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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 Oct 15. 2024

발리 한 달 살기의 매력

신비의 섬에서 한 달 동안 할 수 있는 것들 

발리에는 왜 한 달 동안 가고 싶었을까. 

발리는 사진으로 접했을 때의 매력보다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구전되어 들은 것에 대한 환상이 더 컸다. 

태국 디톡스 센터에서 지내면서 발리에 다녀온 사람들이 

발리가 좀 더 세련됐고 웰니스에 특화되어 있다는 말에도 관심이 생겼다. 


일단은 큰 계획 없이 요가와 서핑을 경험해보고 싶었고 

그다음에는 정글로 유명한 우붓의 풍경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고 싶었다. 

섬이 많기로 유명한 인도네시아에서(무려 17,508개!) 유독 이 작은 섬이 유명한 이유가 뭔지,  

어떤 매력 때문에 전 세계의 디지털 노마드들이 살아보기 위해 몰려드는 건지, 


그리고 한 달 뒤, 난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은 후 발리를 떠났다. 


그 답은 글의 마무리에 후술 하겠고, 

그동안 방문했던 장소들 위주로 리뷰를 시작하겠다. 

나는 발리에 머무는 한 달 동안 3-4일에 한 번씩 장소를 옮기며 지냈다. 

제주도에 2.7배에 달하는 섬이라 섬 곳곳마다 방문할 곳이 많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서퍼들의 성지, 꾸따 해변이었다. 



1. 꾸따 



발리의 첫 며칠 동안 지내려고 예약한 호스텔에는 비행기 연착으로 밤늦게 도착했다. 

숙소 루프탑에는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한잔씩 하는 유럽인들이 많았다. 

호스텔 공용 공간에는 젖은 수영복들이 걸려있었으며, 

사람들은 다음날 함께 서핑을 갈 동행들을 구하고 있었다.


다음날 꾸따 해변으로 걸어갔다. 

꾸따는 푸켓과 방콕의 카오산의 분위기를 묘하게 섞어 놓은 활기 넘치는 곳이다. 

낭만의 도시인 이곳은 하늘에 연이 많았다.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항이 보였고 수시로 비행기들이 머리 위로 드나들었다.  

활주로로 유려하게 밀려들어오는 비행기의 모습이 마치 서퍼 같다. 


해변가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어떤 현지인 할머님이 오셔서 마사지받을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다. 

현금을 건네고 해변에서 마사지를 받고 낮잠을 잤다.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서핑을 즐겼다. 


발리엔 전 세계에서 몰려든 디지털 노마드 같이 오래 체류 중인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서핑과 요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특징은 엄청난 동안이라는 거다. 

예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서핑을 배웠을 때 그곳에서 서핑을 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인상에 깊게 남았었다. 외적으로 다들 몸짱인 건 논외로 치더라도 눈빛이 다 소녀같이 반짝이고 활기가 넘쳤다. 

이곳 발리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서핑을 가르쳐준 기껏해야 30대 초반으로 보였던 서핑 스쿨 강사도 이미 50대 중반을 바라본다고 한다.  


이곳엔 방학을 이용해 꾸따와 짱구에서만 길게 체류하며 서핑 스쿨에서 합숙을 하는 한국 대학생들도 많다. 

이들은 하루 종일 새벽부터 서핑하고 오후에는 찍었던 영상 보며 자세 모니터링을 한 후 

맥주를 한두 잔 마시다 뻗어서 잔다고 한다. 

에너지 소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서핑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그리고 일주일이 금방 간다. 




길거리 바닥에 놓인 이 꽃과 음식이 담긴 조그만 바구니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집 앞과 자동차 안, 해변에서도 간간이 보이는 이것은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 차루(Charu)다. 


발리 사람들은 매일 정성을 다해 신들에게 제물을 올리고 기도를 드린다. 

신들의 섬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 

일상 속에 종교가 평화롭고 아름답게 녹아든 모습이 정감이 가고 인상이 깊었다.   

작은 그릇 안에 우주가 정갈하고 소담스럽게 담겨 미소 짓는 느낌이다


낮과 밤이 모두 신비로운 이곳




2. 예술가들이 모인 정글, 우붓


평소 플랜테리어와 멋진 그림을 좋아하는 나는 

나중에 내 집을 꾸민다면 '숲 속 안 갤러리' 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늘 생각했었다. 

벽에는 포스터와 그림이 잔뜩 걸리고 방 곳곳이 식물로 가득 찬 울창하고 컬러가 다채로운 공간을 꿈꿨다. 


내가 좋아하는 발리 감성의 라탄 & 식물 인테리어. 출처 : welikebali 




그리고 우붓에서 난 이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을 보았다. 


논밭이 펼쳐진 숙소 뷰



두 번째 거점 지역인 우붓으로 이동하는 길부터 펼쳐진 노란빛의 논밭과 푸른 숲들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도심에서 시골 마을로 들어가는 기분으로 이곳에 도착하니,

다들 히피 같은 옷차림에 헝클어진 머리를 휘날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물에 젖은 나뭇잎 향이 곳곳에 진동하며 갑자기 다른 세계로 온 듯한 알 수 없는 박동감이 느껴졌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급하게 예약했는데 1박당 2만 원 꼴의 가격인데도 

큼직한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으며 조식을 제공하는 독채였다. 

내 방 앞에는 논밭이 크게 펼쳐져 있었다. 


정갈한 발리니즈 퀴진



저녁을 먹고 고요한 시골 마을에서 유독 음악소리가 크게 들리는 

한 라운지에 가서 음료를 시켰는데 

역시나 혼자 온 것으로 보이는 앳되고 이국적인 느낌의 프랑스 여자애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 말을 걸었고 대화를 시작했다. 


A(가명)는 프랑스와 발리 혼혈이며 현재는 이혼한 프랑스 엄마와 함께 프랑스 서부에 거주 중이다. 

대학에서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를 전공했으며 (영어 실력이 유창했다), 

여름 방학을 맞아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이 있는 발리로 놀러 왔다고 한다. 

늘 저녁마다 혼자 이 라운지에 온다고 했다. 

그녀의 추천으로 발리 전통술인 아락도 시음해 봤다.


대화를 나누다 친해진 우리는 

내가 다음날 갈 예정이었던 짬뿌한(rice terrace)을 같이 산책하기로 약속하고 번호를 교환했다. 


아침에 여유 있게 조식을 먹고 걸어서 도착한 짬뿌한 산마루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밀림 버전을 보는 것처럼 정말 아름다운 둘레길이다. 

등산복 차림이거나 자전거를 타는 유럽인들이 여럿 보였으며, 

푸른 들판 사이에 중간중간 오래된 사원들이 퍼즐은 끼운 듯이 들어앉아 있다. 




길가마다 늘어져 있는 리조트 중 한 군데에 들어가 그곳에 있는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은 후 

비건 레스토랑에서 밥을 가볍게 먹었다.


우붓에서 흔히 보이는 사원과 정글 속 리조트



이후 한 미술관으로 향했다. 

예술가들의 마을 우붓엔 곳곳에 미술관과 갤러리가 많다.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독특한 표현 양식의 발리니즈 예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블랑코 미술관은 발리의 살바도르 달리로 불리는 스페인 화가 ‘안토니오 블랑코’가 직접 디자인한 개인 미술관이다. 여성을 신이 만든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한 그의 그림엔 대부분 여성이 등장한다. 

유럽 출신이지만 당시 미지의 섬이었던 발리의 야생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된 그는 

이곳에 정착해 거대한 저택을 짓고 발리인 부인을 만나 가정을 이뤘다. 

독특한 외관의 미술관 건물에는 그의 작업실도 함께 딸려 있었다.  

유럽인의 시선에서 본 발리의 신비로움이 유화의 터치를 통해 작품으로 재해석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블랑코 미술관 전경과 그의 작품들
블랑코의 굳은 물감들이 널려진 작업실 내부



돌아올 때 시장에 들러 편하게 입을 살랑거리는 원피스를 샀고 

우붓 왕궁을 지나갔다. 

이 왕궁은 16세기에 지어져 우붓의 마지막 왕이 살던 곳이며 현재도 왕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빛바랜 정원과 소박한 건물로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 우붓의 전경과 잘 어울렸다. 



발리 하면 흔히 생각나는 곳이 그네와 밀림, 폭포와 거대한 사원이다. 

그리고 이곳들을 모두 갈 수 있는 것이 우붓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북부 투어라 들었다.

보통 개인 운전사를 고용해서 진행한다. 

A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북부투어가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알아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한테 물어봐서 운전기사를 알아봐 줄 수 있다고 했고, 

본인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에 그녀와 만났고 발리 로컬 운전기사와도 인사를 했다. 

하루종일 차를 타고 투어를 하며 상술한 곳들을 모두 돌았다.  

아찔한 경사 위에 있는 그네를 타고 계단식 논밭에서 점심을 먹었다. 

안개와 구름 속에서 간간이 드러나는 사원들이 아름다웠다. 

폭포에서 뛰어놀며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내가 궁금하는 게 생기면 (발리의 전통, 문화, 종교 등등), 

A가 바로 인도네시아어로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봐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그녀의 큰할아버지였다).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는 다음과 같다.


1) 발리의 매력 

'발리가 수많은 인도네시아 섬 가운데서도 유독 사람들을 매혹시킨 이유가 뭘까'란 질문에 

그녀는 '힌두교에서 발현된 이곳 사람들만의 독특한 문화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인 인도네시아에서 발리는 유일하게 힌두교를 믿는 곳이다. 

발리 하면 생각나는 울창한 자연 속 사원들과 (발리인들은 집 안 마당에도 다 작은 사원과 제단이 있다) 곳곳에서 안개처럼 피어나는 향, 내가 좋아하는 길거리에 놓인 정갈한 차루로 대표되는 평화로운 광경은 모두 힌두교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난 이슬람 영향권인 길리 섬을 방문하고 다시 발리 본섬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발리는 다른 인도네시아 섬과 언어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며 예술 양식도 독특하다.     

발리인들은 본인들의 역사와 정서의 독창성에 자부심을 가지며 그들끼리의 끈끈한 연대로 조용히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점차적으로 관광객들에 의해 발리를 방문하는 이방인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관광업으로 유명해진 발리에 인도네시아의 가장 자바 섬(자카르타가 이곳에 위치해 있다)에서도 일하러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이주했는데 외부인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발리니즈들과 이들 간의 은근한 갈등도 있는 모양이다.  


A의 부모님의 이혼도 이러한 발리인들의 배척성과 연관이 있었다.  

발리로 여행온 젊고 호기심 많던 A의 프랑스인 어머니가 발리 토박이인 아버지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원래 발리인들끼리 결혼하던 풍습 때문에 아버지의 가족들의 반대로 결혼생활이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으며, 현재 아버지의 가족들과 사이는 좋지만 본인 또한 추후 발리인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약간 있다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2) 인도네시아의 동물들  

우붓에 있는 몽키포레스트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중 하나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서식하는 오랑우탄으로 오랑은 '사람', 우탄은 '숲', 

즉 '숲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코모도 드래곤'이라고 나도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는 거대한 악어를 닮은 동물은 

인도네시아의 '코모도 아일랜드 (천혜의 자연으로 유명하다)'에서만 서식을 해 해당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3) 자연 속의 마법 

내 우붓 숙소에서 보이는 자연 풍경이 너무 맘에 들어서 

그녀에게 논밭뷰 숙소 사진을 보여주며 예쁘지 않냐고 자랑했더니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상술했듯이 발리 사람들은 종교와 미신을 신봉한다.

이 숙소처럼 자연 한가운데 숙소가 있다는 건 이들에겐 좋지 않은 풍수지리에 해당한다고 했다.  

낮과 밤의 특정 시간 (예를 들어 자정 같이)에 자연 속에 혼자 있다면 흑마법(?)이 벌어진다고... 

로컬들은 아무도 살고 싶지 않아 하는 이곳에 이런 정보를 모르고 개의치 않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를 지어놓았나 보다 하고 재밌게 넘겼다. 



로컬인 듯 아닌듯한 A와의 즐거웠던 동행은 이날로 마무리 짓고 

남은 방학 기간 동안 동남아 일주를 앞둔 그녀와 포옹을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이슬비가 내리는 다음날 오전에 요가 수업에 가볍게 다녀오고 

원숭이들이 출몰하는 몽키 포레스트에서 산책을 한 후 난 다음 행선지인 길리로 향했다. 


 

3. 길리섬.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바닷속에서 만난 거북이 


'작은 섬'이라는 뜻의 길리엔 세 가지 섬이 모여 있다. 길리 트라왕안, 메노, 그리고 아이르. 

내가 가기로 한 길리 트라왕안엔 계속된 비바람에 한 시간 연착된 배, 거기다 뱃멀미까지 겹쳐 기진맥진한 상태로 도착했다.  


바다 컬러는 에메랄드빛으로 예쁜데 비 때문에 진흙탕이 된 바닥에 숙소 또한 지저분했다. 

본섬에서 벗어나니 히잡을 쓴 여성들과 마차들이 종종 보였다. 


첫날의 찝찝한 경험과는 달리 다음날 아침에 한 스노클링은 너무 황홀한 경험이었다.

큼직한 거북이와 헤엄을 쳤고 바닷속 조각상들 사이를 유영했다.  

 


함께 동행한 한국 언니 한분이랑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남미 및 웬만한 대륙 여행을 다 해본 분이라 내가 나중에 갈 남미 계획에 관해 조언을 구했다. 


다른 날에는 길리 메노에 있는 리조트의 수영장에서 마가리타를 마시고 

역시나 환상적인 수영과 선배스를 즐기고 돌아왔다. 


트라왕안 섬에 돌아와 자전거를 타고 섬을 돌았는데 예전 인기 예능 '윤식당'을 운영했던 건물터도 보인다. 

낮잠을 자고 어제 흐린 날씨 때문에 보지 못했던 선셋을 보러 나간 길목엔 낭만적인 비치 시네마가 있었다. 

그리고 몽골의 밤하늘만큼이나 경이로웠던 길리의 풀문을 보았다. 

얼굴에 페인트칠을 한 풀문 파티를 즐기는 자유로운 여행자들이 많이 보였다. 




4. 누사 페니다.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해변과 절벽 


달빛과 물빛으로 가득했던 길리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누사 페니다' 섬으로 향하는 배에 탑승했다. 


본섬으로 돌아가기 전에 가볍게 1박을 할 예정이었으며 숙소를 급하게 구했다. 

지금 내 일상은 '발리'라서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도 있지만, 

노마드 스타일로 돌아다니다 보니 매일 사진을 백업하고 숙소와 이동수단 및 일정을 짜고, 

빨래와 짐 싸기 같이 기본적인 일만 해도 정말 시간이 빨리 간다. 

매일을 어떻게 다르고 즐겁게 보내야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은근 많이 쓰인다.


섬 투어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감이 안 오다가 물을 사러 한 구멍가게에 들어갔는데, 

가게 주인이 직접 프라이빗 투어를 시켜줄 수 있다고 했다 (차를 가진 발리 로컬들은 부업으로 이런 개인 투어를 다 하는 분위기다). 

다음날 새벽 6시에 픽업을 한다고 구두로 약속을 하고 숙소에 도착해 일찍 잠을 청했다. 


투어 당일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한 차를 타고 투어를 시작했는데 새벽에 출발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름처럼 투명한 물빛이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해변부터 

아찔하게 깎아지른 절벽까지 때 묻지 않은 모험이 손짓하는 이곳은   

'만타'를 볼 수 있는 스쿠버 다이빙 스팟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나 밖에 없었고 때문에 황홀한 섬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혼자 만끽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방문했던 중국 장가계가 생각이 났다. 

신선이 나올 것 같은 환상적인 풍경이었지만 바글바글했던 관광객들 때문에 그 감동이 많이 반감됐었던 기억에 반해 이곳에서는 풍경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어 이루 말할 수 없이 충만했다. 



이곳도 장가계만큼이나 유명한 관광지라 정오가 지나고 나니 점점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곳을 다 본 나는 항구로 향했다. 



투어를 마치고 항구로 향하는 해안도로조차 아름다운 이곳에서의 1박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한 난,  

몇 시간 뒤 세련된 발리의 사누르 항구에 도착해 소나기를 맞으며 다시 짱구로 향했다. 

여기서 며칠 쉰 후 마지막 여행지인 울루와투로 향할 계획이었다. 


익숙한 발리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본섬으로 돌아오니 다시 느껴진다. 

길리와 누사페니다도 좋았지만, 

진정 나를 사로잡는 건 천혜의 자연보다 인류가 만든 풍요로운 문화였다.

   


5. 울루와투. 경이로운 자연과 소중한 원주민 문화 


가분수의 모래시계처럼 생긴 발리 지도를 봤을 때 울루와투는 그 아래를 받치는 구조다. 

내가 여행 전 발리 일정을 짤 때 많이 참고했던 외국인이 작성한 블로그가 있는데, 

발리에서 9개월 거주했던 그 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곳으로 꼽는 곳이 울루와투였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등장한 빠당빠당 비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발리 한 달 살기는 이곳에서 마무리짓기로 하고 울루와투로 이동했다. 


첫날 방문한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치한 사원과 전통춤인 께짝 댄스쇼는 투박하고 야성적이었다. 


이곳 길거리엔 원숭이가 정말 많은데 이들은 종종 안경 쓴 사람의 안경을 빼앗아 도망가곤 했다. 

이런 경우 다시 되찾을 방법은 없다고 한다. 




울루와투의 호스텔에서 만난 B는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혼혈의 20대 초반 여대생이다. 

암스테르담의 대학에서 경영을 공부하며 지금 한 학기를 말레이시아로 교환학생을 온 김에 

가까운 발리를 여행 중이라고 한다.

 

우붓에서 만났던 A처럼 유럽-인도네시아 혼혈이며 둘 다 본인의 혈통이 있는 동남아에 장기간 머무른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B의 부모님도 헤어졌다고 하는데 여기서 네덜란드 사람들의 결혼관이 엿보였다. 

그녀가 말하기론 네덜란드 사람들은 일단 애초에 결혼(그리고 특히 결혼식)을 거의 안 한다고 한다. 

프랑스처럼 맘에 들면 자유롭게 동거하며 자녀들을 낳는 게 보편적이고 관계에 대한 제약과 구속이 없는 만큼 이별도 쉽고 흔하다. 본인 친구들도 보면 절반 이상은 부모님이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다고 하고, 이 때문인지 부모님의 이별에 대해 상처받는 아이들의 비율이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히 적다.  

또한 신기한 점이 한국에는 없는 결혼과 미혼 그 사이를 규정하는 사실혼 비슷한 협약(?)이 있다.

혼인신고 대신 이 계약이 더 보편적이며, 굳이 혼인신고를 하거나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을 신기하게 보는 문화가 있다. B는 한 학기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학교를 다녀보니 아시아가 훨씬 가족중심적이라고 느꼈다 한다.


같은 숙소에 머무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승무원과 남미와 동남아 일주를 하는 영국 커플과도 얘기를 나눴고,  

이들과 한밤중에 불꽃놀이를 보며 숙소의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했다. 


다음 날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빙인 비치와 드림랜드 해변에 갈 예정이었다. 



발리의 모든 곳을 가보진 못했지만 내가 가본 곳 중 가장 발리다운 곳을 꼽자면 

내륙은 우붓, 해안가는 울루와투다. 

절벽 위에 차곡차곡 쌓인 레스토랑들과 맑은 해변 컬러가 시원하다. 

오늘도 원 없이 수영을 하고 서핑을 즐겼다. 



서퍼들을 보면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울루와투에서 상어처럼 파도를 꾹꾹 누르며 돌진하던 서퍼와, 

꾸따 해변에서 잠잠해지는 파도에 맞춰 서서히 멈추다 그대로 뒤로 떨어지며 바닷물에 안기듯이 몸을 맡긴 서퍼 등 파도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대항하기도 하고 굴복하기도 하는 멋진 사람들이다. 


서퍼 인구가 얼마나 많으면 이곳 오토바이는 뒤에 서핑보드를 실을 수 있는 보조 장치가 따로 있다. 




이렇게 내 발리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서퍼들의 놀이터 꾸따, 세련된 부티크와 레스토랑이 많았던 짱구, 신비로우면서 힙한 미로 같은 우붓, 트로피컬 한 매력의 길리,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을 가진 누사 페니다, 경이로운 절벽과 파도로 이루어진 울루와투.


각각의 매력으로 가득한 동네들을 옮겨 다니며 지내니 정말 한 달이라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이곳에서의 추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웅장한 폭포 아래서 그네를 타고 맛있는 나시고랭을 먹었던 기억. 

아기자기한 상점에서 조개팔찌를 샀던 기억. 

원숭이가 돌아다니는 왕궁의 빛바랜 담장 옆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던 기억.  

워케이션 하기 좋은 정글 속 카페에서 시원한 망고주스를 마시며 글을 썼던 기억.

화분과 라탄공예로 가득한 소품샵에서 미래의 집 인테리어를 상상했던 기억. 

 

발리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는 문장으로 대표되는 '다양성'이 아닐까 싶다. 퇴사 후 장기 여행하는 배낭여행자와 디지털 노마드, 짧게 여행온 관광객들, 신혼여행을 온 사람들 누구나 호불호 가리지 않고 좋아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특유의 신비로운 문화에 더해 아름다운 해변과 울창하고 원시적인 녹음, 

황금빛 들판의 고요함과 활기찬 바닷가의 파티씬이 공존하는 곳이며, 

액티비티와 쇼핑 등 색다른 즐길거리와 마사지와 요가, 건강한 음식을 통해 힐링과 여유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바다 하나만 보더라도 동서남북 위치에 따라 웅장함과 친근함, 투명함 등의 여러 개의 얼굴을 가졌으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어촌 마을과 고급스러운 리조트 타운이 이곳에 있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아름답게 공존하고 있다. 



마지막 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이동하며 오랜만에 날짜를 확인했다.


매일 그저 마모되어 간다고만 느껴졌던 쳇바퀴 같은 직장 생활과는 달리

날짜 감각이 사라지고 오늘 내가 만날 사람들이 궁금해지고, 내일 내가 되어있을 사람이 궁금해진다는 게 

이곳에 온 후 느낀 변화다. 계속 수영, 서핑, 요가를 했더니 탄탄해지고 적당히 태닝이 피부 또한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제 싱가포르에서 1박 동안 레이오버 여행을 하며 야경과 도시 인프라를 구경한 후 

또 다른 2주를 보내기 위해 그리스로 날아갈 참이었다. 


꾸따 해변에서 공항이 잘 보였던 것처럼 

공항 내에서도 저 멀리 해변과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그대로 보인다. 

마치 한 달 전의 풍경 속으로 시간 이동을 해 다른 시점으로 내려다보는 것 같다. 

창 밖으로 내가 탈 예정으로 보이는 비행기가 착륙한 후 나에게로 서퍼처럼 부드럽게 밀려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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