
“난 큰 걸 갖고 싶어.”
“왜?”
“한옥에서 저렇게 물레를 돌리듯 제품을 찍는다고 생각해 봐. 바로 명소 될걸.”
“400kg이 넘는 걸 어떻게 옮길 건데. 대문도 저렇게 좁고.”
“그건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 그게 아니라 현실적인 대책이 있어야지.”
“넌 큰 게 싫은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못 옮긴다 이거지.”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저걸 어떻게 들고 올 거냐고."
"지게차도 있고 뭐든 들어 올릴 수만 있으면 되잖아."
레터프레스를 갈망하며 잔뜩 예민해져 있던 우리는 구하지도 않은 레터프레스를 두고 잦은 말다툼을 벌였다. 마치 진열대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 레터프레스들을 입맛에 맞게 골라올 수 있다는 태도로 큰 걸 살지 작은 걸 살지 실랑이를 벌였고 일단 작은 모델을 사서 써보기로 잠정적 합의에 이른 뒤 이리저리 판매처를 찾았지만 그나마 쓸만한 레터프레스는 모조리 미국에 있었다. 게다가 판매 중인 작은 모델은 아주 희귀했다. 그리고 2배는 더 비쌌다.
“왜 작은 게 더 비싼 거야?”
미국에는 레터프레스와 관련된 모든 것을 공유하는 페이스북 그룹이 있다. 중고 활자나 관련 물품을 사고팔기도 하고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는 곳이라 가입해 두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미국 내에선 생각보다 물량이 많아 보였고 우리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모델: C&P Pilot 조건: 아이오와주 직접 픽업 요망
모델: C&P 10x12 조건: 텍사스주 직접 픽업 요망
...
큰 모델은 심심찮게 올라왔고 비교적 저렴했다. 400KG이라는 무게만 제외하면 첫인상을 사로잡는 커다란 물레부터 가격까지 무조건 합리적인 소비라고 치켜세울 텐데 모든 판매자가 ‘직접 픽업’을 요구했다. 우린 그제서야 이민센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이민이나 유학 많이 가니까 그만큼 크고 작은 짐을 안전하게 보내주는 업체가 많을 거야. 우리도 그곳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어. 그래봤자 운송료가 얼마나 나오겠어.'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시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티키타카가 가능한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젊은 여성 판매자와 연이 이어졌고 그녀가 판매한다는 제품 컨디션도 바로 사용 가능할 정도로 훌륭했다. 무엇보다 판매자의 페이스북에는 어린 자녀들과 남편 사진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감히 가족 얼굴을 걸고 사기를 칠 것 같진 않았다. 신뢰가 갔다.
하지만 진짜로 작동이 되는지 영상을 보내줄 수 있냐는 말에 상대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해졌다. 설상가상으로 한국까지 와야 하니 제대로 작동되는지 중요하다는 말에 연락이 뚝 끊겨버렸다. 반나절, 하루, 이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재차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고용한 직원이 직접 픽업을 하러 가니 인계만 해주면 된다’라고 호소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더 이상 메시지 보내지 마. 이거 사기란 말이야.”
뒤통수가 얼얼했다. 사기? 사기! 사기라니! 가족 얼굴을 걸고? 아, 진짜 가족이긴 한 건가? 우리가 직접 픽업을 갔으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지? 머릿속에는 미국 영화에서 본 납치와 유괴, 폭행 등 온갖 폭력적인 장면이 떠올랐고 충격으로 온몸에 힘이 쑥 빠지면서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 넣었던 진짜 두려움이 불쑥 솟아올랐다.
“앞으로, 뭘 믿고 거래하지?”
“돈을 먼저 달라고 할 텐데, 돈만 받고 입 싹 닫으면 그만이잖아.”
"그나저나 우리가 너무 절박해서 불쌍해 보였던 걸까? 왜 사기라고 하지?"
"멀리 사니까 그런가 보지. 사기를 못 치잖아. 아니면 보내주기 귀찮아서 거짓말 한 걸 수도."
정식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과 개인 사이의 중고 거래, 게다가 해외 구매이다. 살면서 사기를 당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보이스 피싱이나 문자메시지로 날아오는 피싱 링크 같은 깜빡 속기 쉬운 사기들. ‘그걸 왜 속아!’ 생각하겠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내게도 큰일 날뻔한 적이 있긴 하다.
대학생 때 해외여행을 준비하며 해외 송금 신청을 위해 은행 웹사이트에 접속했는데 메인 화면에보안카드의 번호를 모조리 입력하라는 창이 떴다. 당연히 의심스러운 정황이었으나 얼마나 멍청했던지 나는 1번부터 30번까지 4자리 수를 모조리 입력하고 혹시나 잘못 입력했을까 봐 검토까지 하고 당당하게 제출 버튼까지 누르고야 말았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