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찾아서>
독일 포츠담에는 상수씨 궁전이 있다. 궁전을 품고 있는 공원은 상수씨 공원(san souci park)으로 18~19세기 유럽 조경을 품고 있다. 공원을 걸으면 근심 걱정이 저절로 사라질 것 같은 크기와 웅장함을 자랑한다. 상수씨. 처음 듣는 순간부터 내 마음에 콕 박혀버린 단어다.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내게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해보였다. 마치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상수씨, 릴랙스.”
“상수...씨?”
“불어로 걱정 없다는 뜻이야. san souci. 독일에 상수씨라는 공원이 있어.”
상수씨.
걱정 없는 사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이름이었다. 불안과 걱정으로 흥분한 나를 가라앉히는 한 마디. 한국에 ‘상수’라는 이름이 있어서 미스터 상수를 한국어로 하면 상수씨가 된다는 설명에 요한은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아, 상수씨는.”
요한의 한마디는 내 삶의 주문처럼 남았다. 초조하고 불안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상수씨, 걱정하지 말자’를 중얼거리곤 한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이유 없는 불안,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불안을 바라보며 ‘상수씨’를 찾는다.
시골 생활에서는 상수씨가 필요한 일이 많다. 첫 해 겨울을 맞이하고 보일러가 고장 난 일이 있었다. 샤워를 하다가 뜨거운 물이 뚝 끊기고 말았다. 온몸에 거품칠인데 샤워기에서 찬물이 쏟아졌다.
‘앗 차가워’
집주인에게 전화하고, 보일러 회사에 전화했다가, 초조해하며 LPG 가스 충전 기사까지 불렀다가 그저 기름보일러에 기름이 떨어졌을 뿐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상수씨가 떠올라 그만 웃고 말았다.
며칠 전 나타샤에게 연락이 왔다. 나타샤는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 자카르타로 상경해서 마케팅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실제로 나보다 어리기도 하지만, 마치 내 여동생 같아서 잘 사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다음 달에 한국에 가게 되었어! 우리 만나자.”
“사실 나 시골로 이사왔어.”
“어디? 서울에서 멀어?”
어디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인도네시아로 치면 자카르타에서 반둥과 같은 거리라고 설명했다. 나는 걱정 근심 없이 살고 싶어서 시골로 이사 왔다고 털어놨다.
“san souci ici.”(여기서는 걱정이 없어)
나타샤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바다 여행 에피소드를 또 꺼낸다.
“그때 네 표정은 정말이지...”
“오토바이 뒤에 대롱대롱 매달린 건 또 어떻고.”
(결국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공항까지 내달렸다.)
‘쿵, 쿵, 쿵’
다행히 우리를 구하러 온 버스 운전기사가 두드리는 소리였다. 우리가 탄 버스는 꽝이 맞았다. 한참 뒤 도착한 구세주 버스는 새빨간 고속버스로 내부 조명부터 밝았고, 좌석 간격도 넓어 편하게 발을 뻗을 수 있었다. 게다가 가죽 시트였다. 나와 나타샤 그리고 요한은 바다 마을에 무사히 도착했다. 새벽 5시. 모두가 잠든 시각 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운 좋게 인력거를 두 대 잡아서 요한이 예약해 둔 숙소로 향했고, 편하게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새벽 6시, 바다는 볼품없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고, 바다는 우중충했다. 모래사장마저 빛을 발하지 못해 우울해 보였다. 흐린 바다에, 잠도 못 잤고, 수상 스포츠는 이미 물 건너갔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바다에 도착했다.’ 그게 중요했다. 역경을 이겨내고 바다에 도착했다는 사실. 함께 거친 파도를 바라보며 고장 난 버스와 불안 따위를 뒤로하고 한껏 웃고 있다는 사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하늘과 바다뿐만 아니라 우리 얼굴도 잿빛이다. 그렇지만, 아주 환하게 웃고 있다.
아침으로 팬케이크를 먹고 8시 차를 타고 돌아왔다. 바다를 보러 떠난 여행이었는지, 내 불안을 떨치기 위한 여행이었는지 뜻밖의 행운을 만난 인도네시아 바다 여행에서 나는 상수씨를 알게 되었고 무사히 서울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불안은 여전히 내 습관이다. 다른 점이 생겼다면 내게 상수씨가 있다. 중얼거릴 수 있는 이름이 생겼다.
“상수씨, 릴랙스.”
언젠가 이름만 들어도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만 같은 공원에 직접 가고 싶어졌다. 공원 입구에 발을 들이는 순간 요한, 나타샤와 함께했던 그날의 잿빛 바다가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