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요가원 문 닫습니다

raison d'être

by 밤 비행이 좋아


요가 학원을 닫았다. 하나둘 천천히 채울 때는 몰랐는데 공간을 비우려니 짐이 어찌나 많던지 버리고, 나누고, 또 버려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 장사가 안되면 접어야지.’


살면서 크고 작은 좌절을 경험해봤지만, 사업이 망해 보기는 처음이라 혼란스러웠다. 이게 진짜 망한 게 맞는지, 혹시 내가 먼저 포기해 버린 건지, 만약 망한 게 맞다면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귀촌해서 차린 요가원은 내게 ‘삶의 선언’과 같았다.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나만의 꿈을 찾아 살아보자고 스스로 다짐한 삶을 이행하는 것이었다. 요가원 문을 닫았다는 건, 내 선택이 틀렸고, 내 삶의 방식은 무너졌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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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남은 수강생은 3명이었다. 요가 수업만으로 먹고살기 막막해서 번역이나 기고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 시작했고 수강생 대비 내가 열 수 있는 수업 시간은 딱 하나뿐이었다. 이 시골 마을에 요가 수업이라도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요가 러버 3명이 모여 매주 수요일 오후 4시에 비탈길 요가원에서 아쉬탕가 수련을 했다. 나는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앞에 서서 아사나를 알려주고, 자세를 교정해 줬지만, 그 시간이 진짜 필요한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의문을 품고 자책하는 내게 존재 이유와 삶의 방향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어쩌면 시골 마을에 요가학원은 필수 요소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비탈길의 작은 요가원에서 나는 오롯이 2년을 보냈다. 귀촌한 해 겨울, 코로나가 잠잠해지던 시기에 문을 열었고, 무난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다음 해 겨울을 겨우 넘기고 재계약을 포기하게 되었다. 월세 계약 시기가 다가오자 주인집 할아버지는 가게에 자주 찾아오셨다. 가게를 빼겠다고 말하자 흐릿하던 눈빛이 돌연 날카로워졌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원상복구 먼저 하고.”


‘원상복구’

“계약 끝나고 나가면서 뭐 옮기거나 고장 났으면 제대로 돌려놔야 하니까, 한 줄만 적자.”

집주인 할아버지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 특약 사항을 적는 네모 칸에 자필로 원상복구 관련 내용을 저기를 바랐다.


‘계약 만료 시, 재계약하지 않을 경우 원상복구 하기’

그때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의 공간을 빌려 쓰다가 나가는 것이니 자취방에서 벽에 함부로 구멍을 뚫어선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상가의 원상복구는 차원이 달랐다. 아니 범위가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원상복구 하자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니 주인집 할아버지 할머니는 처음 들어왔을 때 그대로 복구하지 않으면 모두 돈으로 변상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안에는 외부 화장실 리모델링까지 포함이었다.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계약을 확정한 뒤 하고 주인집 거실에 작은 상을 펼쳐놓고 사인을 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이건 너무 심하신 것 같아요. 사실 벽, 조명 다 새롭게 깔고 들어온 건데, 이걸 모조리 원상복구 하시라니까...”
“당연하지, 계약서에 썼잖아. 밖에 변기도 돌라놔라.”
“네? 전에는 오랫동안 쓰지도 않아서 더러웠던 재래식이었잖아요.”
“그니까 밖에 저 세면대 대신에 옛날 거 갖다 놓고, 변기도 다!”


주인집 할아버지, 할머니는 변화된 공간을 보고 환하게 웃던 얼굴은 사라지고 잔뜩 굳은 얼굴로 거칠게 언성을 높였고,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새로 임차인이 들어오더라도 깨끗한 공간이 더 좋을 텐데...


“그건 들어올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저도 들어올 때 제가 다 철거했잖아요. 그럼 그 비용은요.”
“아이, 그건 모르고. 다 뜯어놔. 아님 전기랑 벽만 그대로 두던가. 아 저 바닥 수평도 맞추고.”


돌이켜보면 벽에 붙어 있던 쇠 파이프와 간판을 철거하던 날, 고물상에 팔아서 돈이 될 만 한 것들을 싸그리 모아가던 주인집 할아버지였다. 새 거가 더 좋다고 주장해 봤자 통할리가 없었다. 막막했다.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망망대해에 나 홀로 있는 기분이 어떤 건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살고 있구나.’

연고 없는 곳에 내려와 대단하다는 시선을 받을 때마다 뭐 이런 걸로 칭찬을 다 받나 우쭐했지만, 도움을 청할 이 하나 없다는 현실에 서글퍼졌다.


당시 주인집 아들 부부도 계약하는 자리에 있었다. 내 편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말이 통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주변에 물어, 물어 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의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오갔고 결국 보증금을 포기하면 그냥 나가도 좋다는 확답을 받았다. 모든 짐을 빼고 열쇠를 반납하던 날 밤,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싸우지 않은 쪽을 택해 비겁한 인간이 되어버린 건지,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기 보호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미 입술은 부르트고, 얼굴 전체가 염증으로 간지러워 밤중에 잠을 설칠 정도였으니 나는 나를 보호해야 했다. 어쩌면 비겁하게 느껴지겠지만, 버티는 것보다 무너지는 쪽이 덜 위험할 때도 있다.



“나는 실패한 걸까,
아니면 나와 맞지 않는 일을 정직하게 끝낸 걸까.”



우리는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실패를 너무 쉽게 단정하곤 한다. 하지만 모든 끝이 실패는 아니다.


붉은 염증이 얼굴 전체를 뒤덮었고, 간지러워 잠결에 긁었는지 다음날 얼굴에 피딱지가 맺혀 있었다. 대형 마트도 차 타고 1시간은 나가야 하는 처지에 피부과는 사치였지만, 이 상태로 방치할 수 없었다.


“피부염 같은데요.”
“원인이 뭐예요? 알레르기인가요?”
“글쎄요.”
"네? 아니, 뭘 알려주셔야 고치죠."


'전문가가 원인을 모르면 어쩌자는 거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불퉁한 표정으로 딴지를 걸려다가 괜히 엄한 데 승질을 부리는 것 같아 그만뒀다. 연고를 받아 나오면서 한숨이 깊게 새어 나왔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다음 날 밤, 알아볼 사람도 없는데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가게 앞을 다시 찾았다. 사실 나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못 했다. 그래도 정든 공간이었는데 마무리는 허무했다. 모든 게 빠져나간 공간은 볼품없었다. 해 지면 인적이 끊기는 거리에서도 노란 불빛이 ‘나 여기 있어요’ 존재를 알리던 공간은 사라졌고, 나의 첫 사업도 막을 내렸다.


“저는 여기에 요가원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마지막 수업까지 함께한 수강생이 등록하던 날 이렇게 늦게 알게 되어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홍보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방법이 틀렸던 모양이다. 우리는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함께 식사했다. 마을에서 행사 있으면 가는 식육식당에 모여 소고기를 구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요가 수업을 하실 생각이 없냐고 묻는 그녀에게 한동안 홀로 수련할 생각이라고 둘러댔다. 사실은 다음 계획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마음도, 체력도 바닥을 쳤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보다 끝냈을 때 더 자주 떠오르는 질문이다.

3년 전, 퇴사를 하면서 결심했던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판단 기준은 사라졌다.


‘오늘 뭐 하지.’

해야 할 일이 분명했지만, 삶 전체가 잠시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번역 마감도 코앞이고, 잡지사 청탁도 마무리하면 되고... 그런데도 허전한 기분이 들어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이고, 식탁에 앉았다. 원두를 갈자 좁은 집에 구수한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후각이 반응하자 눈이 뜨인다. 습관처럼 노트북을 열고 집중하려고 애쓴다. 왜 이리 허전한지 모르겠다.


일부러 그 길을 피해 다녔다. 서너 달 뒤 나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고, 종종 궁금했다.

‘내 요가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세입자를 만났을까.’

몇 달 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른 간판을 달고 동네 카페가 되었다. 내가 실패한 자리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들어온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나 혼자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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