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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일 큐레이터 May 12. 2017

브랜드 히스토리 (1) 토리 버치

주부였던 토리버치는 어떻게 연매출 10억 달러의 패션 제국을 건설했을까

우리에게도 친숙한 미국 브랜드 토리버치 (Tory Burch).

2004년 런칭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고속 성장한 이 브랜드는 동명의 여성 사업가의 손에서 태어났습니다.


1966년 출생한 토리 버치 여사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디자인이나 경영 수업을 들어본 적도 없고 3명의 아들과 3명의 의붓딸을 키우며 살던 전업주부에서

연매출 10억 달러, 2016년 기준 기업가치 35억 달러 (한화 약 3.9조원!)을 기록한 패션 제국을 일구어내고 시계, 도서, 향수, 홈 제품 등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을 내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예요.


실제로 그녀가 사용한 마케팅, 홍보 기술들은 기존의 패션기업들이 사용한 것과는 다른 독특한 전략들이 많아 마케팅/브랜딩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나 사업하시는 분들은 참고해도 좋을 것 같아요. 틀에 박히지 않은 디자인과 사업방식을 고수하는 흥미진진한 이 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토리버치는 미국 펜실베니아 잘 나가는 상류층 가문의 고명딸 출신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유하고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유년시절을 보냈고, 목가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어요.  

아버지 버디 로빈슨은 종이컵 제조회사와 상당한 주식을 상속받은 상속남인데 당대 미국 최고 여배우인 그레이스 켈리, 조안 베넷 등과 데이트를 했었고, 배우 출신인 어머니 역시 결혼 전 할리우드 미남배우인 말론 브란도, 스티브 맥퀸과 연애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세 명의 남자 형제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높은 자존감을 형성했고,

패셔너블하고 매혹적인 배우 출신 어머니의 스타일 감각을 그대로 물려받으면서  

주변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자면 ‘굳이 꾸미지 않아도 남자라면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외모와 성품’을 지니고 ‘항상 주변에는 토리처럼 되고 싶어 토리의 옷차림과 행동을 따라 하는 여자아이들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화려한 외모와 탁월한 패션감각으로 디자이너로 데뷔하기 전부터 미국 상류사회의 명사/패셔니스타였고 이때 쌓은 인맥이 훗날 자신의 브랜드를 키우는데 큰 몫을 했습니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가족들과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예술과 문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안목을 길렀습니다.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건너와 굵직한 패션회사 (랄프로렌에서 카피라이터, 하퍼스 바자에서 에디터, 베라왕에서 홍보담당)에서 일을 했지만 디자인과 관련된 일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나중에 회고하기로는 이때의 경험이 전부 연결돼 나중에 사업을 하는데 여러가지 면모로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린인(Lean In)'의 저자이자 페이스북 최고 운영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도 페이스북에 입사하기 전 IT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요.

 모든 경력과 경험들은 어떻게든 얽히고설켜 있다는 일명 정글짐 이론.  


본론으로 돌아와서,

한참 활발하게 커리어를 쌓다가 1996년 백만장자인 크리스 버치와 결혼 후 (이때부터 이름이 토리 버치가 됩니다), 3명의 아들과 남편과 전처 사이에 낳은 3명의 의붓딸 총 6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돌아섭니다. 일하던 삶을 사랑했기에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겪었을 때 무척 아쉬웠다고 해요.  

그러나 몇 년 뒤, 자신의 꿈을 좇겠다는 일념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업계획을 세우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무작정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계획은 비싸지 않으면서 좋은 퀄리티의 아름다운 제품들을 디자인하는 것.  

자신의 맨해튼 아파트에서 몇 명의 직원과 함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새벽마다 아시아에 있는 공장들과 연락하며 (6명의 아이들 양육도 병행하는 와중에) 드디어 2004년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하게 됩니다.   


오픈 첫날 몰려든 사교계 명사들과 패션계 거물들로 꽉 들어찬 매장.

그날 가게 안 모든 제품들이 다 품절됐습니다.

그 이후 ‘지금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라며 자신을 초대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면서 미국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그때 한참 유행하던 미드 가십걸의 주인공들이 그녀의 의상을 입고 등장하였고요.

2008년에는  마이클 코어스와 마크 제이콥스를 제치고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가 수여한 올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상까지 수상. 런칭한 지 10년이 조금 넘은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우뚝 서고 전 세계 18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유럽 시장에도 진출해 파리, 밀라노 등 주요 도시에 매장을 오픈하였고요.

 

이쯤 되면, 토리 버치의 어떤 점이 소비자들을 그렇게 열광하게 했나 궁금할 거예요.

이제부터 그녀가 내놓은 히트상품들을 보며 찬찬히 알아봅시다.  

토리버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며 어머니는 그녀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그녀의 뮤즈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해요.  

출처: 토리버치 웹사이트


우리가 너무 잘 알고 한 켤레 정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이 플랫슈즈.

처음 출시된 해에만 30만 켤레를 팔았고 지금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베스트셀러인

이 플랫슈즈의 이름은 리바(Reva) 슈즈인데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기가 살다가 신발로 유명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명언을 남기시기도.  


<출처: toryburch.com>

이게 토리 어머니 리바 여사의 처녀시절 사진인데 지금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하시며 딸의 뉴욕 컬렉션에 줄곧 참석하곤 하시죠.  

아무튼 이전까지 플랫슈즈라 하면 아무 장식이 없거나 리본 하나 정도 다는 심플한 디자인이 전부였는데 토리버치는 과감하게 큼직한 금색 로고를 박아 럭셔리한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신발의 뒷창은 고무줄로 처리하여 편안함을 강조하였고요.

토리 여사는 편안함이 곧 럭셔리라 생각하며 옷이나 신발을 만들 때 실용성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착용감이 편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그냥 놀러 나갈 때 신기도 좋고 직장여성들에게도 많은 환영을 받았어요. 특히 패리스 힐튼이 색상별로 모두 소유하고 있는 덕후로 유명해요.

  

토리버치 옷의 강점은 ‘입기 쉽고 다양한 분위기에 연출이 가능하다’입니다.

그녀의 또 다른 스테디셀러이자 시그니처 아이템인 튜닉(tunic).  

출처: 토리버치 웹사이트

 

어머니가 유럽 여행 후 잠시 들린 모로코의 벼룩시장에서 사 온 튜닉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이 튜닉은 정장 바지 위에 매치하면 직장에서의 오피스룩으로,

저녁에 하이힐과 매치하면 파티 드레스로 변신,

해변에서는 비키니 위에 걸치는 비치웨어로 손색이 없는 마법 같은 아이템입니다.

실제로 그녀의 블로그에 가면 이 튜닉을 어떻게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는지 가이드도 직접 나오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에 원더걸스 출신 소희와 김연아 선수가 입고 나왔어요.

매해 컬렉션마다 비슷한 실루엣에 비즈 장식, 이국적인 프린트, 깔끔한 디자인 등으로 계속 발전하며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가격대’ 또한 넓은 범위의 소비자들을 아우를 수 있는 토리 버치의 비결인데요.

한국으로 넘어오면 다소 비싸지나 미국 현지 가격은  20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가방, 신발등의 아이템부터 (특히 현지 아웃렛에서는 믿지 못할 가격대로 공수 가능) 150만 원이 넘는 이브닝드레스까지

그 폭이 넓은 편이며 부잣집 사모님들은 부담 없이 한꺼번에 마구마구 지를 수 있고

중산층 워킹맘들도 소화할 수 있는 금액으로 친근한 이미지입니다.

토리버치를 입는 여성들의 연령대도 대학생부터 60대 할머니까지 다양하고요.  

애초에 브랜드를 설립하면서 그녀가 추구한 건 affordable luxury, 즉 소비 가능한 럭셔리.

그녀가 생각하는 럭셔리는 단순히 부와 직결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는 것,

일상 속에서 예술 등의 취미생활을 즐길 줄 아는 것, 주변 사람들을 진실되고 여유 있게 대하는 애티튜드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네요.

  

이쯤 되면 왜 토리버치의 전략이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는지 알겠죠.

그녀가 브랜드를 런칭할 당시에 패션시장엔 품질 제로인 저가 브랜드 아님 터무니없이 비싼 고가 브랜드만 존재하고 그 중간이 거의 부재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퀄리티의 옷과 적당한 가격대를 동시에 제공하는 브랜드가 당시에 없다는 것을 캐치한 후 과감히 가격 거품을 없애고 바쁜 현대 여성들을 위한 편하면서도 다양한 상황에 연출이 가능하며 동시에 스타일리시한 옷을 만들어 낸 것이죠.

<요약: 그녀의 전략 첫 번째,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캐치한다.>  


토리 버치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링법도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요.

토리버치 스타일은 보헤미안 분위기를 강조한 럭셔리 프레피 스타일입니다.

상류사회의 일원인만큼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락 콘서트를 즐겨가고 드넓은 농장에서 말을 타던 자유로운 어린 시절의 기억도 묻어나죠.  

<출처:popsugar.com>

보통 이런 클래식한 블랙 드레스에는 다이아몬드나 진주 목걸이 같은 걸 걸치는 게 정석이지만 토리는 이국적이고 볼드한 목걸이를 매치합니다.  

출처: toryburch.com

실제로 이렇게 프린트 위에 또 다른 프린트를 입는 등의 실험적인 도전정신과 예상치 못한 칼라를 과감하게 믹스 매치하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또한 항상 프랑스나 이탈리아 여성들처럼 액세서리와 작은 디테일에 공을 들인다고 해요.  



패션 대신 미술사를 공부한 게 의류사업을 하는데 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컬렉션에는

미술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옷들이 많이 등장하고

인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여행지, 가족들, 오래된 영화, 미술작품 등에서

영감을 받으며 유행보다는 자신의 직관을 따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금빛 격자무늬도 토리버치 제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상징인데,

출처:toryburch.com  

토리버치의 라이선스 라인인 에스티로더와 협업한 향수, 스위스 장인들과 작업한 시계, 핏빗(Fitbit)과의 콜라보 작업, 그리고 그녀의 매장 인테리어 등에서 이 디테일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그녀의 전략 두 번째, 옷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판다.>

 토리버치는 자신의 브랜드를 패션 브랜드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부릅니다.  

의류 사업할 때는 주로 Retail(소매)과 Wholesale(도매) 두 가지 옵션이 있는데요(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온라인 매장도 추가). 소매는 자신의 매장을 직접 차려서 상품을 파는 것이고 도매는 백화점이나 큰 매장에 자신의 상품을 조금씩 납품하는 형태입니다.

소매는 높은 임대료 부담과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점 등 리스크가 커서 주로 신생 브랜드들은 도매 형식으로 백화점이나 편집샵에 입점해 고객들에게 서서히 이름을 알립니다.  

그러나 토리버치는 자신의 거실 같은 편안한 공간에서 고객들이 쇼핑을 즐길 수 있었음 하는 바람을 고집, 처음부터 자신의 아파트의 인테리어를 닮은 스토어를 뉴욕에 오픈하는데요.  

또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2개 이하의 카테고리로 처음 브랜드를 시작하고 서서히 늘려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전반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며 런칭 첫날 무려 15개 카테고리의 제품들을 선보입니다 (그중에는 액자나 양초 같은 홈 제품들도 있었어요).

지금 미국에서는 보통 상품을 진열하는 역할만 하는 인식이 강하고 온라인 매장이 활성화되면서 점점 소비자가 끊기는 소매업. 그러나 토리버치는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을 옷뿐만 아닌 인테리어에도 반영하여 곳곳에 가족들의 사진을 진열하고 꽃병으로 가득 찬 아늑한 그녀의 공간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합니다.

 

 부유한 젯셋족(jet setter: 개인 전용 제트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상류사회 사람들을 칭하는 단어)이며 어릴 때부터 뚜렷한 취향과 취미생활을 즐겨온 토리버치는 사람들에게도 단순히 옷뿐만이 아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하길 원했습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은 평소 제대로 차려입지 않고 컬렉션 쇼 끝에서만 잠깐 얼굴을 내밀며 그 외에는 작업에 몰두를 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만 입는 경우도 많고요 (대표적인 예가 알렉산더 왕). 그러나 디자이너 외에 CEO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고 줄곧 자신의 광고에도 직접 등장하는 그녀는 늘 자신의 신상 아이템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지게 차려입고 각종 이벤트에 참석하고 고객들과 소통을 하며 자신의 제품을 홍보합니다. 그녀 자신이 뮤즈이자 브랜드를 상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평소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해온 사람들에게 그녀의 옷을 입고 그녀의 향수를 뿌리면 토리버치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환상을 심어줍니다. 토리 여사는 블로그와 인스타 등을 통해 그녀의 일상을 보여주며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그것은 다음 전략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그녀의 전략 세 번째, 적극적인 온라인 마케팅과  SNS 활용>

다양한 여행지를 소개하는 그녀의 블로그.

지금이야 모든 패션 브랜드가 온라인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지만 2000년대 초중반에는 아직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아니던 상황에 그녀는 좀 더 멀리 있는 고객들과도 친밀하게 소통하고 싶다며 웹사이트 디자인 및 관리에 적극적으로 예산 투자를 하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블로그(Tory Daily)도 시작합니다.  

온라인 매장은 지금까지도 아주 활성화돼있고 지금 그녀의 웹사이트의 방문자수는 한 달에 몇 백만 명이 넘어가는데요.

그녀의 블로그에는  그녀가 추천하는 음악, 칵테일 레시피, 아티스트와의 인터뷰, 여행지와 레스토랑, 패션 가이드 등 그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콘텐츠로 차 있습니다.

그녀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게스트와의 인터뷰

 눈 여겨볼만한 점은 블로그에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아티스트, 뮤지션, 사업가들과 인터뷰한 내용들도 포스팅해 콘텐츠를 다채로운 주제로 넓히는데 그때 인터뷰이에게 자신의 신상 아이템들을 입힌 사진도 같이 올립니다.

 그 포스트로 인해 인터뷰이는 자신의 작품/저서/사업 등을 알릴 수 있고 토리버치는 자신의 옷을

홍보할 수 있으니 서로가 윈윈 하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토리버치는 단순히 미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우뚝 서게 됩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스포츠 (승마, 테니스)를 사랑해서 토리 스포츠(Tory Sport)라는 액티브웨어 라인을 재작년에 추가로 론칭했는데 때마침 미국에 불어닥친 애슬레져(Athleisure: Athlete+Leisure) 열풍.

그것을 보고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영리한 여성이란 생각을 했어요.

야광 레깅스나 깊게 파인 스포츠브라처럼 몸매를 대놓고 드러내는 자극적이고 야한 운동복이 유행이었을 때 좀 더 품격 있고 여성스러우며 동시에 기능적인 운동복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나타냈었죠.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노력>         

그녀의 사회적 행보 또한 눈여겨볼만한데요. 사업을 시작할 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무시, 편견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고 자신과 같은 여성 사업가들을 지원하는 토리버치 재단(Tory Burch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 프로그램을 시작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합니다. 여성 CEO를 양성하기 위한 경영/리더십 강의와 워크숍, 네크워킹을 진행하고 사업을 시작할 때 소액으로 대출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현재까지 600명이 넘는 여성 사업가를 배출했습니다. 야망이란 단어가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는 이유로 한때는 그 단어를 쓰는 걸 피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야망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다른 여성들의 꿈을 지원해주는 멋진 여성이지요. 이런 활동은 사업가의 행보치고는 드문 경우라 하더군요. 또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공동 위원장을 맡는 등 사교계의 다양한 모임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오고 있습니다.  


 토리버치는 특유의 로고로 유명한만큼 루이비통만큼이나 짝퉁과의 질긴 전쟁을 선포한 브랜드 중 하나인데요(지금도 잠실역이나 강남역 지하상가 가면 꼭 보인다는). 실제로 법정까지 가서 승소해 1900억 원어치의 돈을 보상받고 저작권 보호에 대한 권익을 주장했습니다.  


 그녀의 연애사는 그녀의 인생만큼이나 드라마틱한데 (밝혀진 것만 해도) 크리스 버치와 결혼 전 이미 부동산 재벌의 아들 윌리엄 맥로와의 짧은 결혼 기록이 있고 크리스 버치와의 이혼 후에는 자전거 영웅 랜스 암스트롱, 미국 최대의 음반 회사인 워너 뮤직 사장 라이어 코헨과의 연애, 그 외의 몇 명의 남자들과  염문설을 뿌리며 돌싱 라이프를 즐기다 재작년 말 루이뷔통, 펜디 등을 소유한 세계 최대의 패션 그룹인 LVMH그룹의 CEO 피에르 이브 루셀과 약혼하며 패션계의 파워 커플로 등극합니다 (이분 또한 훤칠한 미남).  


 이렇게 보면 여태까지 인생이 탄탄대로였던 것 같지만 그녀 역시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요. 처음 창업을 준비할 때에는 경험도 없으면서 남편의 돈으로 사업이나 해보려고 하는 팔자 좋은 여자라는 비아냥도 듣기 일쑤였고 아까 언급한 것처럼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도 많이 받았습니다. 창업 후 브랜드가 성장하던 초기에 갑자기 말려든 크리스 버치와의 이혼소송. 거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크리스 버치는 토리버치의 성공이 다 자신의 돈과 인맥 덕이라며 그녀와 그녀의 회사를 고소하는 등 오랜 기간 동안 법정에서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되고 이 과정이 대중들에게 다 까발려지는 굴욕을 당합니다. 아빠가 엄마를 고소하는 이 어이없는 상황과 대중들의 시선으로부터 당시 어렸던 아이들을 보호하는 부담도 그녀가 다 홀로 짊어졌고요.


그러나 힘든 시기를 묵묵히 견뎌낸 그녀는 현재,

미국에서 손꼽히는 억만장자이자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 73위(2016년 기준).

패션계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그러나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와는 조력자 역할로 아주 친밀한 사이.  


 엄청난 사업적 성공과 높아진 사회적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인생의 우선순위는 가족과 친구들이라는 토리. 인생을 알차게 살 때 무엇에 집중해야 할 줄 아는 점을 생각할 때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들의 노트북이 고장 나면 새벽에 직접 노트북을 들고 애플 매장을 방문하여 수리한다고..

크리스 버치와의 이혼 후에도 그의 3명의 딸들과 여전히 친딸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요.

 성격 또한 패션계에서 흔히 보이는 싸가지 없는 캐릭터가 아닌 겸손한 인성의 소유자라고 합니다.

실제로 직원을 고용할 때도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인성이라고 인터뷰에서도 밝혔고요.  

 3년 전 실제로 만나서 잠깐 이야기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작은 체구임에도 여유 있고 차분한 목소리가 카리스마 있으면서 여성적이어서 인상 깊었어요.  


 성공한 브랜드들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그들의 아이템과 로고, 광고컷 그리고 경영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에 그들만의 고유한 철학과 가치가 담겨있고 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대중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이었어요.

 이번 글을 통해서 평소에 입거나 들어본 브랜드의 역사를 알아보면서 좀 더 친근해지는 기회가 됐음 합니다.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담은 더 좋은 글로 또 찾아뵐게요.  


<참고문헌>

-Vogue, Tory Burch on Her New Sports Line, Finding Love, and Redefining Success

-NY Magazine, What Is It about Tory Burch?

-Fortune, Tory Burch Is Offering Big Money to Women BusinessOwners

-Vanity Fair, An Empire of Her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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