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삶의 연속이다. 늘 긴장하라.
눈가에 주름이 늘고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간다. 세월이 한참 흘렀다. 지금은 그때 일로 웃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참말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경기도 포천에 산정호수가 있다. 그리고 그 호수를 품에 안은 명성산이 있다. 어느 겨울,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함께 보내던 선후배 몇명과 겨울산행을 했다.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2시간 남짓 되는 거리. 아침 일찍 출발하여 포천으로 향하는데 눈발이 생각보다 굵어진다. 휴게소에서 스노우체인까지 구입하여 무사히 산정호수까지는 도착을 했다. 호수를 둘러보는데 도로에서 그토록 밉게 보였던 눈이 소복소복 참 아름답게도 내린다. 산정호수를 돌아 산책하고는 곧장 명성산 산행을 시작했다. 행여나 산을 오르다 미끄러질까봐 아이젠까지 착용했지만 1년에 한두번 산행을 할까말까 하는 사람들에게 겨울산행은 만만치 않은 노동이었다.
해발 923미터의 명성산. 반쯤 올랐을까? 결국 안전과 피곤을 핑계로 만장일치, 하산을 결정했다. 산행을 포기했을 때는 눈이 그친지 몇 시간이 지난 터였다. 더이상 눈이 오지 않아 가는 길은 그나마 편할 듯 싶었다.
다시 서울로 오는 도로에 올랐다. 운전은 후배한테 맡겼다. 나는 조수석에 앉았고 선후배 2명은 뒷좌석에서 고개를 한껏 젖히고 골아 떨어진지 오래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되도록 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고된 눈길 산행으로 오는 피로감에 졸음은 밀물처럼 은근히 밀려들어왔다. 그래도 나까지 졸면 운전자까지 졸 것 같은 생각에 앞을 주시하며 버텼다.
포천에서 출발한지 30여분이 지났을까? 앞서 가든 차가 무슨 일인지 갑자기 속도를 줄인다. 근데, 같이 제동을 해야하는 상황인데도 속도가 줄지 않고 앞 차와의 간격이 무언가에 빨려들듯이 순식간에 줄어들다. 순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운전을 하고 있는 후배를 쳐다보는데, 아! 글쎄, 아예 핸들에 머리를 쳐박고 자고 있다.
나도 모르게 고함을 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만다행인 것이,
내 고함에 운전하던 후배가 바로 고개를 들고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잠에 취한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불과 1~2초만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내 고함에도 깨어나지 않았다면 가던 속도 그대로 앞차와 충돌을 했을테고, 그 다음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질타를 할 것도, 민망해할 것도 없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저 스쳐지나는 위험했던 순간을 무사히 넘긴 것으로 감사하며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다시 수년이 흘렀다. 나의 여행은 계속 되고, 여행이 계속 되는 한 나의 운전도 계속 된다. 모든 지난 실수도 위험했던 순간도 내게는 큰 교훈이 된다. 그게 나의 실수였던 타인의 실수였던. 간혹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운전을 할 때 졸린 신호가 오면 난 어김없이 휴게소나 안전한 곳에 정차를 하고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간다. 그게 오랜 세월의 경험이 내게 준 중요한 가르침이다.