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이 있던 집

by 마흔의 햄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성북 천변에 있는, 그런데 대로변에서도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오래된 모텔이 있다.

모텔? 아니 모텔이라는 표현도 애매한. 어쩌면 여관이라는 옛날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궁금해질 만큼 오래된 2층짜리 단독 벽돌 건물인데 낡기도 많이 낡아 보이지만 이름조차도 여관에나 어울릴법한 '태화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영업을 하긴 하는 걸까 싶은 겉모습이지만 네이버 리뷰에 후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최근까진 영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간판에 써진 태화장이라는 이름 위에 지금은 어느 모텔도 이런 식의 표기를 안 하는 것 같지만 목욕탕 기호를 넣은, 그야말로 오래되고 오래된 모텔.

주변의 건물들이 모두 신식으로 은빛 자태를 뽐내며 위로 솟아오를 때, 혼자만 그 자리 그대로 자라지도, 변하지도 않은 채 얼마인지도 모를 시간을 버티고 있는 그 모텔을 보고 있자니 궁금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대견하기도 하고. 더 버텨달라고 응원하고 싶은 기분도 든다.

어릴 때 나의 증조부모는 독립문이 있는 영천에서 모텔과 목욕탕을 크게 운영하셨다. 우리 외가가 독특한 업종의 내력을 가지고 있는데 모텔과 여관을 하셨던 증조부모는 일제 때 개성에서 두부 장사를 크게 하시며 돈을 많이 버셨고 한국전쟁 때는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와 자리 잡으시면서 여관과 목욕탕을 하셨다. 내가 중학교 때까지도 살아계셨던 증조할아버지는 그즈음 엔 치매도 조금 있으셨고 또 워낙 자손이 많아 하나하나 다 기억은 못 하셨지만 나는 첫 증손주라 그런지 관심도 받았고 마지막까지 기억도 해주셨다.

태화장을 보자니 어릴 때 명절마다 찾아갔던 영천의 내 증조부모의 여관과 목욕탕이 떠올랐다. 돌아가신 뒤로 그 일대가 개발이 되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증조부의 여관과 목욕탕은 태화장보다도 훨씬 컸고 항상 사람도 북적였다.

1층에 영업 중인 목욕탕이 있고 그리고 건물 옆문을 열면 3층까지 쉬지 않고 쭉 이어져있는 계단실이 나오는데 그 아찔한 계단의 중간쯤에 또 옆문이 하나 있어서 거기가 여관과 이어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계단의 가장 꼭대기 3층은 증조할아버지를 포함한 외가 식구들이 살고 있는 가정집이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증조부는 꽤나 재산이 있으셨던 터라 그 집은 친척 아이들이 모이면 숨바꼭질을 할 만큼 넓었고 방이 많았다. 게다가 계단 중간문에 이어진 모텔은 그야말로 미로 같은 곳으로, 영업 중이었기 때문에 어른들이 못 들어가게 하셨지만 나는 그곳이 꼭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과 같은 기분이 들어 어른들 몰래 한 번씩 열고 들어가 여관 복도를 구경하고 나오곤 했었다.

증조부모의 집을 이야기하다 보면 목욕탕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명절에도 쉬지 않고 영업을 했던 그 목욕탕은 하루에 한 번씩은 증조할머니가 카운터에 나가계셨다. 그 카운터라는 게 아주 작은 쪽방 같은 곳으로, 정식 출입구는 여탕과 커튼 하나 쳐진 상태로 연결되어 있고 정면 유리창에 작은 반달 모양의 구멍이 나 있어 그 구멍을 통해 요금을 받고 티켓을 내어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쪽방의 옆에는 난쟁이나 드나들 것처럼 아주 작은 쪽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은 나는 절대로 열어서는 안된다고 엄포를 받은, 남탕으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그 문으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증조할아버지뿐이었다. 나는 그 문을 못 여는 것이 당시에는 너무도 안타깝고 열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억누르느라 애써야 했다.

할머니가 카운터에 앉아 계시면 나도 그 옆에 앉아 목욕탕에서 파는 야쿠르트를 먹으며 카운터 안에 있던 어른 손바닥만한 흑백티비를(아마도 컬러였겠지만 너무 작아 컬러 표현이 잘 안되었던 건 아닐까) 보곤 했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대단한 미디어 기기인 것 같지만 사실은 어른 손바닥만큼 작은 화면에 비해 뒤통수는 장대만큼 길쭉하고 안테나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겨우 볼 수 있는, 옛날 장사하는 가게에나 있던 테레비였다.(TV라는 표현조차도 어울리지 않는다.)

목욕탕은 나에게 놀이터였던 셈이다.

작년에 재미 삼아 봤던 신점에서 무당말이, 나는 물장사를 하면 아주 잘 될 거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옛날의 영천 나의 증조부모의 목욕탕이 떠올랐다. 아쉽다. 두 분의 목욕탕이 계속 이어졌다면 내가 물려받겠다고 나섰을지도 모르는데.

동네 산책 중에 마주친 오래된 모텔에서 시작된 생각이 내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들어가 이제는 얼굴도 희미한 나의 증조부모와 함께했던 그 영천의 목욕탕과 여관의 기억으로까지 이어졌다.

두 분이 돌아가신 뒤로 나는 영천을 가본 적이 없어 어떻게 개발이 되었는지, 나의 증조부모님의 여관과 목욕탕이 있던 곳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본 적이 없다.

그저 내 기억도 그때에 멈춰있어 여전히 독립문 근처, 영천은 나의 증조부모님의 여관 건물이, 1층에는 대중목욕탕이, 옆문을 열면 3층까지 아찔하게 이어져있는 그 계단이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아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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