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벽 세 시에 바라본 하늘,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밝게 빛나며 구름을 무지개빛으로 물들인다. 해는 졌어도 한참 졌을 그 시간에도 밤 하늘은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 있어서 내가 늘상 보던 무미건조한 밤하늘의 색은 무엇이었나 찾아본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편의점에 가는 길에도 달빛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뒤돌아본다. 달빛은 지나간 것들. 지나간 것들과 하나되기를 다시 강렬히 소망하게 한다. 새벽의 기운은 쓸쓸함에 우리를 덩그러니 던져놓고 마는 것이다. 한줄기 달빛으로 뒤집어진 여린 마음은 괜시리 고요한 새벽을 훼방놓는다며 신발 소리를 탓 한다.
편의점 앞에서 저마다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들어가면, 그곳에는 정말로 공허 그 자체를 마주한다. 있어도 괜찮을까 싶은 매마른 공간에서 욕망을 탐닉한다. 손이 무거워질수록 마음도 같이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공허를 매울 길 없는 마음은 욕망의 뒤에 숨어 일단 한가득 채워본다.
편의점을 나서며 두손 가득 들린 음식들을 확인한다. 밝게 나를 비추는 달빛 덕분에 내 모습은 한층 더 부끄러워져서 새벽에도 인적없는 곳으로 숨는다. 집에 돌아가서 볼 영화에 행여 입이 심심할까 나선 새벽행이었지만, 저 아름다운 달빛의 감상조차 나눌 이 하나 없는 초라한 나에게는 그것조차 가혹한 일이었다.
여느때보다 고요하게 모두가 잠든 시간, 쓸쓸한 영혼은 아무에게도 존재를 확인받지 못하고 그렇게 밤을 지새운다. 변태같이 스스로를 못살게 굴면서, 그럴싸한 미소로 만족하기 위해, 고통을 쾌락으로 느끼려고 발버둥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