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자취에는 많은 발자국들이 뒤엉켜져 있다. 몇 십년을 같이 걸어온 발자국이 있는가 하며 잠시 시끄럽게 머물렀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발자국들도 존재한다.
그 발자국들은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회사 친구들이라는 이름들로 불려진다. 환경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며 비슷한 감정들을 공유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짙게 겹쳐졌던 공통 분모가 흐릿하게 옅어 질 무렵이면 서로의 즐거움과 위로가 되어주던 우리 사이가 어느새 어딘가 불편하고 어색한 사이로 변모해 있기도 하다. 왜 그런 걸까? 변한 건 너일까 나일까?
애석하게도 변한 건 우리 둘 다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하는 건 우리의 신체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그리고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성격을 형성해 냈다. 연약하던 가치가 굳건 해지기도 하고 굳건하던 가치가 새로운 가치로 교체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서로의 이름으로 상대를 부르지만 정작 우리가 사귀었던,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은 이제 그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때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이라는 말 아래 너무나도 다른 생각들과 느낌들이 한 공간에서 상충하기도 한다. 물론 그 생각과 느낌들 중에 옳은 답은 없다. 그저 각자만의 답안지를 내비칠 뿐이다.
하지만 생각들이 그저 '다름'에 그치지 않을 때 우리는 결국 상처를 받는다. 특히 두렵고 불안한 감정의 뿌리에서 피어난 생각들이 '강요'가 될 때 그 말은 상대에게 휘두르는 위험한 칼이 된다.
맹목적이기도 한 그 말들 속에는 다른 조건들, 예외 사항들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말들은 진정한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을 확률이 크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그런 말들을 들을 때면 아무리 평소에 굳건한 가치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아가 크게 한번 흔들리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특히 그 틀에서 벗어난 외부인으로서 소외 받는 듯한 기분은 씻어낼 수가 없다.
강요가 되지 않았더라도 생각들이 만들어낸 칼들은 많다. 시기와 질투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날선 말이 되었든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계산적인 말들 되었든 우리들은 무심코 휘두르는 칼질에 많이 다치기도 한다.
하지만 몇 년을 걸쳐 쌓아 올린 추억과 정의 무게에 우리는 서로 모른 척 눈을 감아 버릴 때가 많다.
인간관계란 어떤 걸까. 요즘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내 사람이라고 온몸으로 끌어 앉았던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고 반대로 잠시 스쳐지나 갈 것 같던 사람들이 내 옆에 다가와 있기도 하다. 인연이란 참 묘하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변화 속에서 절대적인 질서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저 확실한 것은 우리는 남을 바꿀 의무도, 권리도, 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이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강요할 수 없고 그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그저 적절한 거리에서 나를 보호하며 응원하고 사랑해주는 방법을 배워보고자 한다.
인터넷에서 그런 말을 봤다. 인간관계를 칼처럼 생각하라고. 우리가 방심을 하거나 신경 쓰지 못하면 손이 베일 수 있지만 조심해서 사용하면 유용하게 많이 쓸 수 있는 도구라고.
물론 칼날이 무디어져 제 기능을 못하는 칼들은 버려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는 관계들은 조심스레 잘 다뤄보고자 한다.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니 밴드 하나 붙이고 언젠가 능숙하게 칼질을 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