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을 보내는 방식
oo 대표님, 내일 찾아뵈려고 하는데요,
저 망했거든요.
당연히 속으로만 저렇게 말했다. 내가 망한 게 저들의 탓은 아니니 퉁명스럽게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내 공간은 사라졌기 때문에 만나려면 내가 찾아뵙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좋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상대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해졌고, 만남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의아할 것 없다. 귀촌한 청년이 만든 요가원에서 뭔가를 촬영하고 싶었나 보군 지레짐작할 뿐이다.
나름 돈독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지역센터는 헤어진 전 남친이 되었다.
막상 알고 보면 안 좋은 점이 훨씬 많았어. 요가원 만들고 한 번도 안 와보더니. 어디 홍보 방송 내보낼 때만 나를 찾고. 어려운 행정 업무나 세무 서류 물어봐도 답도 안 해주고. 집주인이랑 마찰이 있을 때도 바쁜 척하고. 자기 필요할 때는 득달같이 전화하더니.
안 좋게 헤어진 X는 세상 나쁜 놈이다. 나는 심술궂은 마녀처럼 구시렁구시렁 엄마한테 전화해서 굳이 흉을 늘어놓는다.
“아니, 엄마. 이게 말이 되냐고!”
스스로 망했으면서 괜히 주체가 따로 있는 듯 원망을 뱉어냈다.
그래도 한 번 망하고 나니까 사람이 참 관대해진다. 그동안 있었던 일련의 일들이 한 편의 에피소드가 되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100부작 시트콤을 틀어놓은 기분이다.
나는 거리의 상점들이 문을 닫고 요가원의 푸른 간판만이 반짝거리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경운기 엔진소리 한 점 없는 고요한 거리에 나 홀로 시간을 여행하는 자가 되어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동경하는 시대로 타임슬립 한다고 상상했다. 그렇게 밤의 요가원을 지키다 보면 정말로 시트콤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덜컹덜컹’
어두운 거리를 배경으로 요가에 관심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아저씨가 유리문 손잡이를 벌컥 잡아당기고 얼굴을 쑥 내밀었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오?”
“운동하는 곳이에요. 스트레칭하고 막 그런 거요.”
요가라고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 늘 운동하는 곳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게다가 관심 없어 보이는 아저씨라 할지라도 저분의 아내, 딸, 며느리, 손녀 누구든 내 고객이 될 수 있으니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늘 친절해야 했다.
“뭐 하는 곳이랏꼬?”
“운동이요. 막 다리도 찢
“아니 지금 뭐 하는가?”
“네? 여기는 그
“문 연 거냐고오?”
미처 살펴보지 못한 아저씨의 눈동자는 초점이 풀려있었다. 얼굴도 붉었고, 손잡이를 지지대 삼아 좌우로 흔들리는 폼이 한 잔 걸치고 귀가하다가 불 켜진 요가원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어르신, 여기 문 닫았으니 가셔요.”
단호하게 힘을 줘 문을 닫고 안에서 잠가버렸다. 강한 힘에 밀려 비틀거리는 꼴이 우스웠지만 꾹 참고 그대로 탈의실로 쏙 숨었다. 안에 사람이 보이면 앞에서 계속 기다릴 것 같았다.
이후로 낮이든 밤이든 혼자 있을 때는 안에서 문을 꼭 잠가놓았지만,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다짜고짜 유리문을 잡아당겨 깜짝 놀란 게 한두 번 놀란 게 아니다. 밝은 대낮, 안에서 수업 중인데도 하도 문을 열어젖혀 문을 잠그고,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피하려고 커튼도 2중으로 달아야 했다. 파종과 수확, 반복되는 삶 속에서 생소한 존재가 등장하면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요가원을 열기 전, 나는 시골 장터에서 은색 돗자리 깔고 요가 수업을 했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잔디밭에서 목욕탕 매트를 깔고 무료 수업도 했다. 모두가 좋아했다. 하지만 잠시 머무는 여행자에서 지역민으로 위치가 바뀌자 동네 사람들은 나를 배척했다.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도 들고, 그들이 미웠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어차피 끝난 일 붙잡고 징징거린다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지역 최초의 요가원으로써 본보기를 보였어야 했는데 괜스레 민망하다. 망한 요가원의 대표님이 되어버리다니.
이참에 n번째 퇴사 시기에 계획했던 요가 여행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자유로운 요기니가 되어 그때처럼, 아무 걱정 없이 떠나고 싶었다.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요가 수련을 하고,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요기, 요기니와 어울린다면 요즘 들어 흔들리는 물구나무도 단단해질 것만 같았다.
정작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나는 망설였다.
비행기 값이 원래 이렇게 비쌌나?
지금 가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까?
요가원이 망했는데 떠나도 괜찮을까?
못 떠났다.
‘난 바쁘니까’
‘일단 돈을 벌어야지’
화자도 없는 핑곗거리를 늘어놓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요가를 멀리했다.
“프리랜서의 특권은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점이죠.
게다가 요가 수련은요, 이 돌돌 말린 매트 한 장만 있으면 그곳이 바로 수련하는 곳이에요.”
몇 달 전, 청년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 주제에 나는 저점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어차피 남들은 내가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 모르니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어느 날, 발리에서 요가 자격증을 따고 싶다며 한 지인이 연락을 해왔다. 내가 발리 여행을 준비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좀 쉴 겸. 가서 요가 수업도 듣고, 단기간에 자격증도 딸 수 있다며. 추천 좀 해줄래?”
그때 나는 어느 면사무소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수업 중이었다. 면사무소는 주민회의 장소였다가, 도시락 까먹는 식당이었다가, 비품 창고가 되기도 했다. 더러운 시멘트 바닥일지라도 등산할 때 쓰는 매트를 펴고 열심히 따라 하시는 분들을 보며 애써 위안 삼지만, 넓고 깨끗한 내 마룻바닥, 따뜻한 전기장판, 은은한 조명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머나’
압정이다. 밟았으면 큰일 날뻔했다. 신발을 신고 돌아다녔으니 망정이지, 급한 마음에 맨발로 걸어갔었다면 발바닥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그가 보낸 카카오톡의 ‘1’은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내 처지가 서글프다. 미리 보기로 슬쩍 훔쳐보고는 읽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연락했다.
‘00이 좋다더라. 나는 XX 알아보긴 했다. 근데 정확한 건 아니니까 니가 잘 알아봐라.’
나 참 찌질하다.
그는 발리로 떠났고, 종종 요가하는 사진을 피드에 올렸다. 그때마다 나는 미처 못 본 척 황급히 스크롤을 올려버렸다. 몇 주 뒤, 자격증을 땄다며 요기, 요기니들 사이에 섞여 수료증을 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올라왔다.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의 환한 미소를 한참 바라봤다.
내게는 한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똑같은 아침, 시멘트 바닥과 수업, 방구석 키보드. 인스타그램에는 리조트에서 요가하고, 동남아 휴양지로 떠나고,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는 인친들로 가득하다. 매일 새로운 일이 벌어질 순 없다. 내 삶이 특별해 보이지 않아도 그저 머무르는 시간이 약이 되기도 한다.
공백을 견뎌야 한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이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