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거름망

by 스텔라

갈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 저리 휘어지는 연약한 갈대.

나는 꼿꼿이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이끌리는 걸까.

어딘 가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두 눈을 불키고 손에 든 문제에 맞는 답을 찾으려 헤매고 다녔다.

야밤의 도시를 정신 없이 어지럽히는 네온싸인들처럼 모든 사람들은, TV는, 인터넷은, 책은 전부 자신이 답이라고 외쳤다.


불안한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던 문제는 쉴세없이 쏟아지는 수많은 답들을 빨아들이며 커져갔다.

결국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는 더욱 커졌으며 유일하게 알아낸 답은 내가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문제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들이 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모를 때 죽음을 떠올리면 그것을 알아낼 수 있다고. 마치 잡다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걸러 내주는 거름망처럼 우리 머릿속을 떠도는 많은 생각들과 선택들을 정리해줄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처음으로 그 죽음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제대로된 가이드 하나 없이 처음 도구를 사용하려 하니 어떻게 다뤄야 할지 낯설기만 했다.

너무 멀어 나태해 지지 않게, 하지만 너무 가까워 현실감이 없어지지 않게 나는 1년이라는 기간을 정해서 생각들을 걸려 보았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것들이 남겨지고 작은 비중을 차지하던 것들이 거름망을 통해 흘러 내려갔다. 그리고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의 답들도 같이 걸려져 나왔다.

1차 걸러진 내용물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며 나는 내가 아끼며 들고 다니던 저울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정말 어리석은 존재다.

우리들은 서로 복잡한 문제들을 껴안고 그에 맞는 답을 찾아 살아가지만 유일무이하게 답이 있는 문제,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만은 망각한채 살아가니 말이다.


나는 1년이라는 기간을 가상으로 설정했지만 사실 그게 1년이 될지 2주후가 될지 2틀 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또한 사실이며 답이다.


뭐가 그리 두려웠을까. 누구에게 보여주려 했던 걸까.

남도 아닌 내 인생에 끼어든 사람들이, 조언들이, 시선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것들에 온 몸을 내맡긴 채 휩쓸리고 있던 가냘픈 내가 보였다.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소리쳐 대던 것들이, 온 힘들 다해 지키려 했던 것들이, 남들 따라 줄을 서며 위안을 삼고 했던 것들이 거름망 위에 황망하게 남겨져 있다.


나는 고장난 저울을 버리고 새로운 저울을 장만했다. 나의 마음에 의해 무게가 측정이 되는 저울이다. 앞으로 다시는 내 저울이 녹슬고 고장나지 않기를. 매일 닦아주며 관리하겠노라 다짐도 해본다.


후회없는 삶을 살기 위해선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미련도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이 충실히 현재를 살았을 때, 죽음이 와도 우리는 남길 미련 따위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온전하게 현재에 집중해 살아 갈 수 있도록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들만 남겨두고 살아가야 한다. 그 무게를 가장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건 '내 마음'이라는 저울인 것 같다. 혹시나 나처럼 저울의 고장이 의심될 때는 죽음이라는 도구를 적극 이용해 보기를 바란다.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발견해 낼 수 있다.


고대 로마에 이런 격언이 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2021, 새해가 돌아왔다. '시작'이라는 단어는 달콤해서 많은 도전과 선택을 불러오지만 선택지의 늪에 빠져 절망하지 않도록 올해는 '끝'을 바라보며 한해를 시작하고 싶다. 그렇게 매일 죽음을 기억하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바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