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찾아서>
땅 깊숙한 곳에서 파낸 흙은 갓 구운 쿠키보다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양 손바닥에 느껴지는 따스한 감촉에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와 마음을 가라앉히려 맨손 가득 퍼 올린 작은 흙무덤에 코를 박듯이 고개를 숙이고 더 깊이 흙 내음을 맡는다. 인간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나는 드디어 집에 왔다.
마른 건초 냄새, 아몬드의 고소한 향, 베리류의 과일향...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향미의 바퀴(flavour wheel)’에 담기지 않은 다양한 냄새가 시골에는 존재한다. 알싸한 마늘향, 꼬-소한 깨 터는 냄새, 겨울철 곤포 사일리지의 녹진한 냄새. 시골에 살면 후각이 발달하는데 갓 수확한 빨간 고추 냄새와 햇볕에 바짝 말린 검붉은 고추 냄새의 차이를 알 수 있다면 진짜 시골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볼 수 있다.
도시에 살 때 내 삶은 회색에 가까웠다. 매일 출퇴근하는 정해진 루틴 속에 내가 맡는 냄새라곤 타인의 땀 냄새나 도심의 하수구 냄새 따위가 전부였고, 때때로 살기 위해 마시는 커피 향에 위로받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기계로 ‘빠르게’ 내려 향미가 날아간 검은 음료일 뿐이었다. 이곳에서는 코끝을 간질이는 새순 냄새로 봄을, 달콤한 아카시아 향으로 늦여름을, 낙엽 냄새로 초가을을, 차가운 공기 중 미세하게 섞인 탄 냄새로 겨울의 초입을 알아차린다. 냄새의 향연에 감동받은 나는 가족이나 지인이 놀러 오는 날이면 창문을 활짝 열고 논두렁을 달리곤 한다.
‘창문 열고 냄새 좀 맡아봐.’
그들은 이리저리 산발이 되는 머리카락을 붙잡으며 단호하게 창문을 닫아버린다. 특히 농사철에 풍기는 코를 찌르는 비료 냄새에 인상을 쓰며 창문을 닫으라고 성화다. 나의 의도를 몰라줘 섭섭하지만, 물론 나라고 처음부터 이곳에 푹 빠졌던 건 아니니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내 첫 자취방은 불법 건축물이었다. 차고지 건물 위쪽으로 2층을 새로 쌓아 양철지붕을 씌운 단칸방은 한여름에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양 볼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후끈해졌다. 집주인 할아버지 할머니는 약국을 운영하는 동네 토박이로 사거리 코너에서 몇 십 년 동안 약국을 운영하면서 교회 장로까지 도맡는 분들이셨다. 건물을 2층으로 증축하고 난 뒤 첫 세입자로 내가 채택되었다. 조금 더 그럴듯한 집을 구하고 싶었지만, 사글세라도 몸을 누일 공간을 구했다는 사실에 안도할 정도로 시골 마을에서는 월세방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집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들어가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날로 주인집에서 운영하는 약국 한쪽 구석에 있는 낮은 의자에 앉아 임대차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주인집 할머니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분이셨다. 무릎도 좋지 않아 짧은 거리마저 택시를 타고 이동하셔야 했는데, 하필 그날따라 사거리에 매번 서 있던 택시가 없었다.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자취방까지 걸어가야 했다. 모르는 할머니의 손을 어색하게 부축하며 입을 꾹 닫고 가는 길은 유독 멀었다. 혼자 걸으면 5분도 안 걸릴 거리를 20분이나 걸려 도착했고, 할머니는 냉장고부터 화장실 안 세탁기까지 손바닥만 한 집을 돌며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그날부터 나는 요가원 문을 닫고 퇴근하는 길에 주인집에 들러 냄비, 앉은뱅이 식탁, 깻잎 모종, 접시 등을 받아왔다. 플라스틱 통에 한가득 들어 있던 여린 깻잎의 스파이시한 향이 퇴근길 길동무였다.
뚜렷한 주소지가 생긴 이후에야 전입 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새 주소가 적힌 신분증을 들고 면사무소를 나서던 6월 하늘이 아직도 선명하다. 논밭이 푸르른 6월에 귀촌한 나는 시골 풍경에 푹 빠져 더운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버려진 빈집 사이로 보이는 노을에 감탄하고, 살랑이는 논 사이로 숨어든 고양이 실루엣에 웃음을 터뜨렸다. 해 질 녘 유독 아름다운 어느 공터 풍경에 반한 덕에 종종 찾는 나만의 장소도 생겼다. 하루는 근처에서 밭을 갈던 이장님과 마주쳐 인사를 나눴고, 동네에서는 서로서로 다 알고 있어야 한다며 기어코 내 핸드폰 번호를 받아 가셨다. 그날부터 마을에 행사가 있거나, 폭우 혹은 폭염 예보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주의 문자가 날아왔다. 이곳에서 친하게 지내는 이 하나 없지만, 외롭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시골 생활과 다르게 요가원은 난항을 겪었다. 초반에 쏟아지던 문의가 무색할 정도였다. 시골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내내 바빴다. 농사일이 한참이던 시기 문을 연 요가원을 찾는 사람들은 그 지역 공무원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이들뿐이었다. 수업은 하루에 한 번 뿐이었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나와 햇살 차지였다. 팔자 좋게 퍼져있는 논두렁 근처 고양이처럼 나는 낮에는 요가원에 틀어박혀 책을 읽다가, 힘들면 대자로 누워있다가, 지루하면 햇살을 쪼이며 바깥 구경을 했다. 여느 날처럼 책상을 펼쳐 놓고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는데 농사를 짓는 어머니를 모시고 남매가 함께 수업을 듣겠다고 찾아왔다.
“저희 3명만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원하는 시간대에 맞춰서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한 명도 아니라 세 명이 함께 온다니, 내게는 귀인이었다.
오로지 3명이 듣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그 시간을 고대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남매를 목 빠져라 기다리며 늦은 시간까지 요가원을 지켰다. 하루는 따님 혼자 문을 열고 들어오길래 의아해 여쭤봤다.
“왜 혼자 오세요?”
“고라니가 고추밭을 엉망으로 만들어서요. 엄마랑 동생은 밭 정리하느라 저 혼자 왔어요.”
곧 있으면 수확인데 고추밭을 마구 밟고 다닌 고라니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 딸 혼자만 수업을 들으러 왔단다.
시골 생활은 실로 다이내믹하다. 가로등 없는 이웃 동네에 출강이라도 다녀오는 날이면 고라니와 마주치곤 한다. 도로 한복판에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고라니에게 질려 얼어붙은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젠가 차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고라니에 깜짝 놀라 밤시간에 수업을 그만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하나의 감각이 떨어지면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다더니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풀 스치는 소리에 속도를 늦추고, 빗소리 사이로 다른 냄새가 섞이면 숨을 고르는 식이었다. 도시에서는 머리로 판단하던 일들을 이곳에서는 몸이 대신했다. 이 길을 가도 되는지, 오늘은 잠시 멈춰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틀린 선택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동네 문화센터에서 ‘영어 원서 읽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린아이 손가락 마디 하나보다 얇은 <시골쥐와 도시쥐>를 두 달 동안 읽으면서 풍족하지만 불안한 도시 생활보다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시골 생활이 낫다는 동서고금 막론한 철학적 교훈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시골에서 똑같이 원서를 읽고 있을 같은 또래 친구들을 떠올렸다. 피자도, 햄버거도 못 먹고 얼마나 심심할까. 이제는 생각한다. 오히려 모든 감각이 마비된 채 휘몰아치는 나의 삶을 가여워하지 않았을까.
‘비 올 때는 흙냄새가 더 진해지고, 마을에서 깨를 털면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고, 밤에는 반짝거리는 별로 가득한 하늘을’ 도시 아이들은 모르겠지?
이곳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던 템포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통통 튀며 내 삶을 다이내믹하게 연주한다. 마치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찾게 된 기분이 든다. 내 신체의 일부였지만, 언제부턴가 채도를 잃고 아예 떨어져 나갔던 조각이 자연스럽게 빈자리를 채웠다. 회색빛 세계를 원하는 색으로 자유롭게 채워 넣는 사람이 되었다. 시골 사람이 된 나는 이제 계절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